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마음

2024. 5. 6. 10:19자유게시방

💕어버이 마음


저녁상을 물리고 나서 어머님이 물었다.


"그래 낮엔 어딜 갔다 온거유?"


"가긴 어딜 가? 그냥 바람이나 쐬고 왔지!"


아버님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그래 내일은 무얼 할꺼유?"


"하긴 무얼 해, 고추모나 심어야지."


"내일이 무슨 날인 지나 아시우?"


"날은 무신날? 맨날 그날이 그날이지~"


"어버이날이라고 옆집 창식이 창길이는 벌써 왔습디다."


아버님은 아무 말없이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댕겼다.


"다른 집 자식들은 철도이고 때 되면 다들 찾아오는데,

우리 집 자식들은 뭐가 그리 바쁜지? 원~"


어머님은 긴 한숨을 몰아쉬며 푸념을 하셨다.


"오지도 않는 자식 놈들 얘긴 왜 해?"


"왜 하긴? 하도 서운해서 그러지요. 서운하긴

당신도 마찬가지 아니유?"

 

"어험~"


아버님은 할 말이 없으니 헛기침만 하셨다.


"세상일을 모두 우리 자식들만 하는지.. 아무리

바빠도 그렇지. 자식 잘못 기른 내 죄지 내 죄야!"


어머님은 밥상을 치우시며 푸념 아닌 푸념을 하였다.


"어험! 안 오는 자식 기다리면 뭘 해?

그냥 이렇게 살다가 죽으면 그만이지.."


아버님은 어머님의 푸념이 듣기

싫은지 휑하니 밖으로 나가셨다.


다음 날, 어버이날이 밝았다.

조용하던 마을에 아침부터 이 집 저 집

승용차가 들락거렸다.


"아니 이 양반이 아침밥도 안 드시고 어딜 가셨나?

고추모를 심겠다더니 비닐하우스에 고추모도 안 뽑고."


어머님은 이곳저곳 아버님을 찾아봐도 간 곳이 없다.

 

"혹시 광에서 무얼 하고 계시나?"


광문을 열고 들어 갔다.

거기엔 바리바리 싸 놓은 낯선 봇다리가 2개 있었다.

봇다리를 풀어보니 참기름 한 병에 고춧가루 1 봉지,

또 엄나무 껍질이 가득 담겨 있었다. 큰아들이 늘 관절염

신경통에 고생하는 걸 알고 준비해 두었던 것이다.


또 다른 봇다리를 풀자 거기에도 참기름 한 병에

고춧가루 1 봉지, 민들레 뿌리가 가득 담겨 있었다.

작은 아들이 늘 간이 안 좋아 고생하는 걸 알고

미리 준비해 두셨나 보다.

어머님은 그걸 보시고 눈시울이 붉어졌다.

언제 이렇게 준비해 두셨는지. 엄나무 껍질을 구하려면

높은 산엘 가야 하는데, 언제 높은 산을 다녀왔는지. 요즘엔

민들레도 구하기 힘들어 며칠을 캐야 저만치 되는데,

어젠 하루종일 안 보이시더니, 읍내에 나가

참기름을 짜 오셨던 것이다.

자식 놈들이 이 마음을 알렸는지? 어머님은 천천히 발을 옮겼다.

동네 어귀 장승백이에 아버님이 홀로 앉아 있었다. 구부러진

허리에 초췌한 모습으로 저 멀리 동네 입구만 바라보고 계셨다.

어머님은 아버님의 마음을 잘 알기에 시치미를 뚝 떼고,


"아니 여기서 뭘 하시우? 고추모는 안 뽑고?"


"......"


"청승 떨지 말고 어서 갑시다. 작년에도 안 오던

자식 놈들이 금년이라고 오겠수?"


어머님이 손을 잡고 이끌자, 그제야 아버님은

못 이기는 척 일어났다.


"오늘 날씨 왜 이리 좋은 기여? 어서 가서 아침

먹고 고추모나 심읍시다."


"...."


아버님은 아무 말없이 따라오면서도 자꾸

동네어귀만 쳐다보셨다.


"없는 자식복이 어디서 갑자기 생긴 다우?

그냥 없는 듯 잊고 삽시다."


"험험..."


헛기침을 하며 따라오는 아버님이 애처로워 보였다. 집에 돌아와

아들 오면 잡아주려고 애지중지 길러왔던 씨암탉을 보고,


"오늘은 어버이날이니 우리 둘이 씨암탉이나 잡아먹읍시다.

까짓 거 아끼면 무얼 하겠수? 자식 복두 없는데."


"......" 


아침 밥상을 차리면서 


"오늘은 고추모고 뭐고 그냥 하루 편히 쉽시다. 괜히 마음도

안 좋은데 억지로 일하다 병나면 큰일 아니우? 다른 집들은

아들 딸들이 와서 좋은 음식점에 외식이다 뭐다 하는데, 우린

씨암탉 잡아 술이나 한잔 합시다."


"험험..."


그때였다. 아침상을 마주하고 한술 뜨려 하는데,


"아브가 어므이~" 


하면서 재너머 막내딸과 사위가 들이닥쳤다.

