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탑에서 붉은 기운이 감도는 병원까지는 지척이다.
생명의 온기가 느껴지는 병원 건물을 제외하고는
모든 것이 죽어 있는 듯 삭막하다.
잿빛 콘크리트 건물들은 침묵하고 멈춰버린
시계탑은 시간을 잃은 망령처럼 서 있다.
그 어떤 희망도 활기도 찾아볼 수 없는 절망만이 가득한 풍경이다.
앉은뱅이처럼 웅크린 상가들은 병원을 드나드는 발걸음 덕에
묵묵히 부가가치를 쌓아 올리고 있다.
마치 뿌리 깊은 나무가 보이지 않는 땅속에서 수분을 빨아올리듯
삶의 에너지를 조용히 축적하는 풍경 같았다. 겉으로는 초라해 보이지만
안에는 끈질기게 생을 지탱하는 힘이 서려 있었다.
가로수의 무성한 가지 사이로 씽씽 부는 바람
소리가 망나니의 칼날처럼 뒤를 쫓는다.
점점 거세지는 바람 소리가 귓가에 속삭이는 저승사자 목소리 같아 목덜미가
섬뜩해 오는 걸 느낀다. 하늘은 검은 먹구름이 뒤엉켜 금방이라도 폭우가 쏟아질 기세였다.
나는 불안에 휩싸인 눈길로 하늘을 흘깃거리며 병원 쪽으로 거의 뛰다시피 발걸음을 옮겼다.
익숙하다고 믿었던 죽음의 그림자가 오늘따라 유난히 짙게 드리워졌다.
마지막 순간을 곁에서 지켜온 나였지만 여전히 죽음 앞에서는 작은 인간일 뿐이었다.
탁하고 무거운 하늘빛이 마주하게 될 또 다른 이별을 예고하는 듯하여
가슴속이 서늘하게 식어 내려갔다. 지금껏 내 손을 거쳐 간 주검들이
족히 몇백구는 넘을 것이다. 헌데도 가끔 이유 없는 공포감에
온몸이 연탄불 위의 오징어처럼 오그라들 때가 있었다.
그럴 때마다 이 직업도 그만둬야지 다짐하곤 했다.
지하는 병원의 크레졸 냄새 대신 억지로 뿜어져 나오는 듯한 솔잎 향으로 가득했다.
인위적인 상쾌함은 상주들이 피워 올리는 향의 씁쓸함과 뒤섞여
미묘한 불협화음을 만들어 냈다. 냄새는 얽히고설켜 지상 어딘가로
끊임없이 빠져나가려 발버둥 치는 듯했다. 영안실 복도는
조문객들의 침묵과 애도의 숨소리로 가득했다. 나는 그 소리를
뒤로하고 복도 가장 끝에 있는 작은 방으로 향했다.
그곳은 나의 사무실이자 때로는 쪽잠을 청하는
간이침대가 놓인 휴식 공간이다. 책상과 의자 그리고 몇 권의 책이
전부인 방에서 이름 모를 이들의 마지막을 기다렸다.
의사의 사망 선고를 받은 한 구의 시신과 마주했다.
차가운 냉동고 문이 열리고 잠시 고인을 바라보았다.
하얀 시트로 덮인 형체는 작고 연약해 보였다.
삶의 마지막 순간은 이토록 허무한 것일까.
굳게 감긴 눈꺼풀, 창백하게 식어버린 뺨.
한때는 뜨겁게 타올랐을 생명의 흔적은 차갑게 식어버린
육신만이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알 수 없는 무력감이 나의 온몸을 짓눌렀다.
매일같이 반복되는 일상이지만 죽음을 곁에서 지켜보는 일은 괴로웠다.
나는 묵묵히 고인의 시신을 냉동고 안으로 밀어 넣고
다음 차례를 기다리는 또 다른 고인을 맞이할 뿐이었다.
비교적 한가한 날이었다.
나는 잠시 영안실 풍경을 둘러보았다.
차가운 시신 곁에는 자식들이 하나둘 매달려 애끊는 통곡을 쏟아내고 있었다.
그 울음에는 저마다 다른 높낮이가 배어 있었다.
마치 제 설움에 맞춰 리듬을 타듯 구슬픈 사설을 읊조리는 듯한
울음이 있는가 하면 깊이를 알 수 없는 고통의 심연에서 울려
나오는 듯한 흐느낌도 있었다. 모든 울음소리가 한데 어우러져
나는 그것을 죽음의 클래식이라 명명하고 싶었다.
