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전 왕’ 워커 리 시슬러 박사

2026. 6. 21. 16:56자유게시방

발전 왕’ 워커 리 시슬러 박사

1. 대한민국과의 깊은 인연

‘발전 왕’ 워커 리 시슬러

(Walker Lee Cisler, 1897~1994) 박사는

대한민국 원자력 발전의 대부이자,

세계적인 전력 공학 및 경영 전문가입니다.

시슬러 박사와 한국의 인연은 1948년

북한의 일방적인 단전(斷電)

사건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1948년 5월 14일, 북한이 남한으로 보내던

전기를 전격 차단하면서 남한 전체가

암흑과 생산 마비 상태에 빠졌습니다.

당시 미 군정청을 통해 이 소식을 접한

시슬러 박사는 미국 정부를 설득해 군용으로

건조되었던 자코나(Jacona) 함과 엘렉트라(Electra)

함 등 발전함(바다 위 대형 발전소 역할을 하는 배)을

부산항과 인천항으로 긴급 파견하도록 조치했습니다.

이 기동 전력 덕분에 한국은 건국 초기 최악의

암흑기를 버텨낼 수 있었습니다. 6·25 전쟁 중에도

그가 관여한 3만 ㎾급 레지스탕스 발전함이 들어와

전력 공급의 숨통을 틔워주었습니다.

2. 이승만 대통령과의 만남과-우라늄 상자

가장 결정적인 순간은 1956년 7월 시슬러

박사가 경무대(지금의 청와대)에서

이승만 대통령을 예방했을 때였습니다.
그는 가방에서 조그만

나무 상자 하나를 꺼내 보였습니다.

“대통령 각하, 이것을 보십시오. 이 상자 안에는

1.6kg의 석탄과 같은 무게의 우라늄이 들어 있습니다.

이 석탄은 기차를 조금 움직이다 멈추겠지만,

이 우라늄은 석탄 4,600톤과 맞먹는 에너지를 냅니다.

자원이 없는 한국이 가난에서 벗어나고 산업을

일으키려면, 반드시 이 원자력 에너지를 붙잡아야 합니다.”

이미 원자력의 중요성을 막연히 인지하고 있었으나

“과연 전쟁 직후의 황폐한 한국이 이를 감당할 수 있을까?”

하고 고심하던 이승만 대통령은 이 직관적인

설명에 큰 충격과 확신을 얻게 됩니다.

3. 한국 원자력의 씨앗

시슬러 박사의 조언에 큰 자극을 받은 이승만

정부는 즉시 국가적 차원의

원자력 프로젝트에 착수했습니다.

① 원자력 법안 제정 및 연구소 설립
1958년 원자력법이 제정되었고, 1959년에는

대한민국 최초의 연구용 원자로인

<트리가 마크(TRIGA Mark)-Ⅱ> 기공식이 열렸습니다.

② 원자력 인재 양성
시슬러 박사는 한국의 젊고 우수한 엘리트

공학자들을 미국으로 초청해 선진 원자력

기술을 배울 수 있도록

유학 및 연수 기회를 주선했습니다.

이때 국외로 나가 기술을 배워온 원자력

1세대 인재들이 훗날 한국형 원전

개발의 핵심 주역이 되었습니다.

4. 공학계의 거목이 남긴 유산

그는 은퇴 후에도 <해외자문협회

(Overseas Advisory Associates)>라는

비영리 법인을 설립해 전 세계 개발도상국들의

에너지 인프라 구축을 도왔습니다.

미국 공학한림원(NAE)의 창립 멤버이기도 하며,

미국 공학계의 최고 영예인 에디슨 메달

(IEEE Edison Medal), 후버 메달(Hoover Medal),

존 프리츠 메달(John Fritz Medal)을 모두

휩쓴 몇 안 되는 위대한 공학자였습니다.

한국 정부는 1970년 그의 공로를 기려 세계 최고

권위의 <수교훈장 광화장>을 수여했습니다.
자원 하나 없던 나라에 원자력이라는 거대한

미래 가능성을 제시해 준 대한민국 산업화의

숨은 영웅이자 기술 주권의 은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