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항구의 옛모습

2020. 6. 15. 00:08그때그시절 세계역사 625

인천항구의 옛모습

 

 

 

제물포항 곡물 수탈해 배로 옮기는 일본군인들

 

 

제물포항과 월미도

 

 

한국 최초의 호텔 '대불호텔'

1888년 인천시 중구 중앙동에 세워진 ‘대불호텔’ 이 호텔은 1902년 서울시 중구 정동에 들어선 ‘손탁호텔’보다 14년이나 앞선 것이었다. 대불호텔은 일본어가 아닌 영어로 손님을 맞았으며 침대가 딸린 객실 수는 11개, 다다미 수는 240개에 달했다. 숙박료는 당시 화폐로 상급 객실 2원 50전, 중급 2원, 하급 1원 50전이었다. 같은 시기 일본식 여관인 ‘수월루’의 상급 객실 숙박료가 1원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무려 2배 이상 비쌌음을 알 수 있다. 호텔 내에서는 외국인들의 입에 맞는 서양요리도 제공한 것으로 전해진다.

 

 

인천상륙작전

 

동인천역

 

주안역

 

주안염전

옛날에는 주안이 바다였음

1907년 인천 주안에 최초의 근대식 염전을 만들었는데, 현 부평구 십정동 서울제강 정문 부근이었다. 처음에는 1정보(3000평) 가량의 천일염전을 시험적으로 축조했다. 이곳에는 지금 대형 공단이 들어서 있지만 예전에는 바닷가였다. 동시에 지금 인천의 중심가인 주안역 뒤쪽에는 소금 생산과 관리를 하는 사람들이 사는 주택들이 자리잡았다

 

 

그 유명한 성냥공장

제물포의 성냥공장

1900년 러시아 대장성이 발행한 ‘조선에 관한 기록’이란 보고서에는 “1886년 인천 제물포에 외국인들의 지휘 아래 성냥공장이 세워졌다. 그러나 얼마 안가 생산이 중단됐는데, 그 원인은 일본제 성냥이 범람했기 때문이다.”고 적혀 있다. 이 기록만으로는 성냥공장의 정확한 위치, 상호 등을 알 수 없지만 한국 최초의 성냥공장이 인천에 있었던 것만은 틀림없다.

 

 

축구와 야구

1882년 임오군란이 발생하자 영국 군함 ‘플라잉 피시호’는 일본측을 지원하기 위해 인천 제물포항에 들어와 주둔하고 있었다. 이 때 수병들이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잠시 상륙해 자기들끼리 축구를 했는데 이것이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벌어진 축구 시합이다. 야구 또한 인천에서 비롯됐다. 흔히 1905년 황성기독교청년회(서울YMCA)를 이끌었던 미국인 선교사 질레트가 회원들에게 처음으로 야구를 가르친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1895년 개교해 1904년까지 있었던 ‘인천영어야학회’ 학생들 사이에는 이미 야구가 도입돼 있었다. 당시 이 학교 1학년 학생이 남긴 1899년 2월 3일자 일기에서 “베이스볼이라는 서양 공치기를 했다.”는 기록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소래철교

 

배다리 시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