삶의 마지막 무대에서 연주되는 가장 슬픈 선율의 향연이라고.
또 다른 영안실에는 상주가 핏기 하나 없이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눈은 퉁퉁 부어 있었고, 핏발이 선 눈동자는 초점을 잃고 흔들렸다.
뺨은 눈물로 얼룩져 있었고 입술은 바싹 말라 갈라져 있었다.
여자는 붉게 부어오른 눈꺼풀과 푸석해진 얼굴은 그늘이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얼굴 전체가 붉게 상기되어 있었고 격렬한 울음과 슬픔에 숨 쉬는 것조차 힘겨워 보였다.
굳게 다문 입술은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충혈된 눈에서는 쉴 새 없이 눈물이 쏟아져 내렸고 콧물과 뒤섞여 턱을 타고 흘러내렸다.
어떤 이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쥔 채 몸을 떨었고 입술을 깨물며 흐느끼고 있었다.
등은 굽어 있었고, 어깨는 축 늘어져 있었다.
마치 세상의 모든 슬픔을 짊어진 듯 무거워 보였다.
다리에 힘이 풀린 듯 주저앉아 바닥을 치며 울부짖는 이도 있었다.
그들의 신체는 고통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다.
유족들이 오열하며 부르는 호칭에서 대략의 사태는 파악이 된다.
울음소리만으로 관계의 어떤 예감이 적중하는 것에 나는 재미를 붙였다.
엄숙하고 슬픈 분위기 속에서도 나는 눈알을 굴려 가며 가족들의 울음소리에 예감을 적중시켰다.
더 이상 일자리가 나타나지 않았을 때 이곳으로 왔다..
대학 졸업장은 그저 벽에 걸린 빛바랜 종이 조각일 뿐이었다.
4년제를 졸업하고 취직이 안 됐다.
다시 2년제 대학에서 자격증을 손에 쥐었지만 굳게 닫힌 취업의 문은 바늘구멍보다 좁았다.
매일 아침 희망 대신 절망을 삼키며 무거운 눈꺼풀을 겨우 들어 올렸다.
익숙한 듯 낡은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하루를 시작했지만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방황하는 그림자 같은 존재였다.
수 십만명이 '쉬는 청년'이라는 낯선 이름표를 단 채 숨만 쉬는 듯한 무력감에 휩싸였다.
미래는 보이지 않는 짙은 안개 속에 갇힌 듯했고 현재는 멈춰버린 시계처럼 흘러가지 않았다.
마치 세상과 단절된 섬처럼 고립된 채 외로움이 파도처럼 밀려와 온몸을 짓눌렀다.
삶의 벼랑 끝에 선 나에게 장례식장 일은 운명처럼 다가왔다.
“야, 임마! 뭐 하노? 너 나랑 일 한번 해볼래? 딴 데 가서 개고생 말고
돌아가신 분의 마지막 가시는 길 편안하게 모시는 일인데 같이 해볼 생각 있나?”
친구의 웃음 뒤에 숨겨진 진심을 나는 알고 있었다.
밑바닥까지 떨어진 나를 일으켜 세우려는 따뜻한 마음을. 나는 친구의 제안을 받아 들였다
녀석의 말은 간결했다.
구질구질한 설명 따위는 생략한 채 핵심만 짚어내는 특유의 화법은 여전했다.
백수 신세에 무얼 더 따지랴. 덧없이 뜨고 지는 직업들 속에서 보장된 일자리라니.
마음이 흔들렸다. 밑져야 본전 아닌가.
웅크린 그림자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던 어느 날 친구의 느닷없는
제안이 굳게 닫힌 문을 두드렸다.
망설임과 두려움이 뒤섞인 채 친구를 따라간 곳은 죽음을 통해 삶을 영위하는
이들이 모인 공간이었다. 차가운 공기가 감도는 그곳에는 누군가의 슬픔을
발판 삼아 돈을 버는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했다.
수의를 만드는 장인, 관을 짜는 목수, 꽃 장식을 만드는 플로리스트, 그리고
망자의 마지막 길을 안내하는 장례지도사까지.
그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죽음과 마주하며 삶을 이어가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들의 모습이 낯설고 불편하게 느껴졌다.
누군가의 슬픔을 이용하여 돈을 벌다니. 왠지 모를 죄책감이 들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의 삶에 대한 진지한 태도를 발견할 수 있었다.
수의를 만드는 장인은 한 땀 한 땀 정성을 다해 바늘질을 했고,
관을 짜는 목수는 망자의 편안한 안식을 기원하며 나무를 다듬었다.
