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妄盡眞現(망진진현)

고수# 2025. 3. 25. 05:41

菜     根     譚

제 25장 : 妄盡眞現(망진진현) : 망상이 다 해야 진심이 나타난다.

 

矜高妄傲, 無非客氣, 降伏得客氣下, 而後正氣伸, 情欲意識, 盡屬妄心, 消殺得妄心盡, 而後眞心現

긍고망오, 무비객기, 항복득객기하, 이후정기신, 정욕의식, 진속망심, 소살득망심진, 이후진심현

 

(긍지가 높고 망령되이 오만한 것 가운데 객기(客氣)가 아닌 게 없다.

객기를 물리쳐야 바른 기운이 펼쳐진다.

정욕은 모두 망령된 마음에 속한다. 망령된 마음을 없앤 후에야 참된 마음이 나타난다.)

 

객기(客氣)는 객쩍게 부리는 혈기나 용기를 말한다. 바르고 공명한 기운을 뜻하는 정기(正氣)와 대비 된다.

객기를 물리쳐야 비로소 정기를 펼칠 수 있다고 주장한 이유다.

정욕(情欲)과 진심(眞心)을 대비시킨 것도 같은 맥락이다.

맹자를 사상적 스승으로 삼고 있는 성리학의 이기론(理氣論)과 취지를 같이 한다.

주희가 집대성한 ‘이기론’에서는 외물에 휘둘리는 인간의 욕정을 인욕(人欲)으로 간주하며

이를 적극 제거할 것을 주장했다. 이를 멸욕설(滅欲說)이라고 한다.

욕심을 억제하라고 주문한 것은 수긍할 수 있으나 아예 없애라고 한 것은 지나쳤다.

선가(禪家)의 논리를 추종한 결과다.

 

성리학자들은 비록 겉으로는 이기론을 동원해 불가의 연기설(緣起說) 등을 공격했지만 사실 그 내막을 보면

‘멸욕설’이 보여주듯이 선가의 주장과 거의 닮았다.

‘선가’는 석가모니의 설법에 충실한 ‘소승불교’가 중국으로 건너와 ‘대승불교’로 변한 것을 말한다.

일각에서 선가(禪家)를 두고 겉만 불가의 외피를 덮었을 뿐 그 내막을 보면 무위자연(無爲自然)을 주장한

장자사상(莊子思想)의 변형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사실 ‘멸욕설’을 관철할 경우 이는 일반 사람조차 선가의 고승처럼 ‘멸욕설’에 입각해 삶을 영위하라고

주문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국가 차원에서 보면 이는 패망의 길이다.

국가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강제성을 띤 법률과 자율에 방점을 찍은 예제 등을 통해 ‘인욕’을 일정 수준

통제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성리학자들은 ‘인욕’을 극도로 꺼린 나머지 아예 없애 버릴 것을 주장했다.

이는 쇠뿔을 고치려다 소를 죽이는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우를 범하는 짓이다.

객기와 정기, 정욕과 진심을 대비시킨 이 대목도 이런 차원에서 접근해야만 기본취지를 제대로 알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