烟霞橙橘(연하등귤)
2026. 4. 11. 11:41ㆍ좋은글
菜根譚
제 199장 : 烟霞橙橘(연하등귤) :
노을과 귤 향기는 저물 때 아름답고 향기롭다.
日旣暮而猶烟霞絢爛 歲將晩而更橙橘芳馨
故末路晩年 君子更宜精神百倍
일기모이유연하현란 세장만이갱등귤방형
고말로만년 군자갱의정신백배
하루의 해가 저물 때 노을은 오히려 더욱 아름답고,
한 해가 저물 때 귤 향기는 더욱 향기롭다.
생애의 만년인 늙마에 군자는 의당 1백배나 더 정신을 가다듬어야 한다.
연하현란(烟霞絢爛)의 ‘연하’는 안개와 저녁노을을 뜻하는 말로 고요한 산수의 경치를 상징하는 용어로 사용된다. ‘현란’은 눈이 부시도록 빛난다는 뜻으로 찬란(燦爛)과 같다.
등귤방형(橙橘芳馨 )의 ‘등귤’은 등자나무와 귤나무를 뜻한다.
등자나무의 열매는 둥글며 맛이 몹시 시고 쌉쌀하다.
그러나 향기가 짙은 까닭에 향수의 원료로 사용되거나 위를 튼튼하게 하는 약재로 사용된다.
‘방형’은 명사로도 사용되는 방(芳)이 똑같은 의미의 향기를 뜻하는
명사 형(馨)을 꾸미는 수식어로 사용된 것이다. 일종의 강조 용법에 해당한다.
모든 노후 준비가 그렇듯이 인생의 황혼기를 뜻있게 보내려면 젊을 때 미리 준비해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주역』에서 말하는 자강불식(自强不息)이 그것이다.
만년에는 그 정신을 전보다 100배나 더 가다듬어야 한다고 주문한 이유다.
‘유종의 미’를 역설한 것이다.
남송 초기의 시인 신기질(辛棄疾)은 북송 패망에 대한 울분과 비분강개를 토로하는 시를 대거 남겼다.
고종 소홍 10년(1140) 지금의 산동성 역성(歷城) 출신인 그의 작품을 두고
중국 문학사에서는 소동파와 하나로 묶어 이른바 ‘소신(蘇辛)’으로 통칭한다.
그의 자는 유안(幼安), 호는 가헌(稼軒)이다.
그가 태어났을 때 화북 일대는 이미 금나라에 유린당하고, 뒤이어 휘종과 흠종이 북쪽 으로 끌려가는
정강지변(靖康之變)이 빚어졌다.
남송 고종 소홍 31년(1161) 금나라가 대대적인 침공을 시작하자 화북의 한족이 의병을 조직해 저항했다.
당시 22세였던 신기질도 이에 적극 참여했다.
그는 애국적인 조부 신찬(辛贊)과 부친 신문욱(辛文郁)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금나라에 설원 해야 한다는 불굴의 의지를 키운 게 그렇다.
그의 어릴 때 친구 당영(黨英)은 금나라에 투항해 높은 벼슬을 지내며 부귀를 누렸다.
그 역시 금나라 관원이 될 수 있는 기회가 많았음에도 의병을 조직해 실지 회복에 온몸을 내던졌다.
의병이 패한 후 그는 강남으로 내려와 여러 번 금나라 정벌의 계책을 상주했으니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후 강서와 복건의 제점형옥(提點刑獄), 호북과 강남의 전운부사(轉運副使),
복건 일대의 안무사(安撫使) 등을 두루 거친 뒤 대리소경(大理少卿), 병부시랑(兵部侍郎)
등을 지냈다. 남송 영종 개희 3년(567)에 세상을 떠났다. 향년 68세였다.
대표적인 작품으로 경구의 북고정에 올라 회상한다는 뜻의
「남향자 南鄕子 - 등경구북고정유회 登京口北固亭有懷」을 들 수 있다.
어느 곳에서 중원을 바라보면 좋단 말인가? 何處望神州(하처망신주)
경치가 멋들어지게 펼쳐져 있는 북고루 滿眼風光北固樓(만안풍광북고루)
천고에 많은 일이 흥망을 거듭할지라도 千古興亡多少事(천고흥망다소사)
유유히 흐르는 悠悠(유유)
장강은 끊임없이 거세게 흐르다 不盡長江滾滾流(부진장강곤곤류)
젊었을 때 일만 군사 거느리고 年小萬兜鍪(년소만두무)
동남쪽 점거한 채 쉬지 않고 싸웠으니 坐斷東南戰未休(좌단동남전미휴)
천하 영웅들 중 누가 그 적수가 되랴 天下英雄誰敵手(천하영웅수적수)
조조와 유비라네 曹劉(조유)
아들을 낳거든 응당 손권을 닮아야지 生子當如孫仲謀 (생자당여손중모)
북고산에 올라 장강 북쪽에 있는 중원 땅을 바라보며 손권 같은 영웅이 나타나 금나라에 빼앗긴
중원 땅을 하루속히 수복하기를 바라는 심경이 절절히 묻어난다.
원대한 포부를 지니고 있었던 까닭에 그의 작품 역시 주로 강의(剛毅)한 모습을 띤 사물을
묘사한 게 많다. 눈바람을 아랑곳하지 않는 청송(靑松)과 청죽(靑竹), 매화(梅花)등이 그렇다.
박산으로 가는 길 도중에 벽에 썼다는 내용의 「추노아 醜奴兒 - 서박산도중벽 書博山道中壁」이
대표적이다.
소년은 우수를 몰라 높은 데로 오르길 좋아하다
小年不識愁滋味, 愛上層樓 (소년불식수자미, 애상층루)
그러기를 좋아해 글을 쓰면 억지로 우수를 말하지
愛上層樓 爲賦新詞强說愁 (애상층루 위부신사강설수)
우수의 맛을 알자 시를 말하고 싶어도 말을 못하다
而今識盡愁滋味 欲說還休 (이금식진수자미 욕설환휴)
그러다가 고작 ‘아, 청량한 가을이여’라고 한마디 하지
欲說還休 却道天涼好個秋 (욕설환휴 각도천량호개추)
신기질은 나라가 패망하는 난세의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외적인 금나라 세력에 굴복하지 않고
무장봉기 하여 반격을 가하는 등 애국자의 삶을 살았다.
청대 말기의 많은 문인들이 그의 시에서 애국의 충혼을 살리고자 한 이유다.
그의 시는 내용도 풍부하고, 형식도 자유로웠다.
소동파의 호방한 품격과 남송 초기 애국 시인들의 투쟁적 정신을 계승해 작품의 주제와
사상적 영역을 더욱 확대했다.
학자들이 그와 소동파를 통틀어 이른바 호방파(豪放派)로 분류하는 이유다.
드는 소동파처럼 시(詩)를 쓰는 식으로 사(詞)를 지었으나 이를 한층 더 발전시켰다는 평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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