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스름이 내리자 객줏집 처마 끝에 초롱불이 켜지고 부엌에서는 주모가 저녁상을 차려 이 방 저 방으로 들어가는데, 소금장수 부자는 마당 평상에서 상을 받았다. 매화가 꽃망울을 터뜨리는 봄이 왔건만 저녁 날씨는 쌀쌀해 방마다 군불을 지피는데, 옹고집 소금장수는 객줏집 하룻밤 방값 5전이 비싸다고 주모와 말다툼을 하고 평상에서 자겠다고 객기를 부리는 것이다.
“이런 국밥을 1전이나 받으니 날강도야 날강도.” 주모는 그 소리를 들었지만 한 귀로 흘려 버렸다. 소금장수 열여섯살 아들이 오싹한 밤공기에 옷깃을 여미며 말했다. “아부지, 우리도 소금장수하며 이문을 남기잖아요. 이 객줏집도 장사인데….”
아버지는 아들의 말을 가로챘다. “인마, 우리는 무거운 소금가마를 지고 정강이가 으스러져라 산 넘고 물 건너 다니지만 저 주모년은 가만히 앉아서 남의 주머니를 날로 털어먹는단 말야!” 들으라는 듯이 목청을 돋우었지만 주모는 못 들은 척 제 할 일만 하고 있다. 저녁을 먹고 나자 아들이 빈 소반을 들고 부엌으로 갔다. “주모, 제 생각엔 방값 5전이 비싼 게 아닌데 아부지가 저러니 체면을 봐서 1전만 깎아 주시오. 내일 아침에 제가 마당을 쓸어 드리리다.” 살짝이 귓속말을 했지만 주모는 소금장수 아버지 들으라는 듯 큰소리로 말했다. “자네는 공짜로라도 재워 주겠지만 억만금을 줘도 저 노랑이에게 방을 줄 수는 없네.”
봄이 가고 여름이 왔다. 장마가 시작됐는지 밤새 장대비가 내려 용미천 싯누런 개울물이 으르렁대며 흘러내린다. 냇가에 다다른 소금장수 부자가 소금지게를 내려놓고 냇물을 가늠하고 있을 때 월천(越川)꾼이 다가왔다. “어르신, 소금지게를 지고 개울을 건널 수는 없습니다.”
냇가 둑에 앉아 담뱃대를 물고 부싯돌을 치던 소금장수가 월천꾼 총각을 째려본다. “그래서?” “제가 건네 드릴 테니 두지게에 한냥을 내세요.” “에라 이 날강도야, 아예 소금가마를 빼앗아 가지 않고!” 월천꾼 총각이 웃는다. “천하장사도 소금가마를 지고 황토물이 용솟음치는 이 내를 건너지 못합니다. 저도 가마니 소금을 조금씩 자루에 담아 여러번 내를 건너야 한다고요.”
“시끄러 인마!” 소금장수가 꽥 소리치자 월천꾼 총각은 “알갓시요” 하며 뒷걸음쳐 저만치 떨어진 바위 위에 걸터앉았다.
소금장수 아들이 나섰다. “아부지, 지난봄에 돈 몇푼 아끼려고 객줏집 굴뚝 옆에서 짚북데기를 덮고 자다가 서리 내리는 새벽에 얼어 죽을 뻔했잖아요. 월천꾼 말대로 합시다요.” “야 이 자식아, 소금 팔아서 몇푼 남는다고 저 녀석한테 한냥이나 뜯겨?”
냇물은 점점 불어나 맨몸으로 건너기에도 만만찮았다. 소금장수가 바지를 벗어 바짓가랑이 끝단을 졸라매고 그 속에 가마니 소금을 퍼 담아 목에 걸치더니 냇물로 들어갔다. 아들과 월천꾼 총각이 걱정스럽게 지켜보는 가운데 황토 냇물은 소금장수의 사타구니 배꼽 가슴 목까지 차올랐다. “어어어… ” 하는 사이 소금장수가 기우뚱했다. 소금장수는 잠겼다 떠오르며 냇물에 떠내려가고 아들과 월천꾼은 둑을 따라 내려갔다.
“아부지 좀 건져 주시오.” 아들이 외치자 월천꾼 총각 왈, “물에 빠진 사람 구하려면 내 목숨도 내놓아야 하오. 세냥 내시오.”
그때 물에 떠내려가던 소금장수가 아들을 향해 고함쳤다. “저 도둑놈, 한냥 이상은 절대 못 준다 해라.” 떠내려가는 주제에 목에 두른 소금을 벗어던지지도 않는다. 소금장수는 더는 보이지 않았고 시체도 찾지 못했다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