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萬鍾之惠(만종지혜

고수# 2025. 5. 20. 20:06

菜     根     譚
제 52장 : 萬鍾之惠(만종지혜) : 따지지 않고 베풀면 만종의 가치가 있다.


施恩者  內不見己  外不見人  則斗栗可當萬鍾之惠
시은자 내불견기   외불견인  즉두율가당만종지혜


利物者  計己之施  責人之報  則百鎰難成一文之功
리물자  계기지시  책인지보  즉백일난성일문지공


은혜를 베푸는 사람이 안으로 자신을 의식하지 않고 밖으로 남을 의식하지 않으면 한 말의 곡식일지라도
1만 종(鍾)의 은혜에 해당한다.
남을 이롭게 하는 사람이 공을 따져 남의 보상을 바라면 1백 일(鎰)의 금전일지라도
단 1문(文) 전(錢)의 공도 이루기 어렵다.


만종지혜(萬鍾之惠)의 ‘종(鍾)’은 부피 단위로 6석 4두를 말한다.
백일(百鎰)의 ‘일(鎰)은 여러 설이 있으나 20냥, 24냥, 30냥 설이 있다.
일문지공(一文之功)의 ’문(文)은 동전을 헤아리는 단위로 ‘일문’은 곧 동전 일문(一文)을 말한다.
우리말로 ‘동전 한 푼’ 내지 ‘동전 한 닢’에 해당한다.
우리말 ‘푼돈’은 문전(文錢)과 같은 말이다.
여기서는 남에게 공덕을 베풀 때 보상을 바라는 식으로 자랑하는 마음을 지녀서는 안 된다는 것을 역설하고 있다.
그런 마음이 없으면 비록 한 말의 곡식일지라도 1만 종의 미곡을 준 것과 다름없고,
정반대로 보상을 바랄 경우 설령 1백 일(鎰)의 금전을 베풀지라도
‘동전 한 푼’의 공도 이룰 수 없다고 지적한 게 그렇다.


하루는 당태종 이세민이 여산(驪山)으로 사냥을 나가게 됐다.
그곳에는 황제 전용 사냥터가 있었다. 제왕의 사냥은 단순한 사냥놀이가 아니라 무예를 연마하는
이른바 강무(講武)의 일환으로 행해진 까닭에 군법이 적용됐다.
가서 보니 담장 일부가 무너져 있었다. 따라간 신하들이 말했다.
“이는 관리인이 책임을 다하지 않은 것이 분명하니 엄히 다스려야 합니다.”
이세민이 말했다.
“분명히 책임을 다하지 않았으니 대죄로 다스리지 않으면 군의 기강이 해이해질 것이다.
그러나 그를 큰 벌로 다스리면 마치 내가 일부러 그의 과오를 들춰낸 것처럼 보이지 않겠는가?”
그러고는 길이 험하다는 이유로 말머리를 돌려 다른 곳으로 돌아갔다.
또 한 번은 가마를 타고 궁 밖으로 나갔다.
호위병이 실수로 그의 옷을 당기는 바람에 하마터면 가마에서 떨어질 뻔했다.
이세민이 아무렇지도 않은 듯 태연히 웃으며 말했다.
“지금 여기에 어사(御使)가 없으니 그대의 과실을 묻어두겠다.”
호위병이 감격해하며 충성을 바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말 한마디에 천 냥 빚도 갚는다’는 우리말 속담이 있다.
말만 잘하면 어려운 일이나 불가능해 보이는 일도 해결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는 반드시 약자인 을(乙)이 강자인 갑(甲)에게 행할 때만 통하는 게 아니다.
갑이 을에게 행할 경우 더 큰 보답으로 돌아올 수 있다.
당태종의 사례가 대표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