플로리스트는 아름다운 꽃으로 슬픔을 위로하고, 장례지도사는
정중한 태도로 망자의 마지막 길을 안내했다.
그들은 슬픔을 외면하지 않았다. 오히려 슬픔을 마주하고, 그 슬픔을 통해
삶의 의미를 되새기고 있었다.
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웅크렸던 어깨를 폈다.
그리고 삶과 죽음의 아이러니 속에서 새로운 희망을 발견했다.
누군가의 슬픔을 발판 삼아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슬픔을 위로하고
삶의 가치를 되새기는 일을 하는 것이라고.
며칠 뒤 친구는 병원 지하로 나를 데려갔다.
그곳은 시신 안치실이었다.
음침하고 습한 기운에 섬뜩하고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친구는 담담하게 시신을 꺼냈다. 처음엔 너무 놀라 멍하니 서 있었다.
다시 어느 방으로 들어오라는 눈짓을 했다.
시신을 닦고 옷을 입히는 염습(殮襲)을 하는 곳이었다.
마스크, 소독수, 탈지면, 알코올, 소창, 가위, 손싸개, 발싸개. 기타
여러 가지 물품들이 가지런히 시신 옆에 놓여있었다.
후들거리는 가슴이 진정이 되지 않아 나가려 하자 마스크를 낀 친구가
나가지 말라고 눈짓을 했다. 쳐다볼 수가 없었다. 고개를 약간 옆으로 돌렸다.
친구는 익숙한 손짓으로 시신을 옆으로 돌리라고 눈짓했다.
하지만 내 손은 마치 만지지 말아야 할 것을 만진 것처럼
굳어버린 듯 움직이지 않았다.
차가운 시신에 손을 댈 때 심장이 멎는 듯한 섬뜩함이 온몸을 휘감았다.
뻣뻣하게 굳은 근육은 마치 돌덩이를 만지는 것 같았다.
겨우 손끝으로 시신의 어깨를 밀어 옆으로 돌렸다.
차가운 감촉, 뻣뻣하게 굳은 근육, 싸늘한 기운. 모든 것이 낯설고 두려웠다.
꺼림칙한 비위를 억누르며 스텐으로 된 차가운 바닥에서 시신을 씻었다.
물을 뿌릴 때마다 하얗게 굳은 피부가 드러났고 씻어낼수록 삶의 흔적이 지워지는 듯했다.
처음에는 그저 혐오스럽고 불쾌하기만 했던 감정이 점차 연민과 슬픔으로 변해갔다.
차가운 이 시신도 한때는 뜨거운 심장을 가진 사람이었을것이다.
사랑하는 가족이 있었을 것이고 이루고 싶은 꿈이 있었을 텐데.
이제는 모든 것이 멈춰버린 존재.
나는 마지막 가는 길을 돕는 사람이 되었다.
차가운 시신을 씻어내면서, 나는 내 안의 두려움과 혐오감도 함께 씻어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삶의 존엄성과 죽음의 의미에 대한 깊은
고뇌가 자리 잡기 시작했다.
나는 그저 시신을 닦는 사람이 아니라 삶의 마지막 페이지를 장식하는 사람이 된 것이다.
염사, 사람들은 부르기 좋게 장례지도사라고 말한다.
망자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는 직업. 삶의 흔적이 멎은 육신을 정갈하게
수습하고 생전 가장 아름다웠던 모습으로 되돌려 보내는 일.
숭고하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실상은 썩어가는 냄새와 싸우고
굳어버린 몸을 주무르는 고된 노동이었다. 처음에는 시체의 썩은 냄새에 구역질이 났다.
굳어버린 사지를 억지로 움직일 때마다 나오는 둔탁한 소리는
귓가에 맴돌아 잠 못 이루게 했다.
망자의 얼굴을 닦고 수의를 입히는 동안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선 기묘한 감정에 휩싸이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이 일에 익숙해져 갔다.
망자의 굳은 표정 뒤에 숨겨진 사연을 상상하고 그들의 마지막
가는 길을 조금이라도 편안하게 해주고 싶다는 마음이 싹트기 시작했다.
손끝 하나하나에 정성을 담아 염습을 하고 나니 묘한 만족감과 함께 삶의 의미를 되새기게 되었다.
어쩌면 녀석은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밑바닥까지 떨어진 나를 일으켜 세울 수 있는 일이 바로 이 일이라는 것을
친척도 아닌 고인에게 왠지 모를 연민이 느껴졌다.
