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방 야화 ( 합 환 ) ~!

2025. 6. 8. 07:13웃으면 복이 와요

합환(合歡)  

​김 대감의 아들 김 초시와 유 승지의 딸 초리의 혼례식은 3일 동안 질펀하게 이어졌다.
부모들의 위세도 대단했지만 신랑신부도 출중했다.
김 대감 아들은 훤칠한 키에 이미 초시에 합격한 일등 신 랑감,
유 승지의 딸 초리도 빼어난 미모에 사서삼경을 떼 남자였다면 장원급제 감이었다.  

열일곱, 건장한 체격의 새신랑은 선녀 같은 새신부를 하룻밤도 곱게 재우지 않았다.
두살 연상의 새신부도 음 양의 조화에 적응, 곧 합환(合歡)에 전율하며 흐느끼기 시작했다.
호사다마라던가.
입동이 지난 어느 날 밤. 만취한 김초시가 밤늦게 집에 와서 방문을 열자마자
의관을 후다닥 벗어던지고 새색시의 치마 밑으로 기어들어갔다.

그녀는 자지러졌다.
발가벗은 새색시가 가쁜 숨을 몰아쉬다가 정신 을 차려보니, 새신랑이 배 위에서 잠이 들었다.
깨어나지 않는 영원한 잠! 복상사(腹上死)한 것이다.
의원을 불러와 침을 놓아도 김초시는 깨어나지 않았다.
새색시는 자괴감에 목을 매려다가 하녀에게 발각되어 미수에 그쳤다.  

시아버지 김 대감이 며느리의 등을 두드리며
“나도 피를 토하며 죽고 싶다마는 내 아들이 그걸 바라겠느냐. 너도 나도 굳건히 살아야 한다.”
명운사에서 사십구재를 지내며 주지스님의 설법에 마음을 가다듬었다.  

어느덧 삼년,
그동안 입었던 상복을 명운사에서 태워 연기를 하늘로 보냈다.
유초리는 신방을 차렸던 별당에 혼자 기거하며 아침이면 안채로 가서 시아버지께 문안 인사를 드리고
부엌에 가서 찬모를 돕다가 다시 별당으로 돌아가는 게 일과가 되었다.
보름, 초하루, 한달에 두번씩 하녀를 데리고 남편의 위패를 모셔둔 명운사에 가는 것이 유일한 외출이다.  

김 대감은 아침에 문안 인사를 오는 며느리의 눈을 살폈 다.
밤새 울어 퉁퉁 부은 초리의 눈두덩을 보는 김 대감은 가슴이 찢어졌다.
어느 겨울날, 김 대감은 친구이자 사돈인 유 승지를 찾 아갔다.
사랑방에서 술잔을 주고받다 김 대감이 조심스럽 게 며느리 얘기를 꺼냈다.

“며느리 보는 내가 애간장이 타서 죽을 지경이네. 탈상도 했으니….”
말이 끝나기도 전에 유 승지가 화를 벌컥 냈다.
“김 대감 무슨 소리를 하는 게요! 그것은 당신 집안의 수 치요. 우리 집안에도 먹칠을 하는 거요!”
김 대감은 집에 돌아오는 길에 주막에서 하염없이 술을 마시다 벽에 기대어 잠이 들었다.
주모가, “나으리 이제 그만 드시지요. 밤이 깊어 주막도 문닫을 시간이구먼요.”  

비틀비틀 외나무다리를 건너다 기우뚱한 것까지는 어렴 풋한데 그 이후는 기억이 없었다.
정신을 차렸을 땐 이튿날 대낮, 안방에 누워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얼굴은 멍투성이에 사지는 쑤셨다.
“아버님 깨셨군요.” 초리가 머리맡에 앉아 물수건으로 얼 굴을 닦고 있었다.  

“내가 어떻게 집에 왔지?”
“명운사의 법운스님이 아버님을 업고 왔습니다.”  
다음날, 김 대감은 명운사로 올라가 주지스님 방에서 차 를 마시며 법운스님을 맞아 인사를 했다.
“내 생명의 은인일세.” 법운스님은 웃으며 합장을 했다.
논 다섯마지기 땅문서를 주지스님에게 내밀며,
“내년 봄에 개수할 때 보태 쓰십시오.”
이십년 전 명운사 일주문 앞 포대기에 쌓인 핏덩이를 주지스님이 안고 와서 키운 게 바로 법운스님이다.  

그해 겨울,
아침 인사를 오는 며느리 눈이 붓지 않았고 얼굴의 수심도 사라졌지만
며느리 얼굴에 화색이 도는 이 유를 알고 김 대감은 낙담했다.
밤이 깊어지면 간부(姦夫) 가 담을 넘어와 며느리 방으로 잠입하는 것이다.
시퍼렇게 간 낫을 들고 담 밑에 숨었다가 간부를 잡은 김 대감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꽃 피는 봄이 왔다.
까치고개 아래 골짜기 널찍한 바위 에서 혼례식이 열렸다.
신부 유초리, 신랑 법운, 주례는 명 운사 주지. 하객은 김 대감과 유 승지 딱 두사람.
냉수 한 그릇 떠놓고 혼례를 치렀다.
신랑신부는 주례와 하객 두 사람에게 큰절을 올리고 까치고개를 너머 멀리 사라졌다.  

신랑신부 단봇짐 속엔 조선 팔도강산 어디든지 정착하여 논밭 오십여마지기를 살 수 있는 돈이 들어 있었다.
김 대감이 마련해준 것이다.
남은 세사람은 주막으로 갔다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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