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호지

★ 기생(妓生) 소백주(小柏舟) - 14회

고수# 2025. 3. 27. 08:15

★ 기생(妓生) 소백주(小柏舟) - 14회

제14회 경상도 김선비

충청도 부여 땅에서 왔다는 입담 좋기로 소문 난 조 선비가 용한 정 씨 점쟁이 이야기 한 자락을 풀어 놓자 그 이야기를 열댓 명이나 함께 엉겨 듣고 있던 각지에서 올라온 선비들이 그 신통력에 놀라 다들 한마디씩 했다.

경상도 상주 땅에서 온 김 선비도 그 틈에 끼어 이야기를 듣고는 탄성을 질러댔다.

“허어! 정 씨 점쟁이 영감 정말 용한 점쟁이네!”
“사주를 뽑아 보지도 않고 관상을 보는 것만으로 단박에 길흉을 예측하다니 대단하네!”

​“남편이 죽어 나갈 상부할 사주인데, 그 못된 놈이 대신 맞고 죽어 나갔구만!”
“잘됐네! 잘됐어! 못된 놈이 대신 급살을 맞아 죽어서!”
“으음!...... 사람이 본시 자신의 타고난 운명을 피해 가기가 그렇게 힘이 드는 것이야!”

김선비가 한양 땅 이곳 이정승의 사랑채에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선비들과 어울려 머문 것도 그새 삼년이었다.

이 방 안에 있는 자들은 모조리 이 집 주인 이 정승의 눈에 들어 지방의 미관말직(微官末職)이라도 얻어가려는 선비들이었다.

​그런데 정말 지금 신 씨 부인 이야기를 한 저 조 선비의 말처럼 사람의 운명이란 게 과연 정해져 있는 것일까?

​삼년 동안 이 나라의 권세를 틀어쥐고 있는 이 정승만을 바라보며 김 선비는 어디 지방의 작은 벼슬자리라도 하나 얻어 금의환향(錦衣還鄕) 해볼까 하고 사랑채에 뒹굴며 이제나저제나 밤낮으로 학수고대하며 기다렸건만 이제껏 감감 무소식이었던 것이다.

​어디 정말 정 씨 점쟁이만큼 용한 점쟁이라도 있다면 지금 당장에라도 찾아가 보고 자신에게 관운(官運)이 없다고 한다면 이제 그만 모든 기대를 접고 낙향(落鄕)을 해야 옳을 듯만 싶기도 했다.

​그런저런 고민에 깊이 빠져 있는 김 선비의 고향은 경상도 상주 땅이었는데 이름은 유경이었다.

뼈대 있는 사대부 집안에서 태어난 김 선비는 당시 사대부 집안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모두 가야 할 길인 학문을 연마하여 과거에 급제하기 위한 길을 갔다.

​어려 천자문을 배우고 소학, 대학 등 사서삼경을 두루 배워 익히면서 임금 앞에 나아가 과거시험을 보고 떡하니 급제하여 벼슬자리를 얻어 관리의 길을 가는 것 그것이 유일한 꿈이었던 것이다.

​훤한 이마에 얼굴이 둥그스름 두 눈에 촉기가 빛나는 총명하게 잘 생긴 김선비는 어려 글을 아주 잘했다. 서당에서 글공부를 가르치는 스승도 김선비는 반드시 과거에 급제하여 높은 벼슬자리를 얻을 거라고 확신하는 것이었다.

​그러한 김 선비의 글공부는 열다섯에 이웃 마을 이 씨 처녀와 혼인하고 나서 더욱 늘게 되었다.

밤낮으로 서방님 글공부 열심히 하라고 마음으로부터 정성을 드리며 내조하는 아내의 덕분에서인지 김 선비의 문장은 하루가 다르게 도란도란 거침없이 흐르는 산골짜기 물처럼 바다를 향해 도도히 흐르는 강물처럼 그침 없이 일취월장(日就月將) 하는 것이었다.

​- 15회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