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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만 선생님의 식객 7권 32화
식객여행 편에 나오는 에피소드의 일부입니다
베트남 전장에서 향수병을 앓고 있는 후임에게
선임이 양배추김치를 만들어
먹여 치료한다는 이야기죠
허영만 화백님 아버지의 실화라고 하네요
여러분 우리가 어떤 민족입니까?
네 김치에 환장한 민족입니다
한국군이 파병된 월남 땅에서도 김치와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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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전쟁 당시 미군 전투식량은
A레이션(조리전 식재료)
B레이션(비상 보존 식량) C레이션
(야전 전투식량)이 있었어요
(사진 속 식사는 실제 베트남전쟁 당시의
미군 C레이션입니다)
미군은 보급 비용을 아끼려 파월한국군에 A레이션을
보급하려고 했는데요 이걸 막은 건 김용휴 준장입니다
그는 미군 회의장에서 노발대발하며
"지금 정글을 해치고 다니는
전투병보고 등에 갈비짝을 지고
싸우라는 거냐?"며 박살을 냈습니다
덕분에 파월한국군은 미군과 똑같이
C레이션을 공급받을 수 있었는데요
고기가 듬뿍 들어간 C레이션에 현장은
나름대로 만족했지만, 문제는
이게 미군용이라 너무 느끼하다는 거였죠
한국인 특유의 "야 김치없냐? 김치? 으악 느끼해"가
일선 부대에서 곡소리로 터져 나오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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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선의 요구를 들은 파월한국군 사령부는
미군에 김치 보급을 주문했는데요
미군은 하와이에 있는 일본인 공장에서 기무치
통조림을 만들어 파월한국군에 보급할 계획을 세웠어요
사실을 알게 된 파월한국군 사령관 채명신은
참모들과 대책을 논의 했습니다
그리고 작전을 담당할 특수부대가 결성됩니다 후후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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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월한국군 사령부는 일단 기무치통조림의 반응을
보겠다며 미군들과 시식회를 열었습니다
그리고 미리 합을 맞춘 깽판 특수부대를 투입했죠
한국군 병사들은 기무치 통조림을 먹자마자
"아이 시이이이바 맛이 이게 뭐야" 쌍욕을 뿜어댔고
일부 병사는 우리가 왜 일본 기무치를 먹어야 하냐며,
역활에 너무 심취한 나머지 밥상을 엎어버렸습니다(ㅋㅋㅋㅋㅋ)
개판이 난 시식회 상황에 미군 보급 장교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고
파월한국군 사령부는 한국군 입맛에 맞는 김치는
한국밖에 못 만든다며 미군들을 설득했습니다
그렇게 김치 통조림의 한국 생산이 결정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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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60년대 말 한국은 김치 통조림은커녕
통조림도 겨우 만들까 말까 한 수준의
기술력을 가진 나라였다는 거죠
월남 노력을 들은 박정희 대통령은 다급해져
서울대 농과대로 바로 전화해 김치 통조림
좀 만들어 달라 부탁했는데요
서울대 농과대의 이춘영 교수와 김호식 교수
그리고 위 사진의 전재근 교수(당시 대학원 박사과정생)
가 연구에 돌입합니다
(당대를 떠올리며 몸서리치는 대학원생 ㅎㄷㄷ
실제로 연구가 끝나고 1년정도를 몸이 불편해 앓으셨데요)
연구팀은 원래 김치의 신선도와 아삭함을 유지하기
위해 방부제를 사용하려고 했는데요
먼 곳에서 고생하는 장병들의 건강을 위해 온도
살균으로 방향을 틉니다
30도에서 5분간 살균하니 보급함이 대만해협을
지날 때 통조림이 다 쉬어버리는 거예요
그래서 35도로 5분간 살균하는 걸로 결정했다고 하네요
그렇게 만들어진 게 K레이션 김치 통조림인데요
배에서 쉬는 문제뿐 아니라 캔 자체의 기술력도
부족해 쉽게 녹슬고 녹물로 내용물이 변질되었다고 합니다
김치 자체가 산성인 발효식품인 데다 수분도 많으니,
통조림으로 만들기 까다로운 식품이었던 거죠
채명신 장군님의 회고록에 따르면 한국 김치
통조림이 일본 기무치 통조림보다 맛이
떨어지는 건 사실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장병들은 김치 통조림이 개발되고
공급된 과정을 듣고 "여윽시 김치는 국산이 최고다"
하며 맛있게 먹었다고 합니다
김치 통조림으로 시작한 한국군 전투식량은
수출 효자상품이 되는데요
한미 정부는 1967년 12월부터 1968년 6월까지
7개월분 709만 달러,
이후 1년 단위로 해마다 1000만 달러가 넘는
전투식량 공급 계약을 맺었습니다.
한국 장병들이 먹는 음식이었지만, 비용은 미국이
부담했기 때문에 우리가 미국에 전투식량을
‘수출’한 것과 다름없었어요
김치에 이어 눈을 돌려보니 파월한국군 군화와 군복도
일본제품이었던 거예요
파월한국군사령부는 비슷한 방법으로 군화와 군복도
한국제품으로 보급을 변경합니다
보급 라면을 입찰할 때는 삼양라면과
일본라면과의 경쟁이 치열했는데요
파월한국군사령부는 간접적으로 삼양라면을
지원해 입찰에 성공하도록 돕습니다
가장 유명한 사례는 미국 운수회사들과의 경쟁으로
한진해운이 운수 계약을 해지당할 뻔한 일인데요
파월한국군사령부는 "한진해운과 용역계약을
취소하면 한국군 장병들이 미군용 탄약고 및 군수
시설을 지금처럼 철저히 경계해 주겠냐?"
으름장을 놨고요
결국 미군 당국도 한진해운과의 운수 계약을
연장하게 되었습니다 ㅋㅋㅋㅋ
김치 통조림을 만든 전재근 박사과정 대학원생은
김치와 인연이 있었는지
교수가 된 뒤 삼성과 최초의 김치냉장고 개발에도
참여하고 특허까지 냅니다 ㅋㅋㅋㅋㅋ
처음에는 김치냉장고 개념이 생소해
잘 팔리지 않았다고 하네요
(만도(딤채)에서 후발주자로 참여해 히트하면서
삼성과 만도의 특허 분쟁까지 가기도 했습니다)
덥고 습하며 위험한 월남에서 고국에서 보낸 김치를
먹는다는 건 정말 눈물 나는 일이었을 겁니다
기술력 부족으로 녹물이 흐르더라도 장병들이
맛있게 김치 통조림을 먹은건
그들을 생각하는 고국의 따뜻한 마음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