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삿갓 - (2)

2022. 4. 22. 19:56초 한지/김삿갓 1편

방랑 시인(放浪詩人) 김삿갓 - (2)


* 병연(炳淵)의 방랑준비(放準備) *
천부적(天賦的)인 재질(材質)을 가진 병연(炳淵)에게는 시(詩)야 말로 생(生)의 전부(全部)였다.
애써 생각치 않아도 시상(施賞)은 항상(恒常) 그와 함께 있었다.
지금까지는 입신출세(立身出世)를 해보겠다는 신념(信念)으로 살아온 자신(自身)이었다.


그래서 책(冊)을 읽었고 문장(文章)을 가다듬고 주변(周邊)에 보이는 모든 것에 시작(時作)을 붙였다.
하지만 출세(出世)가 뜬구름이 된 지금, 문장(文章)이 무슨 소용(所用)있으며 시(詩) 또한 무슨 필요(必要) 있단 말인가, 폐족(廢族 : 조상이 큰 죄를 짓고 죽어 그 자손이 벼슬을 할 수 없게 됨)의 낙인(烙印)이 찍혀 있는 마당에 시(詩)를 해서 무엇한단 말인가.


자괴감(自愧感)에 싸여 며칠을 고민(苦悶)을 거듭하던 병연(炳淵), 뜬구름 같은 인생(人生), 모든것을 떨쳐버리고, 자연(自然)에 묻혀 동가숙 서가식(東家宿 西家食) 하면서 주유천하 (周遊天下)로 지내고 싶었다.


그러나 이러한 결심(決心)은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병연(炳淵)은 자기의 결심(決心)을 실행(實行)하기에 앞서 소년 시절(少年時節)부터 자기(自己)를 깨우쳐준 서당(書堂)의 스승님을 찾아 뵙고 인사(人事)를 올리리라 마음 먹었다.


"허어, 병연(炳淵)에게는 더 가르칠것이 없구나 너를 가르치기엔 나의 글이 너무 짧구나." 스승은 이렇게 솔직(率直)한 사람이었다. 공부(工夫)가 깊어갈수록 병연(炳淵)의 깨우침이 스승을 앞섰고, 이제 그 결과(結果)로 백일장(白日場) 장원(壯元을 하였으니 즉시(卽時) 스승님을 찾아 뵙는것이 도리(道理)이지만 어지러운 심경 (心境)탓도 있고 급제(及第)한 바를 떳떳하게 자랑할 처지(處地)도 못되었기에 당장(當場) 나서지 못했다.


그러나 집을 떠나 방랑(放浪)길에 오르게 되면 언제 다시 뵐수 있을지 알수없는 일이라 떠나기 전에 인사(人事)라도 올리는 것이 도리(道理)라고 생각하고 서당(書堂)이 있는 아랫 마을로 내려갔다.


"스승님!"
 
방안에서는 학동(學童)을 가르치는 스승님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게 누구냐?"
 
"저 병연(炳淵)이옵니다"


방문(房門)이 벌컥 열리며 학우(學友)들이 쏟아져 나왔다.
"아니 자네 이제 왔는가?" 학우(學友)들이 그를 반기는데 병연(炳淵)의 장원급제(壯元及第) 소식(消息)을 뻔히 듣고있던 터에 조금 늦게 나타났다는 질책어린 대답이었다.


병연(炳淵)은 말 없이 방안으로 들어가 스승께 큰 절을 올렸다.
"일찍 찾아 뵈오려 하였으나 신병(身病)으로 늦었음을 용서(容恕)하여 주십시오." 병연(炳淵)은 하는 수 없이 거짓말을 했다.


"그래? 많이 아팠더냐 ? 그래 지금은 괜챦느냐?" 스승은 병연(炳淵)의 말을 듣고 눈을 동그랗게 뜨며 병연의 병(病)을 염려(念慮)하였다.
 
"네 지금은 염려(念慮)하신 덕(德)에 거의 낳았습니다."


"허허헛, 장원급제(壯元及第)를 하더니 너무 기쁜 나머지 (病)병을 얻은 모양이다. 거의 다 낳았다니 마음이 놓인다." 스승은 자기(自己) 문하(門下)에서 장원급제(壯元及第)가 나왔으니 여간 즐겁지 않았다.
연실 허연 수염을 쓰다듬으며 병연을 바라보며 마냥 만족해 하였다.


"우린 그런줄도 모르고 자네를 기다리고 있었네, 오늘도 소식(消息)이 없었으면 자네 집으로 올라갈
참이었네. 그나저나 자네의 장원급제(壯元及第)를 축하(祝賀)하네."

그제서야 동문수학(同門受學) 하던 친구(親舊)들이 저마다 나서며 병연(炳淵)에게 축하(祝賀)의 말을 건넸다.


