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7장 : 優遊不振(우유부진)

2025. 7. 10. 06:50좋은글

菜根譚
제 77장 : 優遊不振(우유부진) : 놀기만 하고 분발하지 않으면 진보가 없다.


泛駕之馬  可就驅馳  躍冶之金  終歸型範  只一優遊不振  便終身無個進步
범가지마  가취구치  약야지금  종귀형범  지일우유부진  변종신무개진보


白沙云  爲人多病未足羞  一生無病是吾優  眞確論也
백사운  위인다병미족수  일생무병시오우  진확론야


수레를 뒤엎는 사나운 말도 길들이면 부릴 수 있고, 다루기 힘든 쇠도 잘 다루면 좋은 기물이 된다.
단지 하는 일 없이 놀기만 하고 분발하지 않으면 평생토록 아무런 발전이 없다.
백사(白沙 )가 이르기를 ‘사람에게 병이 많은 것은 결코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
평생을 살면서 마음의 병이 없을까 하는 게 나의 근심이다.’라고 했다. 실로 지당한 얘기다.


범가지마(泛駕之馬)는 원래 수레를 뒤엎는 말을 뜻하나
여기서는 재주가 뛰어나면서 규율에 얽매이지 않는 삶을 지칭한다.
범(泛)은 복(覆)과 통한다. 이 말의 출전은 ‘한서’ 『무제기』이다.
“무릇 ‘범가지마’와 규율에 얽매이지 않는 선비인 탁치지사(跅馳之士)는 모두 다스리기 나름이다.”
약이지금(躍冶之金)은 도가니에 녹여 주형에 넣기 힘든 쇠를 지칭하는 말로 ‘범가지마’ 나
‘탁치지사’와 같은 취지이다. 『장자』 「대종사」가 출전이다.
이에 따르면 자사(子祀), 자여(子輿), 자리(子犁), 자래(自來) 등 네 사람이 함께 이야기를 나누다
서로 이렇게 말했다.
“누가 무위를 머리로 삼고, 삶을 등뼈로 삼고, 죽음을 꽁무니로 삼을 수 있을까?
누가 생사존망(生死存亡)이 한 몸인 것을 알 수 있을까?
그런 자가 있다면 우리는 그와 사귀고 싶다.”
그러고는 서로 쳐다보며 빙그레 웃었다. 마음에 거슬리는 것이 없자 서로 벗이 되었다.
얼마 후 자여가 병에 걸리자 자사가 문병을 가 이같이 말했다.
“기이하구나, 조물자가 그대를 이처럼 구부러지게 만들었으니!”
구부러진 곱사등이 등에 생겨 오장이 위에 붙고, 턱은 배꼽 아래 숨고, 어깨는 이마보다 높고, 
상투는 하늘을 가리켰다.
음양의 기가 조화를 잃어 어지러웠지만 마음은 한가로워 아무렇지도 않은 듯했다.
자여가 비틀비틀 걸어가 우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는 이같이 말했다.
“아! 조물자여, 거듭 나를 이처럼 구부러지게 하는구나!”
또 얼마후 자래가 병에 설려 헐떡거리며 이내 죽게 되자 아내와 자식들이 그를 빙 둘러싸고 울었다.
자리가 문병을 와 말했다.“쉿 저리 비켜라. 이 엄숙한 변화를 방해하지 말라!”
그러고는 문에 기대어 자래에게 말했다.
“기이하구나, 조화여! 또 그대를 무엇으로 만들고, 어디로 데려가려 하는 것인가?
그대를 쥐의 간으로 만들까, 아니면 벌레의 다리로 만들까?”
자래가 말했다.
“자식의 입장에서 볼 때 부모는 동서남북 어디로 가도록 명할지라도 그 명을 쫓아야 하는 존재이다.
사람에게 음양은 부모에 비할 바가 아니다.
음양이 나를 죽음에 가까이하게 했는데 내가 듣지 않는다면 나만 불손한 자가 될 뿐
저 음양에 무슨 죄가 있겠는가?
대자연은 나에게 육신을 주어 세상에 살게 하고, 삶을 주어 수고롭게 하고, 노쇠케 만들어 편안하게 하고,
죽음을 내려 쉬도록 만든다.
나의 삶을 좋은 것으로 여기는 것은 바로 나의 죽음을 좋은 것으로 여기는 배경이 된다.