코끝이 찡해지더니 걷잡을 수 없이 눈물이 흘러나왔다.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를 정도로 정신이 혼미했다.
일이 끝나고 친구가 커피를 뽑아 건네며 평소와는 다르게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너는 안 되겠다. 이 일이 적성에 안 맞는 것 같아. 다른 길을 찾아보는 게 좋겠다.”
순간, 자존심이 상했다. 억울함과 오기가 동시에 솟아올랐다.
“네가 하는데, 나는 안 된다고? 왜 그렇게 단정 짓는 건데?”
친구는 내 어깨를 툭 쳤다. 평소의 장난기 넘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낯설 만큼 진지한 표정이었다.
“고인을 다루는 상황에서 동정심은 사치다.
우리는 매일 겪는 일이지만, 상주와 가족들에겐 평생
단 한 번뿐인 순간이야. 항상 엄숙하고 경건하게 대해야 한다.”
녀석의 말은 차가웠지만, 묘하게 설득력이 있었다.
나는 오기 하나만으로 그 냉혹한 세계에 뛰어들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는 이 직업에 묘한 매력을 느낀 것도 있지만
특히 내 처지에서 노잣돈은 큰 수입이었다. 저승길에 부디 고생 말고
편히 가시라 얹어주는 노잣돈은 이승에서 고생하는 내가 받는 복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일을 시작한 지 보름쯤 되자 모든 게 무디어져 갔다.
시신을 봐도 아무 감각이 없어졌다. 이 일이 내게 적성에 맞는 것인지 아직 모르겠다.
아니 적성에 맞았다고 해야 옳다. 특수한 직업이란 걸 깊이 생각해 볼 겨를도 없이.
나는 이상하리만치 담담했다. 매일 시신 2구에서 3구를 처리하다 보니
무서움도 두려움도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고인을 바라보며
그가 살아온 내력도 읽어 낼 줄 알게 되었다.
인생 철학을 변용하는 여유도 부렸다. 상품, 즉 시신을 바라보면
볼수록 무서움은 서서히 없어졌다.
죽음의 분위기에 익숙해져 가는 나를 발견했다.
어느 날 같이 일하는 직원이 출장을 가는 바람에 나 혼자 염을 하게 되었다.
이번에 들어온 상품은 자연사였다. 자연사 중에는 호상이 많다.
편안한 주검을 보면 마음도 가볍다. 고인의 얼굴을 바라본다.
편안하고 여유로운 모습이다. 내 마음도 편안하다.
일하다 보면 형제간의 우애가 한눈에 보인다.
상주는 형편은 어려워도 마지막이라 잘하고 싶다고
최고급으로 모든 걸 선택해 달라고 지시를 내린다.
상품이 굳기 전에 전체적으로 고루 만지면서 곧게 펴는 천시(遷屍)작업을 했다.
입에 쌀을 물려주는 반함과 베옷을 입히는 소렴작업과 다시 큰 베로 감싸주는
대렴이 끝나면 입관작업에 들어간다.
죽음을 받아들이는 준비를 미리 해왔는지 아니면 호상이라 그런지
유족들의 울음소리도 크지 않고 흐느끼는 소리도 조용하다.
마음은 슬픈데 눈물이 안 나오는 유족들이다.
이번에 치룬 시신은 내 마음이 다 아플 정도로 비참한 입관식이었다.
연락이 제때 되지 않아 많이 훼손되었고 자식들은 고인을 앞에 두고
다투는 모습까지 보여주었다. 형제들과 자매들이 두 패로 나누어져 싸움이 일어났다.
딸이 나서서 서럽게 운다.
“ 엄마, 미안해요. 엄마 일어나봐, 엄마, 죽지마...”
서럽게 울며 관을 부여잡는 막내딸의 모습에서 마음이 많이 무겁다.
술에 하루를 잊고 대취해 버렸다..
서럽게 울며 관을 부여잡는 막내딸의 모습에 마음이 걷잡을 수 없이 무거워졌다.
관 속의 고인은 마치 깊은 잠에 빠진 듯 평온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 평온함이 오히려 남은 사람들의 슬픔을 더욱 깊게 만드는 듯했다.
막내딸은 연신 엄마를 외치며 흐느꼈다.
그 절절한 외침은 메아리처럼 내 마음속 깊은 곳까지 울려 퍼졌다.
수없이 많은 이별의 순간을 지켜 봤지만 매번 겪을 때마다
무뎌지기는커녕 오히려 더 큰 슬픔으로 다가왔다.