"정말 고맙네. 내가 재주가 있다기 보다 평소(平素)에 스승님께서 잘 가르쳐주신 은덕(恩德)이고 학우(學友)들이 도와준 덕분(德分)일쎄." 병연(炳淵)은 이렇듯 답례(答禮)를 하였지만 친구(親舊)들의 축하(祝賀)가 여간 거북스럽지 않았다.


"백일장(白日場) 다음날 읍내(邑內)에 나갔더니 저자거리나 주막(酒幕)거리나 할 것 없이 장원급제(壯元及第)한 선비 이야기로 들끓더군. 바람처럼 나타났다 바람처럼 사라졌다고. 어떤 사람은 자네가 산신령(山神靈)의 화신(化身)이라고 까지 말을 하더군." 학우(學友)의 이 말에 병연(炳淵)은 어색하게 웃고만 있었다.


이번에는 스승이 한마디 하셨다.
"내력(來歷)을 알 수없는 젊은이가 당당(堂堂)히 급제(及第)를 따냈으니, 뒷 이야기도 많을 것이다.
그나저나 언제쯤 출사(出仕)하기로 하였느냐 ?"


"아직 결정(決定)된 것은 없으나 미구(未久)에 있을것으로 압니다." 병연(炳淵)은 대답(對答)을 아니 할수도 없어 생각되는 대로 말했다.
 
"매우 장(壯)한 일이다. 이제부터는 네 앞 길이 열려있는 셈이다. 더욱 정진(精進)하도록 하여라." 스승은 정색(正色)을 하고 병연(炳淵)을 훈계(訓戒)했다.
 
"예" 병연(炳淵)은 한시라도 빨리, 이 자리를 빠져 나가고 싶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의 생각 뿐, 학우(學友)들이 서둘러 병연(炳淵)을 위한 축하연(祝賀宴)을 베풀었다.
처음에는 스승님을 모셔놓고 주안상(酒案床)을 벌였지만 스승님이 눈치껏 자리를 비켜주면서 부터
젊은이들 판이 되었다.


"여보게 병연(炳淵)이. 자네 벼슬길로 나아 가더라도 우릴 괄시(恝視)해선 안되네. 우리들이야 천자문(千字文)에 명심보감(明心寶鑑) 몇줄이나 읽고 쓰다, 곧 집어치울 팔자(八字)가 아니던가?"
 
"예끼 이 사람들아!" 술이란 좋은 것이다. 술 몇잔을 마신 병연(炳淵)은 어느새 조금전 까지 침울(沈鬱)했던 기분(氣分)에서 벗어나 차차(次次) 호기(豪氣)를 되찾고 있었다.


"읍내(邑內)에는 기생(妓生)도 많지 않은가? 자네는 젊고 잘생긴데다 글까지 일필휘지(一筆輝之)로 통달(通達)하였으니 기생(妓生)은 마음대로 골라잡아 놀수 있겠구먼."
 
"그야 물론이지, 출세(出世)하면 권세(權勢)는 물론이요. 계집은 자연(自然)히 따르는 법(法), 그래서 모두들 출세하려고 발버둥 치는것 아니겠나.? 자네도 병연(炳淵)이가 부럽거든 어서 장원급제(壯元及第)를 하게."


학우(學友)들은 마음껏 마시고 떠들었다.
병연(炳淵)도 오랫만에 가져보는 화기애애(和氣靄靄)한 시간(時間)이었다.


병연(炳淵)은 학우(學友)들의 얼굴을 하나씩, 처음보는 사람처럼 오랫동안 찬찬히 들여다 보았다.
오늘 헤어지면 평생(平生) 다시 만날것 같지 않아서였다.
(아니 모르지... 바람따라 떠돌아 다니다가, 먼 훗날 어느 곳에서 다시 만날수 있을지..?)


갑자기 서글픈 생각이 밀려왔다. 그것은 훗날 다시 만날지도 모를 이 친구(親舊)들, 오늘의 젊음은 간곳 없고 서로 늙고 피곤(疲困)한 모습으로 상봉(相逢)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막연(漠然)한 추측(樞軸)이 들어서였다.


축하연(祝賀宴)은 날이 저물어서야 끝났다. 병연(炳淵)은 많은 잔(盞)을 마셨지만 좀체 취기(醉氣)가 돌지 않았다. 헤어질 때 병연(炳淵)은 학우(學友)들의 손을 일일히 잡으며 조만간(早晩間) 있을 이별(離別)에 서러운 마음을 담으며 헤어졌다.


그리고 다시 며칠이 흘렀다. 병연(炳淵)은 그동안 보아오던 책(冊)을 정돈(整頓)하여 깊숙히 처박았다.
그의 야망(野望)을 북돋아 주던 책(冊)들이었다. 병연(炳淵)은 이렇게, 지난 시절(時節)을 함께 했던 오랜 친구(親舊)와 작별(作別)하는 심정(心情)으로 책(冊)들과 작별(作別)을 나누었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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