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문관 장일병

2020. 5. 30. 14:55자유게시방

고문관 장일 병/김문억김문억

 

장 일병은 우리 중대에 있던 신참 병사로 그의 별명은 고문관顧問官이다顧問官이다

고문관은 본디 군대에서 나온 말로 조금은 어수룩하고 사리 판단이 떨어지는 사람을 비하시킨 말이다.

미군정 시절에 우리 군대에 파견된 미 고문관이 우리말이 서툴다 보니 말이 빨리 통하지 않는 바람에 어리바리할 수밖에 없었다. 거기서 유래된 말이다

. 우리 중대 장 일병을 두고 누구나 고문관이라고 부르지만 그는 크게 화를 내는 법 없이 그냥 그렇게 대충 통한다.

상관이나 교관들도 그가 고문관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군대란 것이 집단으로 이루어지는 무리다 보니 그로 인해서 여러 사람이 피해를 당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아무튼 그는 군인이라는 신분으로는 조금 부적격자 같았는데 어떻게 해서 입대가 가능했는지 모르겠다

우선 장 일병은 복장부터 너무 군인답지 않게 헐렁하다.

몸집이 말라깽이라서 맞는 군복이 없었던지 항상 헐렁한 복장이었고 발에 맞지 않는 커다란 통일화를 질질 끌고 다녔다. 게다가 매우 도수 높은 검은 테 안경이 코끝에 와서 걸쳐있었고 모자를 푹 눌러쓰고 다녔기 때문에 야무진 곳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헐렁한 허수아비가 걸어 다니고 있었다.

무더운 여름날 사령부에서 내무반까지 오르내리는 아스팔트 길을 터덜터덜 한량없이 걸어가는 모습을 보면 군인이라기보다는 우리 동네 만 십이랑 흡사했다.

들리는 말로는 사회에 있을 때에 무슨 생물을 연구했다는 소문도 있고 장가도 가서 마누라도 있다고 했다. 그뿐만 아니라 입대 연령을 훨씬 초과하여 동료들보다 한참 위였다. 사회로 치면 형님 벌이었다. 그렇다 보니 병사들 중에 누구랑 딱히 친하게 지내는 사람도 없어서 그에 대한 신상명세는 늘 소문으로 들려오고 있었다

그는 정훈부에 있었는데 아침에 신문을 돌리고 와서 식사를 하다가 보면 맨날 꼴찌로 앉아서 밥을 먹거나 어느 때는 굶는 경우도 있었다. 밤에 병 참부로 빵을 타러 가는 날은 밤늦도록 돌아오지 않아 입이 근질근질한 선임 들로부터 말할 수 없는 욕을 먹기도 했다

" 이 새끼 오다가 혼자 다 먹었나 보다"

" 넘어져서 다 쏟아 뿌렸나 보다"

"빵 갖고 집으로 톡 튀었나 보다"

그가 젤 곤혹스러운 때는 어쩌다가 연병장에서 재식 훈련을 하는 경우다

우리는 사단 본부중대 소속 행정병이었지만 시절이 김신조가 넘어온 때라서 전투 훈련이 심심치 않게 있었다.

보통, 발을 맞추면서 걸어가는 경우는 덜하지만 인솔자가 ‘뛰어가’ 하고 구령이 떨어지면 다른 병사들의 머리가 위로 올라갈 때에 장일 병의 머리는 아래로 떨어지고 다른 병사들의 머리가 아래로 내려갈 때는 장 일병의 머리통만 혼자서 방아 찧는 방아 개비처럼 위로 솟구쳤다. 오직 그의 머리통만 위로 불쑥불쑥 솟구쳐 올라오기 때문에 교관 눈에 얼른얼른 들어오게 되었고 불려 나와서 또 엎드려뻗쳐!!

장일 병의 단체 행동은 언제나 반 박자 내지는 한 박자 늦게 따라다녔다.. 인솔자가 ' 하나 둘하나 둘' 하고 구령을 자꾸 반복해서 붙이는 이유도 장일 병의 머리통을 한 번 제대로 맞춰 보기 위해서였지만 소용이 없었다. 지청구가 들어갈수록 그는 더욱 긴장하는 것 같다.

애국가 제창 때도 그렇다. 마지막 소절에서 길이 보전 하세하고 노래가 다 끝났는데도 장 일병 혼자 뒤 따라와서 ~하고 추임새를 넣는 꼴이 되었다 엄숙해야 할 식장이 웃음바다가 되었다

그가 처음 와서 점호를 받는 때였다

내무반 침상 끝에 일렬로 서서 점호를 받는데 점호 시작하면 처음부터 하나둘셋넷다섯……열…… 하나 열둘…..… 서른하나서른둘 ……. 일련번호가 재빠르게 진행된다.

서른일곱서른여덟서른아홉

장 일병이 마흔 번째 앉아 있었던 것이다. 당연히 ‘마흔’ ‘마흔’이라고 번호를 대야 할 그가 경상도 발음대로 그냥 편하게 사십하고 나면 그다음 사람도 엉겁결에 계속해서 사십 하나 사십 둘 사십 셋 하고 나가는데 정말 가관이다 이거는. 우리 부대는 대구에 있었고 대부분의 병사들은 대구사람이 많았다. 된 발음이 잘 안 되는 경상도 발음으로 국수를 국시라고 하는 식이었다.

