從容凱切(종용개절)

2025. 9. 21. 16:41ㆍ좋은글

菜     根     譚
제 113장 : 從容凱切(종용개절) :

골육이 변을 당하면 침착하고, 친구가 잘못하면 충고하라.


處父兄骨肉之變    宜從容不宜激烈   

遇朋友交遊之失    宜凱切不宜優遊
처부형골육지변    의종용불의격열   

우붕우교유지실    의개절불의우유


부모형제 등의 골육에 변이 생기면 응당 침착해야

하고 결코 흥분해서는 안 된다.
붕우와 교유하는 과정에서 허물을 보게 되면 응당

적절히 충고해야 하고 결코 방관해서는 안 된다.




부모형제 사이에 빚어지는 변란인 골육지변

(骨肉之變)과 붕우와 교유하는 과정에서 빚어지는 
여러 과실(過失)을 뜻하는 교유지실

(交遊之失)이 대구(對句)로 나와 있다.
개절(凱切)은 아주 알맞고 적절하다는 뜻이다.
적절(適切) 내지 적의(適宜)와 같다.
우유(優遊)는 통상 여유롭고 관대하다는

뜻으로 사용되나 여기서는 태만한 자세로 방관하는 
모습을 보인다는 의미로 사용 되었다.
골육지변과 관련한 일화로 한문제(漢文帝)

때 제(齊) 땅의 태창령(太倉令)을 지낸
명의(名醫) 순우의(淳于意)의 일화를 들 수 있다.
그는 정직하고 청렴한 관리로 명성이 높았다.

그는 딸만 5명이었다.
여후(呂后) 8년(기원전 180), 그는 다시 같은

군에 사는 공승(公乘) 양경(陽慶)에게 사사(師事)했다
‘공승’은 진나라가 제정하고 한나라가 답습한 20등

작(爵) 중 8번째 작위(爵位)다.
출행할 때 수레를 타고 다닐 수 있어 붙인 이름이다.
진나라와 한나라 초기에는 7번째 작위인 공대부(公大夫)

부터 높은 작위로 인정했으며
한고조에 의해 7대부 이상부터 식읍을 주도록 규정했다.
문제(文帝) 때 9번째인 오대부(五大夫) 이상을

급작위로 규정하여 오대부 이상의 작위를 갖은 사람을
국가에 대한 부역을 면제시키고 공승 이하부터는

일반인처럼 복역하도록 했다.
후한(後漢) 명제(明帝)때 다시 일반 백성의 작위는

공승을 넘지 않도록 했다.


당시 나이가 이미 70이 된 양경 에게는 자신의 의술을

이어받겠다는 자식이 없었기 때문에
순우의에게 전에 의술을 모두 버리게 하고

자신의 비방을 모두 전수했다.
황제(黃帝)와 편작(扁鵲)이 지은 맥서(脈書)를 전해주고,
다섯 가지 안색으로 병을 진단하여 사람의 생사를

알 수 있는 의술을 가르쳤다.
맥서는 [한서] (예문지)에 따르면 황제내경(黃帝內經),

황제외경(黃帝外經), 편작내경(扁鵲內經),
편작외경(扁鵲外經) 등의 의서가 있다고 전하나

망실 되어 전하지 않는다.
맥서(脈書)는 맥상(脈象)과 맥리(脈理)에 관한 의서로

의심스러운 점을 진단하여 치료할 수 있게
만들었으며 약(藥)에 대한 이론은 매우 자세하였다.
이윽고 양경에게서 의술을 배운 지 3년이 되자 다른

사람을 치료할 수 있게 된 순우의는
죽고 사는 문제를 판단한 일로 효험을 많이 보았다.
그러나 임치 좌우의 제후국을 돌아다니며 놀기만 하면서

자기의 집을 항상 비워두었을 뿐만 아니라
어떤 때는 사람들의 병을 치료하지도 않았음으로 병자가

있는 집들은 모두 순우의를 원망했다.
한문제(漢文帝) 4년(기원전 176), 어떤 사람이

서장(書狀)을 올려 순우의를 고발했다.
순우의는 신체의 일부를 절단하는 육형(肉刑)에 해당하는

판결을 받아 역마로 장안에 압송될
운명에 처하게 되었다.
육형은 이마에 자자(刺字) 즉 먹으로 글자를 새기는

경형(黥刑), 코를 베는 의형(劓刑), 
발굼치를 베는 비형(非形), 생식기를 자르는 궁형(宮刑),

그리고 참수하는 대벽(大辟) 등의 
여섯 가지를 말한다.
이 중 효문제(孝文帝)는 경형(黥刑), 의형(劓刑),

비형(非形) 세 가지 형벌을 철폐했다.
당시 순우의에게 딸만 다섯이 있었다. 이들 모두

뒤따르며 울기만 할 뿐이었다.
대노(大怒)한 순우의가 딸들을 꾸짖었다.
"아들을 못 나 딸들만 있으니 급할 때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구나!“
막내딸 제영(緹縈)이 부친의 힐난을 듣고 이내

장안으로 압송되는 부친을 따라나섰다.
이윽고 장안에 당도한 뒤 한문제(漢文帝)에게

상소문(上疏文)을 올렸다.


”소첩의 부친은 관리가 된 이래 제나라 땅에서는

청렴함으로 칭송을 받아 왔습니다만
지금 법에 연좌되어 형벌을 받게 되었습니다.
소첩이 애통하게 생각하는 바는 죽은 사람은

다시 살릴 수 없고 육형을 받은 사람은 떨어진 부위를
다시 붙일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비록 잘못을 고쳐 새롭게 살려고 해도 그 방법이

없으니 끝내 기회를 얻을 수 없습니다.
원컨대 소첩을 관비로 삼아 아버지의 형벌에

대한 죄를 속죄케 하여 그로 하여금 잘못한 점을 고쳐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재영의 상소문을 읽은 한문제(漢文帝)는 크게 감동을 받고
그 해에 한나라의 법에 육형이라는 제도를 없애버렸다.
육형을 철폐한 해는 한문제 13년(기원전 167)이다.
재영의 상소문이 ‘골육지변’을 당한 부친에게 화를

면하게 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일반 백성들에게도 혹형을 면하게 하는

결정적인 계기로 작용한 셈이다.
전화위복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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