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가을 일 하신다.

2023. 1. 20. 10:59좋은글

어머니 가을 일 하신다.
가을빛 떨어져 반짝이는

강물을 따라다니며 우리 어머니 가을 일 하신다.

텃밭 고추밭에서 풋고추를 따길래 먼 산 보다 다시 보니,

어느새 황금색으로 익어 가는
텃논 만조 형네 벼 베는 트랙터 곁을

따라다니시며 볏짚을 모은다.
강변 길에서 한수 형님네 나락 널어 말리는

곳에 가서 나락 뒤적거리는가 싶어
거기 눈길을 주면 어느새 종길이 아제네 나락을 담고 계신다.
강 건너 밤나무 밑에 가 하얀 수건을 쓰고 알밤을 줍고,

마당에 삶아 말린 알밤을 깐다.
마당에 널어놓은 늦게 딴 고추를 가리는가 싶으면,
어느새 길가에서 토닥토닥 콩 타작을 하신다.
누구네 집 고구마 캔 데 가서 고구마를 캐시고,

또 안 계셔서 찾으면 나는 상상도 못 하는
엉뚱한 곳에서 다른 남의 집일에 열중하고 계신다.

점심때가 되어 무 밭에서 무를 뽑아다가 생채를 만들어
동네 사람들을 불러 김 나는 햅쌀밥에 참기름 치고 비벼 먹는다.
하얀 무와 무에 달린 파란 무 잎을 들고 부지런히 고샅길을 걷는
우리 어머니 걸음걸이 무 잎 보다 더 싱그럽고 푸르다.
무 잎이, 파란 무 잎이, 비빔밥 양푼 속에서 펄펄 살아

밭으로 나갈 것 같은 밥 드신다.
점심 먹고 큰길에 세 발로 세워 놓은 깨 털어 체로 까불고,
또 금세 동네 사람 몇몇과 우리 집 마당에

아무렇게나 둘러앉아 소주 드신다.
어머니는 우리 집 뒤 빈 집 좁은 마당에
오이, 호박, 가지, 콩, 깨, 도라지, 강냉이,

고추, 상추, 아욱, 생강 심어 놓고 바쁘시다.

우리 어머니, 일 년 내내 정신없이 바쁘시다.
아! 우리 어머니 가을 내내 일하신다.
“죽으면 썩을 삭신 아껴서 어디에 쓴 다냐. 내 몸이

기계였어도 고장이 백 번도 더 나고,
내 몸이 쇠였어도 다 닳아지고 없어졌을 것이다.”
콩 타작하고 검불을 바람에 날린다.
“뭐여! 쌀 뭣이 통과된다고? 쌀 불쌍한지가 진작이다.

농사꾼들 망한 지 진작이다.
우리 쌀 죽으면 우리 죽는 줄 알아야 헌다.”
“봐라! 용택아, 콩 하나 심어 콩깍지 속에 콩이

이렇게 많이 들어 있는데
세상사람들은 못 산다고 아우성이다.”

세상의 밥을 위해 평생을 땅에 몸 바친 삶이다.
돌아앉아 산을 보며 검불 날린 콩에서 벌레 먹은 콩을

가리시는 어머님의 모습은
단호해 보이고, 극히 평화로워 보이고, 아름다워 보이고,
사는 일상을 보면 후회도 미련도 없을 것 같다.
어느새 또 강 길에 나가 한수 형님네 나락 다 담고

산그늘 내린 강변 길을 걸어오시는
일흔여덟 우리 어머니 모습 단풍 든 저문 산 빛보다

맑고 환하고 성스럽기까지 하다.

세상의 밥을 위해 평생을 땅에 몸 바친 삶이다.
돌아앉아 산을 보며 검불 날린 콩에서 벌레

먹은 콩을 가리시는 어머님의 모습은
단호해 보이고, 극히 평화로워 보이고, 아름다워 보이고,
사는 일상을 보면 후회도 미련도 없을 것 같다.
어느새 또 강 길에 나가 한수 형님네 나락 다 담고

산그늘 내린 강변 길을 걸어오시는
일흔여덟 우리 어머니 모습 단풍 든 저문

산 빛보다 맑고 환하고 성스럽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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