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호지

기생(妓生) 소백주(小柏舟) - 52회

고수# 2025. 5. 22. 08:38

★ 기생(妓生) 소백주(小柏舟) - 52회

제52회 고향 생각

둘 사이에는 늘 아름다운 봄바람 같은 따뜻한 바람이 흐르고 있었고, 그 바람은 서로에게 환희를 낳았다.
환희의 나무 밑에서는 금슬이라는 탐스러운 열매가 뚝뚝 떨어지는 것이었다.

​김 선비는 그날 이후로 소백주에게 흠씬 빠져 고향집으로 내려갈 마음을 송두리째 잊어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소백주는 매일 김 선비를 새 옷으로 갈아입혀 주고 술과 고기로 융숭히 대접해 주면서 들로 산으로 유람을 나다니는 것이었다.

​연일 꽃피는 봄날만 같은 시름없는 날들이었다.
소백주 옆에만 있으면 향기 그칠 일 없었고, 근심일랑 있을 수 없었다.

남녀 간에 세상 살아간다는 것이 이렇게 마음 편하게 근심 걱정 없이만 살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었다.
더 이상 욕심부려 공부해 과거 따윈 볼 필요도 없었고, 힘써 재물을 늘려 부귀영화를 누리려 할 필요도 없었다.

​다만 돈 많은 어여쁜 부인 소백주가 이끄는 대로 살아가기만 하면 되었으니 남들이 새로 얻은 마누라 덕에 호강한다고 할지 몰라도 그 세월이 참으로 김 선비에게는 춘삼월 호시절(好時節)이었던 것이다.

​김 선비는 고향의 노모와 처자식이 다 굶어 죽게 생겼다는 것은 딱 잊어버리고 아무 생각 없이 소백주와 즐거운 나날을 보내고만 있었다.

좋은 옷 입고 좋은 음식 먹으며 밤마다 아름다운 여인 소백주를 끌어안고 자면서 세월을 보냈던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꿀같이 달콤한 망각의 세월 삼 년이 거짓말같이 번쩍 흘러가 버린 어느 가을날 문득 멀리 북녘으로부터 찬바람이 몰려오고, 산비탈에 심은 밤나무에서 밤알이 툭툭 벌어지고, 은행나무 잎이 노랗게 물들어 오자 김 선비는 고향 생각이 간절해지는 것이었다.

​“어허! 간밤에 단꿈을 꾸고 막 일어난 것만 같은데, 그새 삼 년이 훌쩍 지나가 버렸단 말인가!”
김 선비는 혼잣 말을 하며 소백주에게 홀랑 빠져 지낸 세월을 더듬어 보는 것이었다.

​지금쯤 그 고향집에도 가을을 맡느라 분주하겠거니 하는 생각이 들고, 잊고 살았던 노모며 처자식 생각이 머릿속에 떠오르자 견딜 수 없이 그들이 그리워지는 것이었다.

생각해 보면 식구들이 죄다 굶어 죽게 되었다는 전갈을 받고, 고향집에 가다가 소백주를 만나 이렇게 그들을 다 잊어버리고, 혼자만 호강하고 살아온 것을 그제야 깊이 되새겨 생각해 보는 것이었다.

​‘아이쿠! 이거, 내 고향땅에 살아있을 노모며 처자식은 어찌 되었단 말인가? 필시 굶어 죽었을 것이야! 내가 이거 사람이 아니었구나!’

​김 선비는 속으로 깊이 뉘우치면서 소백주의 집을 떠나 하루빨리 고향집으로 가야겠다고 마음을 다잡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날 밤 잠자리에 들어 소백주에게 말하는 것이었다.

​“부인, 내 그대 덕분에 이곳에서 세월 가는 줄 모르고 호강하고 살았는데, 생각해 보니 내 고향집에 두고 온 노모며 처자식은 어찌 살고 있는지 궁금해 마음이 몹시 불편하군요.”

- 53회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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