心天同體(심천동체)

2026. 1. 22. 17:00좋은글

菜根譚
제 174장 : 心天同體(심천동체) :

사람의 마음은 우주와 똑같다.~


心體    便是天體    一念之喜   

景星慶雲    一念之怒    震雷暴雨
심체    변시천체    일념지희   

경성경운    일념지노    진뢰폭우


一念之慈    和風甘露    一念之嚴   

烈日秋霜    何者小得?
일념지자    화풍감로    일념지엄 

  열일추상    하자소득?


只要隨起隨滅    廓然無碍    便與太虛同體
지요수기수멸    곽연무애    변여태허동체


심체(心體)는 곧 천체(天體)와 같다.
하나의 기쁜 생각은

상서로운 별이자 경사스런 구름이고,
하나의 노여운 생각은 천지를 진동시키는

우레이자 쏟아지는 폭우이고,


하나의 자비로운 생각은 부드러운 바람이자 맑은 이슬이고,
하나의 엄격한 생각은 타오르는 햇볕이자 가을의 서릿발이다.
그 어느 것인들 없어서야 되겠는가?


다만 때를 쫓아 일어나고 사라질 뿐이니 조금도 막힘이 없다.
심체가 우주의 근원인 태허(太虛)와 함께하는 이유다.




경성경운(景星慶雲)의 ‘경성’은 서성(瑞星) 이나 덕성(德星)과 같은 말이다.
‘경운’은 5색의 상서로운 구름을 지칭한다.
진뢰폭우(震雷暴雨)는 천지를 진동시키는 우레와 갑자기 쏟아지는 비를 말한다.
화풍감로(和風甘露 )는 부드러운 바람과 맑은 이슬을 뜻한다.
열일추상(烈日秋霜)은 뜨거운 여름날의 햇볕과 차가운 가을날의 서릿발을 통칭한 것이다.
태허(太虛)는 『도덕경』과 『장자』에서 말하는 도(道)를 달리 표현한 것이다.
사람은 흔히 작은 우주에 비유된다. 마음은 하늘이다. 하늘은 넓고 크다.
하늘에 별과 구름이 있듯이 마음에도 희로애락의 변화가 있다.
모든 것이 일어날 때 일어나고 사라질 때 사라지면 아무 문제가 없다.
마치 밤낮의 변환 및 사계절의 순환과 닮았다.
문제는 이런 변환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오랫동안 흐리거나, 차가운 냉기가 지속되는 등의 사태가 빚어질 때다. 먹구름이 가득 찬 가슴은 옹색할 수밖에 없고, 결국 그릇된 판단과 행동을 이끌게 된다.
늘 마음을 비워야 하는 이유다. 텅 빈 가슴만큼 여유 있는 게 없기 때문이다.
소유욕을 키우는 것은 한바탕 비를 뿌린 후 맑은 하늘이 제 모습을 드러내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도리불언(桃李不言), 하자성혜(下自成蹊)라는 성어가 있다.
‘도리’는 복숭아나무와 자두나무, 또는 그 꽃이나 열매를 가리킨다. 자두는 오얏이라고도 한다.
젊음을 상징하는 까닭에 청춘을 도리년(桃李年)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도리만천하(桃李滿天下)는 제자나 후배가 천하에 가득하다는 뜻이다.
‘도리’가 가르친 제자나 이끌어준 후배를 지칭한 데서 나온 표현이다.
불언(不言 )은 자랑이나 선전의 말을 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혜(蹊)는 도로라는 뜻이나 여기서는 작은 길 내지 지름길을 뜻하는 혜경(蹊徑)의 의미로 사용됐다.
복숭아나무와 오얏나무는 사람을 부르는 아무런 자랑이나 선전의 말도 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사람이 찾아들어 그 아래에 길이 생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달콤한 열매를 맺기 때문이다.
덕이 있는 사람은 나서서 말하지 않을지라도 사람들이 저절로 찾아오는 것과 같다.
이익이 나고 이권이 있는 곳에도 어찌 알았는지 사람이 몰려든다.
사람이 좋아하는 것이 바로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이 성어(成語)는 한무제 때의 장군 이광(李廣)을 기리는 사마천의 평에서 나온 것이다.
『사기』 「이장군열전」에 따르면 당대 최고의 궁술을 자랑했던 이광은 시골 사람처럼 투박하고 말도 잘하지
못했으나 사대부들은 오히려 그의 이런 충실한 마음씨를 높이 평가했다.
그는 포상을 받으면 이를 전부 부하들에게 나눠줬다.
목이 마를지라도 병사들이 물을 다 마시기 전에는 물에 가까이 가지도 않았다.
그에게는 활을 쏠 때 희한한 습관이 있었다.
적이 습격해 와도 거리가 수십 보 안에 들어오지 않거나 명중시킬 자신이 없으면 쏘지 않았다.
대신 쏘기만 하면 활시위 소리가 나자마자 상대를 고꾸라지게 만들었다.
이처럼 싸움 자체를 즐긴 까닭에 싸움터에서 자주 적에게 포위되거나 곤욕을 당했다.
흉노를 공격해 무찔렀을 때도 이광은 흉노의 포로로 잡혔다가 도망쳐 돌아왔다.
맹수의 공격을 받아 다치는 일도 적지 않았다.
원수 2년(기원전 121), 이광이 4천 명의 병사를 이끌고 출전했다가 4만 명의 흉노의 군사에게 포위당했다.
그는 부하에게 명하여 원형의 진을 만들게 하고 자기도 강궁을 가지고 적에게 화살을 퍼부었다.
화살이 떨어지자 부하들이 크게 당황했다. 그러나 그는 침착하게 적장을 쏘아 쓰러뜨렸다.
흉노의 군사가 두려워하며 근접하지 못했다. 결국 진영을 굳게 지킨 덕분에 원군에게 구출되었다.
이때 그는 선전하기는 했으나 부하를 많이 잃은 탓에 제후에 봉해지지 못했다.
원수 4년(기원전 119) 곽거병과 위청이 5만 명의 군사를 이끌고 흉노 토벌에 나섰다.
이들 뒤로 수십만 명의 군대가 따라갔다.
당시 이광은 종군할 것을 강력 원했으나 한무제는 그의 노령을 염려해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광이 재삼 요청하자 한무제는 부득불 이광을 위청의 한 부장(部將)으로 임명했다.
위청은 그를 우장군으로 종군하게 하면서 동쪽 길로 나아가 막북(漠北)에서 합류하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이광은 도중에 길을 잃는 등 애로가 많아 기한 안에 당도하지 못했다.
당시 곽거병은 대군(代郡), 위청은 정양에서 출진했다.
진군 도중 위청은 선우의 군대를 공격해 2만 명의 목을 베거나 사로잡았다.
그러나 흉노의 선우는 혼전의 틈을 타 재빨리 도주했다. 화가 난 위청이 이광에게 책임을 물었다.
제 때 도착하지 못해 선우를 놓쳤다는 게 이유였다.
이광은 모든 죄가 자기에게 있다며 부하를 감싼 뒤 막사로 돌아와 이같은 말을 남기고 자진했다.
“나이 60이 넘어 심판을 받는 치욕은 견딜 수 없다!”
휘하 장병은 물론 모든 사람이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사마천은 「이장군열전」에서 그의 죽음을 애석히 여기며 그의 평소 품행을 ‘도리불언, 하자성혜’ 성어를
동원해 크게 기렸다.


