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호지
기생(妓生) 소백주(小柏舟) - 20회
고수#
2025. 4. 4. 08:05
기생(妓生) 소백주(小柏舟) - 20회
제20회 울분
“예, 정승 나리, 오늘 고향으로 내려가려고 하직(下直) 인사차 왔습니다.”
이 말을 할 때 김 선비는 혹시나 하는 실낱같은 한 자락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이 정승도 사람이라면 삼천 냥이나 되는 뇌물을 받아먹고 나 몰라라 하겠는가 말이다.
더구나 삼 년이라는 긴 세월을 꼼짝하지 않고 이 정승의 식객으로 사랑방에서 목을 빼고 기다렸으니 무슨 작은 벼슬자리라도 하나 챙겨 주겠다는 약속의 말이라도 있지 않을까 김 선비는 내심 고대하였던 것이다.
“무 무어?....... 왜? 좀 더 있지 않고.......”
이 정승은 김 선비의 눈치를 살피는 듯 잠시 바라보다가 말끝을 흐렸다.
“늙은 어머니를 뵙지 못한지가 그새 삼 년이옵니다. 늙은 어머님이 몸도 편찮다고 하니 이제 고향에.......”
“으음! 그래! 그럼, 잘 가시게나!”
이 정승은 김 선비가 더듬더듬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있는데 마치 가기를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 그렇게 무 자르듯 단박에 잘라 말하는 것이었다.
“.......”
그 말을 들은 김 선비는 순간 자신의 귀를 의심하며 이 정승을 쓱 올려다보았다.
뭐라! 돈 삼천 냥을 갖다 바치고 벼슬자리를 기다리며 삼 년 동안이나 사랑방 식객 노릇을 했는데, ‘그럼, 잘 가시게나?’
저자가 도대체 사람인가, 짐승인가?
김 선비는 순간 머리에 피가 몰리고 으드득 이가 갈려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손에 쥔 칼이라도 있다면 당장에 달려들어 저자의 목을 따고 싶은 극한 충동을 꾹 눌러 참으며 김 선비는 이 정승을 다시 쓱 올려다보았다.
김 선비의 눈에 들어온 이 정승의 얼굴은 막 커다란 개구리를 삼켜 문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낸 독사의 모습이었는데, 그것은 바로 탐욕스런 사악한 악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저런 자에게 인간적인 기대를 걸고 돈을 있는 대로 다 긁어다가 뇌물로 바쳤다니!’
김 선비는 순간적으로 스치는 생각에 자신도 모르게 잠시 머뭇거렸다.
“저저....... 정승 나리! 그 그간 신세 많이 졌습니다. 가가 강녕(康寧)하시기 바 바랍니다!”
김 선비는 ‘욱!’하고 끓어오르는 순간의 감정을 겨우 억누르고 더듬거리며 말했다.
김 선비의 눈가로 울컥 불꽃 같은 울분(鬱憤)의 눈물이 스미어 올라 그것을 재빨리 삼켜 무느라 자신도 모르게 말을 순간적으로 더듬거렸던 것이다.
이게 다 권력과 지위만 보고 사람을 볼 줄 몰랐던 자신의 잘못이지 않은가!
부정한 뇌물도 사람다운 사람에게 들이밀어야 약발이 나는 것이던가!
벼슬자리에만 눈이 멀어 사람을 볼 줄 몰랐던 자신의 탓이지 않겠는가!
김선비는 씁쓸히 이 정승의 방을 나왔다.
샛노란 현기증이 일어 김 선비는 순간 하마터면 방문 앞에 ‘쿵’하고 고꾸라져 기우뚱 넘어질 뻔했다.
- 21회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