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호지
기생(妓生) 소백주(小柏舟) - 44회
고수#
2025. 5. 12. 08:31
기생(妓生) 소백주(小柏舟) - 44회
제44회 백년가약
초례청이 다 꾸며지자 새 신랑이 된 김 선비는 준비해 준 기러기를 싸안고 집안에서 일을 하는 사내들 둘을 거느리고 밖으로 나갔다.
김 선비는 마당 가에 피워둔 짚불을 건너 뛰어넘어 안방 문 앞에 준비해 둔 상에 기러기를 놓고 두 번 절을 했다.
기러기를 전달하는 전안례를 시행하는 것이었다.
이백 살을 먹도록 오래 산다는 기러기는 짝을 잃어도 홀로 사는데 이는 사랑의 언약을 영원히 지킨다는 것을 상징했다.
또 줄지어 날아가는 기러기는 상하의 예를 잘 지키며 어디를 가도 흔적을 남기는데, 이는 훌륭한 삶의 업적을 남기겠다는 것을 의미했다.
소백주의 어머니가 없는 탓에 대신 집안일을 보는 늙은 할미가 기러기를 받아 안고 들어갔다.
다음은 교배례였다.
초례청 동편에 우뚝 선 늠름한 자태의 김 선비는 어흠! 헛기침을 하며 신부 소백주를 기다리고 서 있었다.
잠시 후 물빛 뽀얀 볼에 불타는 듯 고운 진달래꽃 빛 연지 곤지를 찍은 천하의 미색 신부 소백주가 족두리 쓰고 원삼 입고 시녀들에게 둘러싸여 나오는 것이었다.
달빛에 고요히 어리는 한 마리의 화려한 공작새처럼 눈부시게 장식한 신부 소백주는 마치 천상에서 막 하강한 선녀와 같았다.
김 선비는 소백주의 아름다운 자태를 본 순간 눈앞이 아득해 오는 희열을 가슴 깊이 맛보는 것이었다.
‘과연 조선 최고의 미색 소백주로구나!’ 김 선비는 마른침을 꿀꺽 삼키고는 만족의 미소를 입가에 쓱 흘렸다.
그것은 무슨 기대감에 대한 흡족함의 표현이었다.
서로 맞절을 하러 가린 얼굴을 들어낸 소백주의 얼굴을 김 선비는 놓치지 않고 유심히 바라보았다.
달빛 아래 비추는 소백주의 고운 얼굴은 하얀 달덩이 그대로였다.
뽀얀 살결에 둥근 이마, 반짝이는 눈빛은 과연 소백주가 절세미인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었다.
서로 맞절을 하고 교배례는 끝이 났고, 이제 합근례 차례였다.
둘로 나눈 표주박에 술을 채우고 서로 마시는 것이었다.
첫째 잔은 지신(地神)에게 감사한다는 의미에서 고수레로 바치고, 둘째 셋째 잔은 부부가 서로 화합하라는 의미로 나누어 마시는 것이었다.
둘째 잔이 김 선비에게 오고, 셋째 잔이 소백주에게로 갔다.
김 선비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소백주를 바라보며 천천히 술을 들이켰다.
소백주의 붉은 앵두 같은 불타는 입술이 새하얀 술잔에 닿자 그만 투명한 술이 일순 발갛게 빛나는 것이었다.
그 술이 소백주의 붉은 입술 속으로 서서히 흡입하듯 타고 들어갔다.
부부가 될 것을 백년가약(百年佳約)하는 혼례식을 마친 그날 밤 드디어 첫날밤을 맞이하기 위하여 김 선비와 소백주는 함께 방안으로 들었다.
등잔불 심지가 발간 방안 아랫목에 탐스러운 비단이불로 잠자리가 보아져 있었고, 윗목에 조그마한 술상이 놓아져 있었다.
부부가 첫날밤을 치를 때 마신다는 합환주였다.
김 선비는 뜻하지 않게 조선 최고의 미인을 얻어 혼례식을 치르고, 그녀와 함께 뜨거운 이 봄밤을 보내게 된 것을 생각하니 이것이 온통 꿈만 같았다.
- 45회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