김삿갓 방랑기195화

2021. 2. 25. 12:13김삿갓 방랑기


★ 시인 김삿갓 방랑기 195화

[김삿갓의 기행]

지리산은 전라도와 경상도에 걸쳐있는 엄청난 산으로 둘레에는 크고 작은 10여 개의 고을들이 산재해 있다. 남원은 서쪽에 해당하고, 함양(咸陽)은 북쪽 고을이고, 진주(晉州)는 남쪽 고을에 해당한다.
이렇듯 크고 넓은 산을 넘자니 다리가 불편한 김삿갓으로선 정상으로 올라가는 것은 감히 엄두를 낼 수 없었다. 그리하여 산허리를 걸어 넘어 진주 방향으로 길을 접어들었다.

그 옛날 진시황제 시절 중국 사람들은 ‘영생불사(永生不死)’의 명약 장생불로초(長生不老草)를 구하기 위해 동남동녀(童男童女) 5백 쌍을 동방에 있는 삼신산(三神山)으로 보낸 일이 있었다고 알려져 있는데, 그 삼신산의 하나였던 방장산(方丈山)이 바로 지금의 지리산인 것이다.

지리산은 산이 높고 골짜기들도 하도 복잡하기 때문에 옛날부터 속세와 인연을 끊은 도인들이 많이 살고 있는 곳이다. 김삿갓이 수많은 골짜기를 건너며 깊은 산속으로 들어오다 보니 물이 콸콸 흘러내리는 산골짜기 바위틈에 난데없는 시체가 하나 걸려 있었다.

어느 산중에서 물을 건너다 빠져 죽은 사람의 시체가 물길 따라 한없이 흘러내려 오다가 바위틈에 끼여 버린 모양이었다.

‘저런! 깊은 산속에서 아무도 모르게 물에 빠져 죽다니 저럴 수가 있을까!’
김삿갓은 남의 일 같지 않아 가슴이 섬뜩해 왔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죽은 사람은 승복을 입은 것으로 보아 스님이 분명하였다.

‘승려들이 죽으면 열반 또는 입적이라 하는데, 저 스님은 어쩌다가 이처럼 비참하게 익사했을까?’
사지를 오그린 채 바위틈에 쥐새끼처럼 옹색하게 끼어있는 몰골이 너무도 측은해서 견딜 수 없었다.

‘에라, 시주는 못 할망정 바위 틈바구니에 끼어있는 스님의 시체를 건져 올려 평평한 바위 위에 편히 뉘어 주기나 하자.’
그렇게 생각한 김삿갓은 두루마기를 벗어젖히고 시체 인양작업을 시작하였다.

물이 줄곧 흘러내리고 있는 바위 틈바구니에 꼭 끼어있는 시체를 햇볕 따뜻한 바위 위까지 끌어 올린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사람은 본시 죽고 나면 통나무처럼 뻣뻣해지는 법이다. 그러나 건져 올린 시체는 오랫동안 물에 채여 있었던 탓인지 별로 뻣뻣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시체를 등에 업어 올리기는 싫어 저고리의 등줄기를 움켜잡고 질질 끌어올리자니 더욱 힘이 들었다.
김삿갓은 시체를 햇볕 잘 드는 바위까지 끌어 올리고 나니 이왕이면 무덤까지 만들어 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리하여 눈을 들어 지세를 살펴보니 그곳은 좌청룡 우백호의 명당 형국이 분명한데다가 시체가 놓여 있는 바위 부근에는 크고 작은 바위들이 여기저기 우뚝우뚝 솟아 있어서 그 바위들이 마치 무덤 앞에 일부러 만들어 놓은 문석인(文石人)과 무석인(武石人)처럼 보였다.
김삿갓은 죽은 사람이 승복을 입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가 스님인 것은 알 수 있었지만 어느 절에 사는 누구인지는 모른다.

그러나 시체를 물속에서 건져 올려놓고 보니 우연하게도 그곳이 바로 명당자리임에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자고로 명당자리는 동남향을 제일로 치는데, 이곳은 좌향(坐向)부터가 동남향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운명은 자기가 타고난다고 하더니 이 스님의 유택(幽宅)은 바로 이곳임이 분명한가 보구나!’
김삿갓은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양후산립(陽煦山立)’이라는 말이 문득 떠올랐다.

옛날부터 인품이 온화하고 행실이 단정한 인물을 ‘양후산립’이라고 칭찬해 오는데, 시체의 주인공은 비록 익사는 했을망정 평소에 소행이 단정했기 때문에 명당자리에 눕게 되었으리라고 생각되었던 것이다. 아무려나 시체가 누워 있을 자리를 제대로 찾아 주었으니 이제는 작별을 고하고 길을 떠나야 할 판국이었다.

옛날 시인들은 서로 헤어질 때 대개 송별시를 주고받았다.
그때의 시를 ‘양관곡(陽關曲)’이라고 부른다.
김삿갓은 돌아가신 스님에게 주는 ‘양관곡’을 이렇게 읊었다.

靑龍在左白虎右(청룡재좌백호우)
天地東南流坐向(천지동남유좌향)
龜頭碧波立短碣(구두벽파립단갈)
雁足靑天來弔喪(안족청천내조상)

(해설)
좌청룡 우백호로 명당자리 분명한데,
천지가 동남으로 흘러 좌향도 좋을시고.
물가에는 거북머리 비석도 서 있어서
하늘을 나는 기러기가 문상을 오는구나.

이렇게 송별시 한 수를 읊조리고 나서 마지막으로 합장 배례하며 작별인사를 고했다.

“소생 김삿갓은 고승(高僧)께서 뉘신지는 모르옵니다. 그러나 명당자리를 택해 정성껏 모셨사오니 일체의 번뇌를 해탈하시어 기꺼이 왕생극락을 하시옵소서. 상향(尙饗)”

註) 상향(尙饗) : 제사 때 읽는 축문(祝文)의 맨 끝에 쓰이는 말로 ‘비록 적지만 차린 제물을 받으옵소서’라는 뜻으로 이르는 말.

이것은 실로 김삿갓이 아니고서는 누구도 할 수 없는 기행이었던 것이다.

- 196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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