『논어』 「자로」에서 말하기를, ‘몸이 바르면 명하지 않아도 행해지나, 몸이 바르지 못하면 비록 명할지라도
백성들이 따르지 않는다.’고 했다.
이는 이 장군의 경우를 말한 게 아닐까? 나는 이 장군이 마치 천인처럼 몸 둘 바를 모르면서,
입 밖으로 사절한다는 얘기를 꺼내지 못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가 자진한 날 그를 알든 모르든 천하의 모든 사람이 그의 죽음을 애통해한 이유다.
그의 충실한 행보와 성신(誠信)한 마음을 그 어떤 사대부에 비할 수 있을까?
속담에 말하기를 ‘도리불언, 하자성혜’라고 했다.
이는 비록 작은 것을 언급한 것이기는 하나 이 장군의 경우처럼 커다란 일에도 그대로 적용할 만한 얘기다.“
이광은 생전에 흉노와 70여 차례 싸운 공을 인정받아 비장군(飛將軍)의 자리까지 올랐다.
그러나 그게 끝이었다.
그는 제후의 반영에도 오르지 못한 채 위청의 비판에 분을 이기지 못해 이내 자결하고 말았다.
그는 당대 최고의 용장(勇將)이기는 했으나 정치에 밝지 못해 결국 희생양이 되었다고 평할 수밖에 없다.
다만 사마천이 얘기한 것처럼 ‘도리불언, 하자성혜‘의 삶을 산 덕분에 후대인의 칭송을 받는 게
그나마 위안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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