어렸을 때 소아마비를 앓아 다리를 심하게 저는 딸이라 늘

구박만 주었던 딸인데, 사위랑 함께 땀을 뻘뻘 흘리며

헐레벌떡 들어왔다. 깜짝 놀라며,


"아니 네가 어떻게, 제 몸 하나 잘 가누지 못하는

네가 어떻게 왔니?"


"어므이 아브가! 오늘 어버이날 이라 왔어. 아브가

좋아하는 쑥 버무리떡 해가지고 왔어."


그러면서 아직 따끈따끈한 쑥 버므리떡을

내놓는 것이 아닌가.


"아니 이 아침에 어떻게 이 떡을 만들었니?"


"저이 하고 나하구 오늘 새벽부터 만들었어 맛이

있을는지 몰라"


"이보게! 박서방, 어떻게 된 건가?"


"네, 장모님 저 사람이 어제부터 난리를 쳤어요.

장인어른께서 쑥버무리떡 좋아하신다고 쑥 뜯으러 가자고

난리를 치고, 또 밤새 우려내고 새벽부터 만들었어요."


"그랬구나! 그런데 왜 이렇게 땀을 흘리고 왔어? 천천히 오지?"


"저 사람이 쑥 버무리떡은 따끈할 때 먹어야 맛있다고

식기 전에 아버님께 드려야 한다고 뛰다시피 해서 가지고 왔어요."


"에이고 몸도 성치 않은 자식인데."


소아마비로 인해 딸이 몸이 성치 않아 몇 년 전 한쪽

다리가 불구인 사위를 얻어 시집을 보냈던 딸이었다.

언제나 어머니 마음 한구석에 아픔으로 자리했던 딸이었기에

그저 두내외 잘 살기만을 바라는 마음이었다. 어느 사이

어머님의 눈가엔 눈물이 배어 나왔다.


"참! 아브가 어므이 이거." 


하면서 카네이션 두 송이를 꺼내어 내미는 것이었다.


"저이가 어제 장터에 가서 사 왔어! 이쁘지?"


"내가 달아 드릴게." 


하면서 카네이션을 가슴에 달아 주었다.


"아브가 어므이 오래오래 살아야 돼. 알았지?"


"그래 알았다 오래 살마. 너희들도 행복하게 잘 살아라.

박서방 정말 고맙네."


"아니에요 장모님. 두 분 정말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세요."


"그려 그려 정말 고맙네."


"아브가 어므이 어서 이 쑥떡 먹어봐. 맛이 어떨는지 몰라."


"그래 알았다."


아버님과 어머님은 쑥 버므리떡을 입에 넣으며

목젖이 울컥하는 것을 느꼈다.

눈가엔 눈시울이 붉어졌지만 애써 참으며,


"그래 참 맛있구나. 이렇게 맛있는 쑥떡은

처음 먹어 보는구나. 당신도 그렇지요?"


"흠흠 으응."


아버님은 목이 메어 더이 상 말을 하지 못하셨다.


"참! 술 술." 


사위가 잊었다는 듯 보따리에서 술병을 꺼냈다.


"이거 아브가 어므이 드린다고 박서방이 산에서 캔

산삼주야. 작년에 산에 갔다 캤는데, 팔자고 해두

장인어른 드린다고 안 팔고 술 담은 거야."


"박서방이 산삼을 캤구먼."


"네. 작년에 매봉산에서 한뿌리 캐었어요."


"에구 몸도 성치 않은 사람이.."


산삼주를 받아 든 아버님의 손끝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평생 홀아비로 늙어갈 몸인데, 저렇게

이쁜 색시를 주셔서 너무 고마워요."


"무슨 소린가? 몸도 성치 않는 자식을 받아 준 자네가 고맙지!"


"아녀요. 저한테는 너무 과분한 색시구먼유."


"그려 그려. 앞으로도 못난 자식 잘 부탁하네."


"장인 장모 어르신 오래오래 사세요~"


아버님은 눈시울이 뜨거워 더 이상 앉아 있지 못하고

슬며시 일어나 나가셨다.

병신 자식이라 불쌍하게만 여겼지, 아들처럼 공부도

안 시키고 결혼식도 안 올리고 그냥 시집을 보낸 딸자식이었는데,

그저 시집보냈으니 있는 듯 없는 듯 신경 안 쓰던

그 자식이 어버이날이라고 이렇게 불쑥 찾아올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 더욱이 내가 좋아하는 쑥 버므리떡을

밤을 새워가며 해가지고 올 줄이야. 

내 평생 이렇게 맛있는 떡을 먹어 본 적이 있었던가?


무엇이든 아들 형제만 주려고 생각했지, 병신 딸은

언제나 안중에 없었다. 행여 병신 자식이라고 업신

여겼던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웠다.

불구의 몸이지만 딸의 마음이 저렇게 깊은 줄 이제야

알았다. 아들들 때문에 서운했던 마음이 딸로

인해 일순간에 풀어졌다.

먼 아들보다 가까운 딸자식이 소중한 것을

그때서야 알았다. 그러면서 가슴 저 깊은 곳이

아려 왔다. 정말 딸이 고마웠다.

아니 많이 미안했고,


한참 뒤 밖에서 씨 암탉 잡는 소리가 들렸다. 잘난

자식들 줄려고 키웠는데, 못난(?) 딸 줄려고 잡나 보다.


"우리 모두 반성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