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문(獨立門)
2025. 12. 6. 12:12ㆍ자유게시방

독립문(獨立門)
독립문은 사적 제32호로, 조선말에서 대한제국으로
이어지는 1896년부터 1898년에 걸쳐 완공되었다.
양식은 유럽식 개선문의 모습을 하고 있으나, 문의 기능을
수행할 목적으로 만든 것이 아닌 기념비(monument)로서
만든 것이다. 독립문은 건립 당시부터 청나라뿐만 아니라
일본과 러시아 등 모든 열강들로부터의 독립을 의미했다.
청일전쟁에서 청나라가 패배한 이후, 조선과 청나라의
전통적 사대관계를 상징한 영은문이 1895년 2월 박영효의
제의로 철거되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독립문을 건립할 계획은
없었으며, 영은문터는 방치되었다. 다음 해인 1896년에
독립문 건립 추진 운동이 일어났고, 같은 해 6월에 고종이 독립문
건설 계획을 승인하여 독립문의 건설이 시작된다.
또한 독립신문 영문판 1896년 6월 20일 사설에서, 독립문은
청나라와의 오래된 사대관계를 청산하는 근거로서 건립하는
것임과 동시에 "이 문은 청나라뿐만 아니라 일본과 러시아,
모든 유럽 열강들로부터의 독립을 의미한다"라고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일각에서 제기되는 "독립문은 청나라로부터의
독립만을 상징한다"는 주장에 정면으로 대치되는 자료인 셈이다.
독립문 건설을 위해 서재필은 파리의 에투알 개선문을
토대로 기본 스케치를 했고, 이를 바탕으로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독일 공사관 출신 스위스인이 설계를 했으며, 시공은
한국인 건축가 심의석이 담당하였다. 건설 비용은 독립신문과
독립협회가 모금 운동을 벌여 얻은 성금과
고종의 하사금으로 충당했다.
1979년, 구자춘 서울특별시장이 성산로[12]를
건설하는 건설하는 과정에서
현저 고가도로와 금화터널 예정지가 독립문 부지와 간섭되자,
이를 이격 시켜 고가도로를 놓기 위해 그냥 통째로 들어 옮겼다.
1979년에 성산로 공사로 인해 본래의 위치에서
북서쪽으로 70미터 정도 이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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