지금 대장장이가 쇠붙이를 녹여 주물을 만드는데 쇠붙이가 뛰어올라 와 말하기를,
나는 반드시 막야(鏌釾)와 같은 명검이 되겠다.‘고 하면 대장장이는 반드시 상서롭지 못한 쇠붙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이제 한 번 육신을 받고 세상에 태어나 ’나는 언제까지 오직 사람으로만 살겠다.‘고 하면
조물자는 반드시 상서롭지 못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지금 한 번 천지를 커다란 용광로로 삼고, 조화를 대장장이로 삼았으니 어디로 가 무엇이 된들 좋지 않겠는가?
편히 잠들었다가 문득 다른 모습으로 깨어날 때를 기다릴 뿐이다.”
여기서 약야(躍冶)는 스스로 능력이 뛰어나다고 생각해 급히 발탁되고자 하는 부류를 상징 하는 말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좋은 의미가 아니다.
북송(北宋)의 범중엄이 ’금재용부(金在熔賦)에서‘ ’약야‘의 무리를 꼬집은 게 그 증거다.


昔麗水而隱晦(석여수이은회) 옛날 여수의 금은 몸을 숨기고자 했는데
今躍冶而光亨(금약야이광형) 지금 약야는 몸을 드러내 훤히 비추려 하네


여수(麗水)는 지금의 운남성 금사강(金沙江)을 말한다. 예로부터 사금이 많이 산출되는 곳이다.
금생여수(金生麗水) 성어가 나온 이유다.
범중엄은 여수의 금과 약야를 대비시켜 깊이 연마하지도 않은 채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고자 하는
경박한 무리를 꼬집은 것이다.
백사(白沙)는 명나라 때 학자 진헌장(陳獻章)을 말한다. 호는 석재(石齋)이고, 자는 공보(公輔)이다.
은거한 채 학문을 깊이 연구하며 제자들을 육성한 까닭에 사람들이 그를 ’백사선생‘으로 불렀다.
’그가 평생을 살면서 마음의 병이 없을까 하는 게 나의 근심이다.‘라고 한 것은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없으면 잔병치례가 많은 약골보다 더 한심한 경우에 속한다고 지적한 것이다.
사나운 말도 잘 길들이면 얼마든지 부릴 수 있고, 끓어 넘치는 쇳물도 잘 다루면 틀에 넣어 좋은 주물을
만들 수 있다.
아무리 못 된 자도 분발해 단련만 하면 능히 쓸모 있는 인간으로 변신할 수 있다.
하나만 보고 너무 지례 짐작해 단념하지 말라고 충고한 것이다.


흔히 세상살이를 세파(世波)에 비유한다.
삶을 높은 풍랑이 이는 바다를 항해하는 것에 비유한 결과다.
통상 태풍이 불 때는 배를 띄우지 않는다.
태풍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게 오히려 거친 바다를 길들이는 정공법이다.
수레를 뒤엎는 사나운 말도 차분해질 때를 틈타 조련하는 게 옳다.
어떻게 다루는가 하는 게 요체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하는 일도 없이 놀기만 하고 분발하지 않는 경우다.
이런 사람을 조련하는 게 더 어렵다.
세상을 너무 편히 살게 되면 그게 오히려 자신의 발목을 잡는 족쇄로 작용한다.
삶 자체가 험한 풍랑의 ’세파‘를 헤쳐 나가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요컨대 바람직한 삶을 영위하고자 할 경우 자신을 조련하든 아니면 자식과 부하 등의 타인을 조련하든
결국 방법과 공력(功力) 등이 성패의 관건이라는 얘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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