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30년대 조선의재즈 열풍

2020. 5. 27. 15:20자유게시방

【1920~30년대 조선의 재즈 열풍-1】

"자도 재즈, 깨도 재즈-재즈, 기분의 도취는 날로 깊어간다.
그러나 가엾다
아직 문화의 앞길이 열리지 못한 경성의 모던 보이, 모던 걸들은 다만

'레코드와 활동 사진'에서 보고 들은

재즈의 맛을 옮겨가지고 본바닥 놀이는 꿈도 못 꾸고 수박 거죽 핥듯이 겉멋에 떠서

엉덩이 춤이나 추고 있는 것이다.
(중략)
재즈 기분은 홍등 녹주의 향기 높은 화류계에까지 흘러들어 요릿집에서 손님이

주문하는 노래의 3분의 2는 재즈

기분을 고취하는 유행 창가이다.
만일 옆방에서 '화편'이나 '황계사'같은 옛 노래를 읊으면 미친 듯이 기생을 끼고

뛰놀던 젊은이들의 입에서는

서슴지 않고 욕이 나올 것이다."

윗글에 나오는 단어 몇 개를 보고 어느 시대인지 대충 짐작은 할 수 있겠지만

1929년의 미국 대공황 직전의

조선 유흥가 분위기를 질타하는 글입니다.
이 글은 1929년 9월 조선에서 발간된 잡지의 내용 중 한 부분인데,
당시 조선의 재즈 열풍을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1920년대 미국의 '재즈시대'가 어설프게 조선에서도 어느 정도 재현되고 있었던 것이죠.
당시 '재즈송'이란 것은 엄밀하게 말하면 본격적인 의미의 재즈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팝송이나

샹송, 그리고 라틴음악까지도 그 범위에 포함된
즉 ,서양풍의 대중음악 전체를 가리키는 단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재즈 송은 1920년대 말부터 서울을 중심으로 만연했던 재즈 열풍에 의해 조응하면서 출현한

것인데, 노래 제목이나 가사에 영어식 표기가 많다는 게 그 특징 중 하나입니다.
이 재즈송의 인기는 1930년대 말까지도 이어져서 'Dinah'란 팝송은 국내 가수에 의해 4차례나

음반 취입이 있었다고 하니 얼마나 인기가 있던 노래인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당시 최고의 무용수였던 최승희도 '이태리의 정원'이라는 재즈송을 부르기도 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처음 재즈 밴드의 공식적인 공연은 1926년으로,
1925년 상하이로 원정을 갔던 조선 축구단 단장인 백명곤이 귀국하면서 재즈 악보와 악기를 사

가지고 돌아와서 그를 중심으로 홍난파, 박건원 등이 모여서 작은 밴드를 만들었고 얼마 후에 각

악기별로 멤버가 더 충원되어
매주 백명곤의 집에서 연주를 하더니 1926년 멤버 모두 턱시도를 입고 YMCA에서 재즈

공연을 한 것입니다.
이 밴드가 Korean jazz band이고 멤버들이 조금씩 바뀌거나 늘기는 했어도 이들은 꾸준히

1928년까지 서울 여러 곳과 광주 등지에서 공연을 하여 대중의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국내에 재즈 음반이 들어온 것은 1928년 9월 4일의 동아일보에 재즈 음반 광고가 실려 있는

것으로 봐서 이때가 최초인 것 같습니다.
1920년대에 유성기를 갖고 있었을 사람이 많지는 않았겠지만
당시 대중음악 음반 판매량이 상상 외로 꽤 많습니다.
20세기 초반 조선에는 여러 장르의 대중음악들이 있었지만
이른바 대중가요라는 장르가 출현하는 계기가 된 게 1932년의 '황성의 적'(황성 옛터라는

제목으로 더 알려졌습니다)이라는 노래라고 하는데, 재즈 송이 우리나라에서 처음 음반으로

나온 것은 1930년 2월에 발매된 "종로 행진곡"이란 곡이었습니다.
본격적인 대중가요보다 서양풍의 노래가 대중가요보다 더 먼저 자리를 잡고 있었던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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