망자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는 일은 숙련된 기술과 냉철한 판단력을 요구했지만,
인간적인 고뇌와 슬픔을 완전히 떨쳐낼 수는 없었다.
결국 나는 술의 힘을 빌려 하루를 잊기로 했다.
소주를 들이켜자 알싸한 알코올이 식도를 타고 내려가며 온몸을 뜨겁게 달궜다.
취한 채 비틀거리는 발걸음을 옮기며 밤거리를 헤맸다.
가로등 불빛 아래 드리워진 그림자는 마치 무거운 짐처럼 어깨를 짓눌렀다.
문득 삶과 죽음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 죽음을 맞이하지만 그 순간까지 어떻게 살아갈지는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
내면의 균열이 왔다. 매일밤 악몽이 되풀이되었다.
무기력과 혼란이 왔고 감정의 마비가 왔다.
감정이라는 스위치가 완전히 꺼져버린 듯 무덤덤한 상태가 지속 되었다.
일도 안 나가고 매일 매일 술독에 빠져있었다.
술에 취하면 쓰러지듯 잠들고 깨어나면 어김없이 텔레비전을 켰다.
정작 보지도 않으면서 켜 놓은 건 단순히 사람 소리가 그리웠기 때문이다.
낯선 방송인의 목소리조차 빈방에 작은 위로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습관처럼 티브이를 켰는데 한 철학자가
중용의 능구(能久)와 삼개월을 설명하고 있었다.
공부(工夫)는 곧 수신(修身)이고 그것은 시중(時中)이며 다시 능구로 이어진다고 했다.
그 말이 귀를 스쳤을 때 머릿속에 번개가 내리꽂히듯 깨달음이 왔다.
아, 중요한 건 순간의 깨우침이 아니라 그것을 지속하는 힘이구나.
오래도록 견디고 이어가고 놓지 않는 것이라니.
술기운이 채 가시지 않은 몽롱한 정신이었지만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가슴 깊이 파고들었다.
마치 번개처럼 깨달음이 머릿속을 강타했다.
철학자는 능구(能久)를 3개월이라고 정의했다.
3개월만 꾸준히 지속하면 무엇이든 변화시킬 수 있다고 했다.
이제부터라도 늦지 않았다. 3개월, 능구의 시간을 통해 나를 변화시켜 보자..
나는 텔레비전을 껐다. 그리고 조용히 명상에 잠겼다.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까. 어떤 것을 지속해야 할까.
나는 다시 일어섰다. 그리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새벽하늘은 희미하게 밝아오고 있었다.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듯 새벽 공기는 상쾌하게 느껴졌다.
나는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그리고 다짐했다. 능구의 시간을 통해
반드시 변화된 나를 만나리라고.
아직도 지상에 방 한칸 마련 못했고 기술도 배우려면 처음부터 배워야 했다. 춥고 배고팠다.
내가 자신있게 할수 있는 일이 결국 염사 일 밖에 없었다.
일을 해 보니 체계적인 공부가 필요했다. 몇 년간 이 직업을 해왔으니
특별전형으로 장례지도학과 2년 과정에 들어갔다.
출장도 자주 다녀보니 타지방의 풍습이나 장례문화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도 알아야 했다.
학교에서 일반생물학, 병원 미생물학, 장사제도, 장례와 종교의례,
장례식장 운영도 공부하고 실습을 나갔다.
공부를 마치고 본격적인 장례지도사의 길을 가기 시작했다.
세월이 많이 변했다.
부정적으로 이 직업을 바라보던 시선들이 불황을 맞고 나서야
내 직업을 좋게 보게 되었다. 주변에서 월급이 많다는데
한번 해보고 싶다는 사람들이 수시로 찾아왔다.
그러나 돈만 벌고 싶다는 마음만 가지고 일하면 안 된다는 걸 명시해주었다.
절도 있고 격조 있게 최대한 예를 갖추어서 고인을 보내드리는
이 일은 타고난 사명감 없이는 절대로 할 수가 없는 일이다.
오랜 세월 이 일을 하다 보니 별별 사람들을 다 만났다.
가슴 미어지게 슬픈 사연을 가진 고인도 있었다.
어떤 이는 차마 입에 담을 수조차 없는 기막힌 인생을 살다 간 이도 있었다.
억울함과 분노와 후회와 절망등 온갖 감정이 뒤섞인 얼굴로 누워있는 망자의 모습.
