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1. 10. 11:58ㆍ자유게시방
한국 전쟁 때 "모든 걸 걸고 한국을 지켜줬지만" 미국 때문에 감춰진 나라
아프리카에서 날아온 카그뉴, 에티오피아의 선택
아프리카에서 한국전쟁 참전을 결정한 국가는 에티오피아 한 나라뿐이었다. 당시 하일레 셀라시에 1세 황제는 유엔군 파병 요청에 “제2차 세계대전 때 에티오피아를 도와준 국제사회에 보답해야 한다”며 정예 부대를 보내기로 결단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에티오피아는 황실 근위대 출신으로 구성된 ‘카그뉴(Kagnew) 부대’를 1951년부터 순환 파병했고, 총 약 3,500명이 한국 땅을 밟았다. 이 부대는 지평리·백마고지 등 격전에서 미군과 함께 싸우며 전사자는 났지만, 끝까지 포로로 잡힌 병사가 한 명도 없었다는 ‘무포로 부대’ 전설로 기억된다.
한국 전쟁 때 "모든 걸 걸고 한국을 지켜줬지만" 미국 때문에 감춰진 나라
남미 대륙 유일의 참전국, 콜롬비아
남미에서 한국전쟁에 전투병을 보낸 나라는 콜롬비아가 유일하다. 콜롬비아는 약 5,100명의 지상군과 해군 함정을 파견해 금성 전투, 오두산 전투 등에서 유엔군 일원으로 싸웠다.
해군은 구축함 ‘알미란테 파디야’를 포함한 함정을 보내 동해·서해에서 해상 봉쇄·호송·포격 임무를 수행하며, 한반도 해역 작전에 기여했다. 전투와 해상 작전을 통틀어 약 600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것으로 집계되는데, 이는 단일 남미 국가가 지구 반대편 전쟁에 어떤 수준의 책임을 감수했는지를 보여주는 수치로 평가된다.
한국 전쟁 때 "모든 걸 걸고 한국을 지켜줬지만" 미국 때문에 감춰진 나라
‘형제의 나라’ 별칭의 뿌리, 터키의 헌신
오늘날까지도 한국에서 ‘형제의 나라’로 불리는 터키 역시 유엔군 참전국 가운데 하나다. 터키는 1950년 9월부터 전쟁이 끝날 때까지 약 1만 5,000명의 병력을 순환 파병했고, 이 중 상당수가 중공군과의 치열한 교전이 이어진 중부·동부 전선에 투입됐다.
특히 군우리·쿤우리 일대 전투에서 터키군은 미군 부대가 포위되는 상황에서 후방 방어와 탈출로 확보를 맡아, 많은 희생을 치르면서도 미 제8군의 후퇴를 가능하게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전쟁 뒤 터키는 한국전 참전용사를 위한 기념비·묘역을 서울·부산 등에 세워 달라고 요청했고, 한국 역시 앙카라·이즈미트 등에 참전 기념비를 조성하며 ‘형제 나라’라는 감정을 공식적으로 이어가고 있다.
한국 전쟁 때 "모든 걸 걸고 한국을 지켜줬지만" 미국 때문에 감춰진 나라
동남아에서 가장 많은 병력, 태국의 파병
동남아시아에서 한국전쟁에 가장 많은 전투병을 보낸 국가는 태국이다. 태국은 약 1만 1,000명의 지상군을 순환 파병했으며, 해군·공군까지 포함하면 파병 전력은 더 늘어난다.
태국군은 지평리 전투, 철의 삼각지대 인근 고지전 등에서 미·영·한국군과 함께 중공군·북한군과 교전하며 상당한 전과와 손실을 동시에 기록했다. 냉전 초반 반공 진영에 선명하게 서겠다는 정치적 선택이기도 했던 태국의 파병은, 이후 미·태국 안보 협력과 동남아 냉전 구도 형성에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가 뒤따른다.
한국 전쟁 때 "모든 걸 걸고 한국을 지켜줬지만" 미국 때문에 감춰진 나라
병력은 적어도 끝까지 남았다, 그리스와 필리핀
지중해의 그리스는 1,000명 남짓한 규모의 지상군과 공군 수송부대를 파견했다. 그리스 지상군은 금성 전투를 비롯한 중·동부 전선 방어 임무에 투입됐고, 공군은 낯선 한반도 상공에서 병력·물자 수송 임무를 수행하며 전쟁 내내 병참선을 떠받쳤다.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파병을 결정한 국가는 필리핀이다. 필리핀은 ‘필리핀 원정군(PHILCAG)’ 이름으로 약 7,400명의 병력을 순환 파병해 금성·피의 능선 등 주요 전투에 참여했고, 특히 철의 삼각지대 방어에서 미군과 함께 중공군 공세를 저지하는 역할을 맡았다. 전쟁 이후 필리핀은 한국과 경제·안보 협력을 지속적으로 확대하며 참전 인연을 양국 관계의 자산으로 삼고 있다.
한국 전쟁 때 "모든 걸 걸고 한국을 지켜줬지만" 미국 때문에 감춰진 나라
왜 이 나라들은 자주 잊히는가
한국전쟁 참전국을 떠올릴 때 많은 사람들이 미국·영국·캐나다·호주 같은 영어권 국가를 먼저 떠올리지만, 유엔군 깃발 아래에는 총 16개 전투병 파병국과 5개 의료지원국이 있었다.
이 가운데 에티오피아·콜롬비아·터키·태국·그리스·필리핀처럼 문화적·지리적으로 한국과 거리가 먼 나라들은 국내 교과서·대중매체에서 상대적으로 비중 있게 다뤄지지 못했고, 냉전기 미국 중심의 전쟁 서술 속에서 뒷전으로 밀려난 측면도 있다. 그러나 이들 국가는 적게는 수백 명, 많게는 수만 명의 병력을 보내 낯선 언어와 기후, 지형 속에서 전투를 치렀고, 수십·수백 명의 전사자와 실종자를 남겼다.
한국 전쟁 때 "모든 걸 걸고 한국을 지켜줬지만" 미국 때문에 감춰진 나라
“우리를 위해 싸운 이름들”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
한국전쟁은 한반도 안에서 벌어진 전쟁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자유 진영과 공산 진영이 정면으로 충돌한 ‘세계 전쟁’이었다. 전쟁 발발 당시 한국은 군사·경제적으로 절대적인 열세였고, 국제사회의 지원 없이는 국토와 체제를 지켜내기 어려운 상황이었다는 점은 많은 연구에서 공통으로 지적된다.
미국·영국 같은 강대국 못지않게, 인구와 국력에서 훨씬 작은 나라들이 “자신들의 한 표”를 행동으로 던졌기 때문에 유엔군이라는 연합 전선이 유지될 수 있었다. 에티오피아·콜롬비아·터키·태국·그리스·필리핀의 파병과 희생은 오늘날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중견국’으로 목소리를 내는 과정에서 결코 잊어서는 안 될 빚이다. 그들의 이름을 기억하는 일은 단순한 예의가 아니라, 위기 때 함께한 동맹과 연대를 다음 세대에 정확히 전승하는 일과 직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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