花子木人(화자목인)

2025. 12. 6. 07:34좋은글

菜根譚

제 150장 : 花子木人(화자목인) : 진심과 활기가 없으면 거지와 장승이나 다름없다.

 

作人 無點眞懇念頭 便成個花子 事事皆虛

작인 무점진간염두 변성개화자 사사개허

 

涉世 無段圓活機趣 便是個木人 處處有碍

섭세 무단원활기취 변시개목인 처처유애

 

사람으로 살면서 한 점의 참된 생각이 없으면 곧 화장할 때 사용하는 장식물 같은 사람이 되고 만다.

하는 일마다 허망할 것이다.

세상을 살면서 일단의 원활한 기운과 멋이 없으면 곧 목석같은 사람이 되고 만다.

가는 곳마다 막힐 것이다.

 

 

화자(花子)는 크게 3가지 뜻이 있다.

첫째, 거지를 뜻하는 걸개(乞丐)의 속어(俗語)이다.

명나라 때 사조제(謝肇淛)가 쓴 오잡조(五雜粗) 인부(人部)에는 ‘경사에서는 거지를 화자’로 부른다.

왜 그같이 부르게 됐는지는 알 길이 없다고 했다.

둘째, 옛날 부녀들이 화장할 때 이마 위에 붙인 장식을 말한다.

당나라 때 단성식(段成式)의 유양잡조(酉陽雜俎) 경(黥)에는 ‘지금 부녀들은 얼굴에 ’화자‘를 사용한다.

황제의 후궁인 소용(昭容)으로 있던 상관씨(上官氏)가 처음으로 사용한 것이다.

얼굴 위에 점을 가리기 위한 조치였다. 고 했다.

셋째, 화초의 종자를 말한다.

송나라 육유(陸游)는 천팽모란보(天彭牡丹譜) 화석명(花釋名)에서 “여러 꽃을 심는 집들이 다양한 종류의

’화자‘를 심고 개화 과정의 변화를 감상했다”는 구절이 나온다.

여기의 ’화자‘는 두 번째 의미로 사용된 것이다.

 

목인(木人)도 크게 3가지 뜻이 있다.

첫째, 냉혹하고 무정하여 목석같은 사람을 비유한다.

목인석심(木人石心)이 그렇다.

둘째, 나무로 만든 목제 인형을 말한다.

『전국책』 「연책」에는 “송나라 왕이 무도하니 나무로 과인의 형상을 만든 뒤 그 얼굴에 화살을 쏘았다.

송나라가 멀리 떨어져 있는 까닭에 그를 공격하지 못했다”는 구절이 나온다.

셋째, 오행설에서 말하는 목기(木氣)를 받고 태어난 사람을 지칭한다.

수나라 때 소길(蕭吉)의 『오행대의 五行大義』 「논인배오행 論人配五行」의 『녹명서 祿命書』에 이르기를,

금인(金人)은 굳세고 강하면서 자신의 의지대로 일을 추진하는데 반해 목인(木人)은 화려하면서 우아하다. 고

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여기서도 첫 번째 의미로 사용된 것이다.

매사에 조금이라도 진지한 마음이 없으면 이내 거지 같은 삶을 살게 된다.

하는 언동 모두 허망해 믿을 게 없기 때문이다.

또한 원활한 기상이 없으면 곧 나무로 만든 사람과 같다.

가는 곳마다 장애를 만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주어진 업무에 최선을 다해 성실히 임하면서 원만하면서도 진취적인 기상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 사람들의 믿음을 사 더욱 크게 발전할 수 있다.

 

대표적인 인물로 서진 초기의 인물 배해(裵楷)를 들 수 있다.

진무제 사마염은 막 보위에 올랐을 때 마음속으로 진나라가 과연 몇 대나 이어질까 궁금해하며 점을 쳤다.

’일(一)‘의 점괘가 나왔다. 불쾌한 점괘라고 생각해 침통해졌다.

신하들 역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감히 아무도 나서서 말을 꺼내지 못했다.

이때 시중으로 있던 배해가 나서 이같이 말했다.

“신은 옛사람이 말하기를, 하늘이 하나를 얻으면 맑고,  땅이 하나를 얻으면 평안하고,

제왕이 하나를 얻으면 안정된다. 고 했다고 들었습니다.”

진무제도 기뻐하고 신하들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듯이 배해는 당대의 명신이었다.

자가 숙칙(叔則)인 그는 삼국시대 위나라 명제 경초 원년(237)에 기주자사(冀州刺史)로 있던

배휘(裵徽)의 아들로 태어났다. 조부 배무(裵茂) 역시 후한 말기 영제 때 군수와 상서를 역임했다.

배해는 어렸을 때부터 총명하며 호학했다. 특히 『도덕경』과 『주역』에 밝아 널리 명성을 떨쳤다.

고귀향공(高貴鄕公) 정원 2년(255)에 대장 종회(鐘會)의 천거로 대장군 사마소(司馬昭)의 속관이 되었다가

상서랑으로 승진했다.

사마염이 중무군대장군(中撫軍大將軍)이 되면서 그를 휘하 참모로 발탁했다.

사마염이 즉위한 후 산기시랑(散騎侍郞), 하내태수(河內太守) 등을 역임했다가 조정으로 들어가

우군장군(右軍將軍)을 거쳐 시중(侍中)이 되었다.

태시 4년(268), 진나라 법률과 전장(典章) 등의 제정을 주도했다.

사마염이 크게 기뻐하며 배해로 하여금 이들 전장 제도를 친히 낭독하게 했다.

문무백관들이 탄복을 금치 못하며 배해를 ’옥인(玉人)‘으로 불렀다.

당시 삶들은 배해 가문의 뛰어난 인물을 통칭하여 8배(八裵)로 부르기도 했다.

배해를 포함해 그의 부친 배휘와 그의 형 배강(裵康), 동생 배작(裵綽), 아들 배찬(裵瓚),

조카 배하(裵遐)와 배막(裵邈), 당질 배외(裵頠) 등이 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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