그들을 볼 때면 삶이란 무엇일까 죽음이란 무엇일까 끊임없이 되뇌게 되었다.
염을 하는 동안 나는 뼈저리게 느꼈다.
결국 그 숱한 몸부림도 찬란했던 순간도 마지막 숨이 끊어지는
찰나의 모습으로 영원히 박제된다는 것을. 삶은 그토록 덧없이
단 한 번의 죽음으로 모든 것이 결정되어 버린다는 것을.
이번엔 무연고 시신이었다. 수소문 해 보면 연고자도 있었다.
그런데 유족들은 시신을 거부했다.
소시민들에겐 장례비용도 병원비용도 낼 형편도 안될 정도로
힘든 인생을 살고 계신 것이다. 평생 가난하게 삶을 살았던
사람에겐 저승 가는 길도 추웠다. 병원 옆에 성당도 있고,
교회도 있고 자그만 절도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이 성당과 교회와 절에서 번갈아 무연고 시신들을 수습해 준다.
나도 최대한 예의를 갖추어서 염을 해드렸다.
또 한 건의 시신이 병원에 도착했다. 곧이어 또 다른 시신이 도착했다.
동시에 2구의 시신이 도착한다는 건 두 사람이 연관된 사고란 걸 경험을 통해서 느낌으로 알았다.
2구다 보니 마음이 바빠졌다. 마스크와 장갑과 염에 필요한
도구들을 챙기기 시작하는데 갑자기 영안실 주위가 소란스러웠다.
여자의 유가족과 남자의 유가족들이 한꺼번에 온 것이다.
그런데 잠시 후에 심한 욕설과 함께 병원 영안실이 난장판이 되어버렸다.
전후 사정을 듣고 보니 어이없고도 기막힌 사연이었다.
남자는 혼자 사는 여자와 아파트에서 뛰어내렸다.
남자의 아내는 남편이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고 한걸음에 병원으로 달려왔다.
그런데 남자의 아내가 옆의 유족들이 말하는 걸 들은 것이다.
여자와 같이 껴안고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는 순간부터 남자의 아내는
펑펑 울던 모습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남편에 대한 온갖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
두바이에서 일한 줄 알았는데 여자 집에서 살았다고 생각하니
기가 막힐 일이었디. 염을 하는 과정에서 남자의 아내는 결국 들어오지 않았다.
이 십여 년 믿고 살았던 남편이었지만 남편의 마지막 가는 길을 외면했다.
여자의 시신을 염하는데 여자의 온몸에 칼자국이 나 있었다.
둘이 자살하기 전까지 얼마나 몸부림치며 다투었는지 몸 상태만 봐도 환히 알 수가 있다.
가을이라 마음도 싱숭생숭한데 시신이 도착됐다.
유족들의 얼굴 인상이 영 불편해 보였다.
염을 하고 다음 날 장지로 가야 하는데 이른 아침부터 소란스러웠다.
부의금 가지고 큰며느리, 작은며느리가 싸움이 난 것이다.
큰 아들은 작은 회사에 다니고 있었고 둘째 아들은 대기업에 근무한다고.
둘째 며느리는 우리가 부의금을 많이 가져가야 한다고 했다.
큰 아들 며느리는 큰아들이니까 제사도 지내야 하고 큰아들이니까
당연히 많이 가져가야 한다면서 다투고 있었다.
슬픔은 찾아볼 수 없고 오직 탐욕만이 영안실을 가득 채웠다.
나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여전히 돈 때문에 다투는구나.
재산 분배도 제대로 해 주지 못하고 갑작스럽게 떠나버린 고인의 잘못일까.
아니면 돈에 눈이 멀어버린 자식들이 잘못일까.
속이 메슥거리고 구역질이 치밀어 올랐다.
나는 황급히 몸을 돌려 화장실로 향했다.
차가운 타일 바닥에 닿는 발걸음 소리가 내 심장의 고동처럼 느껴졌다.
변기 뚜껑을 열고 고개를 숙였다. 속에서부터 뜨거운 무언가가 울컥 솟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며칠 동안 제대로 먹지 못했던 탓인지 위액만이 쏟아져 나왔다.
나는 힘없이 변기에 매달린 채 눈을 감았다. 화장실에 갔다 오니 싸움은 진정이 되는 듯 했다.
고인의 싸늘한 시신 앞에서 부의금을 움켜쥐고 싸우는 저들은
인간의 가면을 쓴 짐승만도 못한 존재들이었다.