‘’ 번호하고 점호를 다시 받다 보면 역시 그 자리에 가서 또 사십 하는데 나중에는 점호 장교도 웃고 만다

처음에는 왜 번호 다시를 하는지 조차 그는 간파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가 유격 장에 가서 그 호랑이 같이 무서운 조교들을 웃겼다는 것이다. 유격장 조교를 웃겼으면 염라대왕도 웃길 놈이다

유격장에서는 빨간 모자 조교가 하늘같이 무서운 존재였고 그의 말이라면 염라대왕 명령같이 무조건 따라야 한다. 장일 병이 조교 앞에서 복창 훈련을 계속하다가 보니 너무 긴장한 나머지 복창이 아닌 대답을 힘껏 해야 할 곳에서도 복창을 했다는 것이다

“ 준비됐습니까”

“ 준비됐습니까”

장난하나?”

장난......?”

결국에는 또 엄청난 기합을 받고 도강 훈련을 다시 하는데

죽어도 좋습니까

하고 물으면

네 죽어도 좋습니다

용감하게 대답을 하고 도강을 실시해야 한다. 그런데

죽어도 좋습니까?”

하고 교관이 묻는데

~~면 안 됩니다~

하고 벌벌 떨었다는 것이고 결국 호랑이 교관이 웃고 말았다는 일화가 있다. 들은 얘기다

장일 병은 표정관리가 없다. 우선 말 수가 적고 잘 웃는 일도 없거니와 그렇다고 해서 인상을 찌푸리는 경우도 없다. 그냥. 무표정한 것 같기도 하고 어찌 보면 늘 무슨 생각에 젖어 있는 듯도 했다. 그는 늘 먼 곳을 보면서 걸었고 혼자서 외로웠다 그의 곁에는 늘 사람이 없고 오직 명령만 있었다. 지금 보다는 비민주적이었던 군대라는 집단생활에서 누구랑 마음 터놓고 상담을 할 수 있는 시대도 못 되어서 그는 늘 외롭게 군 생활을 해야 했다.

어느 날 그가 특별외박을 받고 나간 일이 있는데 간호사로 일하던 마누라가 독일로 취업을 해서 나간다는 것이다

위로를 하자는 것인지 아니면 가르침을 주자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며칠 동안 병사들이 한마디 씩 거들었다

' 독일 가면 그만이다.'

' 가기 전에 붙잡아라'

등등 말도 많았지만 결국 장일 병의 마누라는 독일로 가고 김포공항에서 마누라를 배웅하고 돌아온 장일 병은 얼마 동안 시무룩했다.

고문관은 행동이 좀 뒤지고 분위기 감지가 늦된다 하여 놀림으로 붙인 말이지만 그 사람의 삶 자체가 불행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어찌 보면 무엇인가 한 곳에 몰두하거나 생각이 많은 사람일수록 그런 성향이 있고 타고난 느긋함으로 세상일에 큰 관심 없는 사람도 그럴 수 있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장 일병과 흡사한 고문관은 얼마든지 있다. 내가 직장에 근무하던 때 사람들이 나에게 인사를 해도 잘 받지 않아서 매우 거만한 사람이란 평을 받아왔다. 실은 그것이 아니고 늘 무슨 생각에 젖어서 걸어 다니다 보니 인사하는 것을 모르고 지나쳤을 뿐이다. 그때도 많은 직원들은 어쩌면 속으로 '저 쪼다 고분관' 하고 경멸했을 것이다

장 일병도 평소에는 정도가 심하지는 않지만 일단 집단행동으로 들어가면 긴장이 되는가 보다. 긴장을 하다가 보면 평균치 행동마저 안 나오게 되는가 보다

세상 돌아가는 일이 너무 강박해지면서 착한 사람은 뒤로 밀리는 시대가 되었다

조용하던 동네가 갑자기 시끄럽기도 한다. 거짓과 사기와 힘센 사람이 판을 치는 이때에 장 일병이 문득문득 생각난다

비록 똑똑하다 소리는 듣지 못하지만 한 발짝 뒤로 물러나 있는 사람, 물같이 부드러운 사람, 바람같이 없으면서도 있는 사람, 그런 바보가 기다려진다

세상이 좀 이상하게 변질되는 것 같다. 무슨 일이 생기면 오직 단호하게 벌을 내려야 한다는 것이 세상 여론이다.. 옛날처럼 관용과 용서라는 말은 사라지고 없다. 오히려 그런 말을 했다가는 같이 지탄을 받을 것 같다. 심지어 미성년자나 조현 병자까지도 한 번 잘못을 저지르면 평생을 망치고 마는 엄벌을 받을 뿐이다.

오른쪽 뺨을 맞고 왼쪽 뺨마저 때려 달라는 등신 예수

금 빛 찬란한 왕의 자리를 마다하고 땡볕에서 깨달음을 찾아 고행을 했던 석가모니 고문관이 그립다.

장 일병도 세월이 많이 가서 지금 쯤 나이 지긋한 애 늙은이가 되었겠다.

세상만사 저만큼 밀쳐놓고 지금도 많은 생각에 잠겨 터 절터덜 땡볕을 걸어가고 있을지 몰라

어느 높은 나무 그늘 아래에 앉아 칸트의 철학서적을 읽을지 몰라 아니면 고요한 연구실에서 도수 높은 안경을 끼고 생물 서적을 탐독하고 있을지도 몰라

마누라는 돌아왔는지 아니면 독일로 건너가서 같이 살고 있는지

우리 중대 고문관, 장 일병!

아픈 곳 없이 잘 있는지!

같이 있을 때 자주 곁에 가 주지 못한 것이 미안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