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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 야화 ( 노스님의 한숨 ) ~!

고수# 2025. 11. 14. 07:43

노스님의 한숨


칠흑 같은 밤,
노스님 혼자 기거하는 첩첩산중 다 쓰러져 가는 암자에 갑자기 온 산골짝을 뒤엎는 큰 소동이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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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스님의 방문이 홱 열리며 “헥헥, 사람 좀 살려 주십시오.”
노스님이 관솔불을 켜자 웬 젊은이가 바지만 걸치고 맨발로 벌벌 떨고 있는 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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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스님이 암자 마당에서 내려다보니 소나무 사이로 횃불이 어른거리고 킁킁 개가 앞장섰다.
노스님은 젊은이에게 바지를 벗으라 해서 그 바지를 통시(‘뒷간’의 방언) 똥통 속에 던져넣고
젊은이를 법당으로 들여보낸 뒤 자물쇠를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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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장정 다섯이 삽살개를 앞세우고 암자 마당에 들이닥쳤다. 삽살개가 킁킁거리며 통시로 향했다.
​한 녀석이 쇠스랑으로 똥물을 쿡쿡 찔렀다.
몇몇은 법당에 들어가려는 걸 노스님이 호통을 치자 멈칫했다.
패거리들이 법당 안을 제외하고 암자를 샅샅이 뒤진 후 산골짝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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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벌거벗은 채 법당 안에 숨어 있던 젊은이가 노스님이 던져준 승복을 입고 나오더니 큰절을 했다.
​“허우대가 멀쩡한 놈이 무슨 죄를 짓고 그 난리를 쳤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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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를 숙인 채 한숨만 토하던 젊은이가 털어놓은 사연인즉
이 진사 안방마님과 통정을 하다가 들통이 나서 바지만 챙겨들고 도망쳐 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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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스님이 혀를 끌끌 차며 “내가 미쳤지. 저런 놈을 살려 주다니.”
​젊은이는 또다시 넙죽 절을 하더니 마땅히 갈 곳도 없는지라 이 암자에 눌러앉게 해달라고 청해,
법보라는 법명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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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보는 당장 팔을 걷어붙이고 암자 여기저기 잡초를 뽑고 깨진 기와도 갈아치웠다.
​노스님이 삼십리 밖, 저잣거리로 가서 보리쌀·수수좁쌀을 두세됫박 탁발해 돌아오는 걸 보고
법보는 기가 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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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새벽, 예불을 마친 법보는 망태기를 어깨에 메고 숲속으로 사라지더니
점심나절 전에 송이버섯 한망태를 채워왔다.
둘이 실컷 구워 먹어도 표시도 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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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 제가 저잣거리로 내려갔다 오는 게 도리지만, 그놈들한테 잡히면….”
​노스님이 송이 망태기를 메고 저잣거리로 내려갔다가 쌀 한가마를 진 짐꾼과 함께 암자로 돌아온 건
어둠살이 깔린 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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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근이 살림을 꾸려가던 암자에 어느날 귀한 손님이 찾아왔다.
말을 탄 장부 뒤로 가마가 따르고 그 뒤로는 쌀 한가마씩 지게에 진 짐꾼이 다섯이나 따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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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석꾼 부자, 권 참사네 며느리가 백일기도를 하러 온 것이다.
삼대독자 권 참사 외아들에게 시집온 며느리는 삼년이 지나도 태기가 없었다.
모두가 잠든 인시(寅時 : 03시~05시)만 되면 며느리는 일어나 법당에서 부처님께 불공을 드렸다.
정성들여 백일기도를 끝내고 나서 며느리는 가마를 타고 하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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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듬해, 또다시 가마 행렬이 암자에 들이닥쳤다.
가마에서 내리는 사람은 며느리가 아니라 권 참사 본인이었다.
만면에 웃음을 띠며 노스님의 두손을 잡고 “대사님 덕택에 며느리가 득남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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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방에서 노스님과 차를 마시던 권 참사가 하늘도 놀랄 제안을 했다.
​“대사님, 제가 불사(佛事)를 벌여 대웅전을 새로 지어 바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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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 참사가 하산한 후에도 노스님은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자기 볼을 꼬집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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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법보가 들어와 노스님에게 큰절을 올리더니
“스님, 안녕히 계십시오. 한평생 스님의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노스님이 깜짝 놀라 “야, 이놈아 좋은 시절이 오는데 왜 떠나겠다는 게야?”
“제 은신처가 불당 아랜데 법당을 허물잖아요. 저는 두번 죽습니다. 이 진사 손에 맞아 죽고,
권 참사에게 부관참시 당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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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보가 떠나간 후에도 노스님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 진사 손에 맞아 죽는다는 건 이해가 되지만 권 참사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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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후 노스님은 무릎을 탁 치며 한숨을 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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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사가 시작되자 권 참사네 친인척들이 모두 올라왔다.
권 참사가 안고 있는 손자를 보고 노스님은 한눈에 알아차렸다.
떠나간 법보를 빼다 박았다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