차가운 관 속에 갇힌 망자들의 굳은 얼굴을 닦아내는 무덤덤한 하루.
삶과 죽음의 경계 그 희미한 선 위에서 나는 묵묵히 나의 일을 해나갔다.
세상은 특히 오랜 친구들은 나의 선택을 쉬이 이해하지 못했다.
주안 친구는 결벽증이 심했다.
학원에서 아이들에게 수학을 가르치는 녀석은 깔끔한 수트 차림으로 강의실을 누볐다.
“그거 병도 옮기는 거 아냐? 하고 많은 직업 중에 무슨 염장이 직업을 갖냐?
말이 좋아 장례지도사지. 병든 시체 모든 것을 다 닦아줘야 하는 거 아니냐고!”
주안의 말이 귓가를 맴돌았다.
녀석의 눈빛은 경멸로 가득 차 있었다.
마치 나를 혐오스러운 벌레를 보는 듯한 눈빛이었다.
주먹이 불끈 쥐어졌다.
주안의 멱살을 잡아 녀석의 얼굴을 진흙탕에 처박아 버리고 싶은 충동이 솟구쳤다.
하지만 녀석은 아이들 앞에서 수학 문제를 풀어주는 잘 나가는 학원 선생이었다.
아무리 끓어오르는 분노를 억누를 수 없어도 녀석의 얼굴에 함부로
상처를 낼 수는 없었다. 모든 것이 녀석의 '상품'이었고
나는 그 '상품'에 흠집을 낼 자격이 없었다.
명색이 학생들 앞에서 매일 공부를 가르치는 얼굴인데
내 감정 하나 때문에 녀석의 밥줄을 끊을 수는 없었다.
억지로 분노를 삭이며, 나는 녀석을 곱게 보내주었다.
하지만 뒷맛은 씁쓸하기 그지없었다.
운명은 때때로 잔혹한 장난을 친다.
내가 염을 하게 된 망자는 다름 아닌 주안의 아버지였다.
나의 선택을 경멸했던 친구였다. 주안의 큰형이 장례 절차를 꼼꼼하게 물어왔다.
그는 침착하고 예의 바른 사람이었다.
다른 유족들도 마찬가지였다. 슬픔 속에서도 그들은 한결같이 정중했고
오히려 나를 더 배려하는 모습이었다.
아버님을 잘 부탁드린다는 말과 함께 다른 유족들보다
훨씬 많은 팁까지 얹어주었다. 마지막으로 망자에게 노잣돈을
얹어주는 순간 나는 문득 시선이 느껴졌다. 유족들 사이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주안이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고개를 끄덕여 답례했을 뿐. 과거의 앙금은 잠시 잊었다.
지금은 슬픔에 잠긴 한 가족의 일원으로서 아버지를 잃은
아들의 슬픔만이 느껴졌다. 아이러니였다. 그렇게나 혐오했던
나의 직업을 통해 우리는 다시 만났다. 장례가 끝나고,
주안은 내게 다가오지 않았다. 녀석은 다시 유족들 틈으로 사라졌고
나는 묵묵히 뒷정리를 했다. 하지만 녀석의 눈빛은 오랫동안
내 마음속에 남아 있었다. 아버지의 영면을 빌며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화해를 시도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며칠 후 주안이 선물을 들고 찾아왔다.
녀석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저녁 식사를 제안했다.
우리는 침묵 속에 술잔을 기울였다.
빈속에 몇 잔이 들어가자 알싸한 술기운이 온몸에 퍼져나갔다.
주안의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넌 우애수(友愛數) 같은 놈이야.”
뜬금없는 말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우애수가 뭔데?”
주안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특유의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수학에 나오는 개념인데, 친화수라고도 하지. 신비스러운 숫자야.”
수학과는 담을 쌓고 지낸 터라 나는 잘 모른다고 얼버무렸다.
그러자 주안은 흥미로운 설명을 이어갔다.
“두 수의 쌍이 있어. 어느 한 수의 진약수를 모두 더하면 다른 수가 되는 거야.
예를 들어 220의 진약수는 1, 2, 4, 5, 10, 11, 20, 22, 44, 55, 110인데,
이걸 다 더하면 284가 돼. 반대로 284의 진약수를 모두 더하면 220이 되지.
서로 연관이 없을 것 같은 두 수가 서로의 약수를 더하면 상대방의 수가 되는 거야.”
주안은 잠시 숨을 고르더니 술잔을 기울이며 말을 이었다.
“너와 내가 그렇다는 건 아니야. 그냥... 서로 연관이 없을 것 같은
시신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네 모습이 마치 우애수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녀석의 말은 잔잔한 호수에 던진 돌멩이처럼 내 마음속 깊은 곳에 파문을 일으켰다.
우리는 서로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듯했다.
녀석은 화려한 조명 아래에서 나는 어둠 속에서.
하지만 어쩌면 보이지 않는 끈으로 질기게 연결 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운명이라는 이름의 끈으로.
복잡한 생각에 잠긴 우리는 다시 침묵 속으로 잠수하듯 술잔을 비워냈다.
신의 인연이라….나는 주안의 말을 곱씹으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그렇게 귀한 인연이라니, 왠지 낯간지럽네.”
주안은 빙긋 웃으며 술잔을 기울였다.
시신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맺는 인연도 마찬가지겠지.
평생 한 번도 못 본 고인의 시신을 만지는 것도 우애수의 인연일까?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지. 우리는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서로에게 다가서는 걸 테니까.
참, 세상은 뭐가 뭔지 모르겠다. 의절하듯이 우정을 잘라냈던
녀석이 이제서야 친구수니 우애수니 난해한 수학 공식을 들먹이다니.
나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주안은 잠시 침묵하더니 진지한 표정으로 답했다.
“그렇고 그런 것 같으면서도 그렇지 않아. 우리는 매 순간 선택을 하고
그 선택에 따라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게 되잖아.
어쩌면 신은 우리에게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스스로 운명을 만들어가도록 하는 건지도 몰라.”
우리는 다시 술잔을 부딪쳤다.
어쩌면 주안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신의 인연으로 맺어진 귀한 존재들이다.
비록 한때는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등을 돌렸지만 결국 다시 만나
서로의 빈자리를 채워주는 존재들이다.
나는 주안을 바라보며 환하게 웃었다.
“그래, 우리도 우애수처럼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면서 살아가자.
신의 붓이 우리를 어떻게 그려나갈지는 모르겠지만 후회 없이 최선을 다해서 살아보자고.”
주안 역시 밝은 미소로 화답했다. 우리는 그렇게 혼란스러운
세상 속에서 서로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기로 약속했다
오늘따라 유난히 술이 당겼다. 주안에게 행복한 나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숭고한 마지막을 장식하는
나의 모습을. 하지만 현실의 괴리감은 생각보다 컸다.
차가운 시신 앞에서 느끼는 고독과 책임감.
그 모든 것을 감추고 나는 애써 미소를 지었다.
차가운 염(殮)을 마치고 나니 햇살 한 줄기가 더욱 소중하게 느껴졌다.
삶의 마지막을 배웅하는 일은 숙연하지만 동시에 삶의 아름다움을 깨닫게 해준다.
음울한 장례식장의 퀴퀴한 공기를 밀어내고 무거운 발걸음을 떼어 본가로 향한다.
집에 도착하니 싱그러운 꽃들이 활짝 피어 있었다.
마치 나를 환영하는 듯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듯 희망찬 기운이 온몸을 감쌌다.
( 원고지 85매. A4 10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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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은 일반 동호회 다른곳에서 '아름문학상' 이라고 글응모작품을 한달동안 응모하여 총 341편의 응모작중에서 8명이 상을 받았습니다.
1등은 대상 상금50만원은 장편소설을 쓰신분이고 2등 우수상 상금 30만원 과 3등 장려상 상금20만원 도 소설부문입니다.
현재 "염사 (殮師 )" 소설은 현정님이라는 회원님께서 쓰신 소설인데 2등 우수상을 하셨습니다.
우리의 생과 사를 다루는 특별한 주제의 이야기입니다. 읽고 나면 깊은 울림이 가슴에 남아, 삶을 더욱 진지하게 대하게 됩니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분들이 있을듯 하여 읽어보시길 권하고 싶어 작가에게 허락받고 가져왔습니다.
나머지 격려상이 5명인데 나는 정말로 "감사이벤트 100개" 쓰는 행사에 신경써서 아름문학상은 진짜로 기대 안했는데 격려상 5명(10만원씩)중 이젤님과 내가(로사) 포함되었네요 ㅎㅎ
돈이 문제가 아니라 기분이 좋습니다
상은 10월1일 행사날 받는다고 합니다. 이번 감사이벤트 100은 1등으로 마쳤는데 그것도 10월1일 되서 발표를 봐야 할것 같습니다. ㅎㅎ
이번 이벤트 행사를 통하여 참으로 글잘쓰시는 분들이 많음을 느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