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호지

★ 수호지(水湖誌) - 225~연속 226

고수# 2025. 2. 12. 10:21

★ 수호지(水湖誌) - 225

수호지 제99회-2

한편, 전표는 단인·진선·묘성과 함께 패잔병을 이끌고 마치 상갓집 개처럼, 그물에서 벗어난 물고기처럼 급히 위승으로 달려가 전호를 만나 군사를 잃고 땅을 빼앗긴 일을 울면서 호소하였다.

그때 또 가짜 추밀관원이 급히 달려와 아뢰었다.

“대왕마마! 이틀 동안 유성마가 달려와 보고하고 급한 일을 보고하는 공문이 눈발처럼 날리고 있습니다.
통군대장 마령은 이미 적에게 사로잡혔고, 관승과 호연작의 병마가 유사현을 포위하였으며, 노준의의 병마는 이미 개휴현의 성을 깨뜨렸다고 합니다.
오직 양원현의 우리 국구에게서만 누차 승첩을 전해 오고 있는데, 거기서는 송군이 감히 아군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한다고 합니다.”

전호는 보고를 받고 크게 놀라 어찌할 바를 몰랐다.
문무관원들은 의논하여 금나라에 투항하고자 하였다.
그러자 가짜 우승상 태사 변상이 관원들을 꾸짖어 물리치고 아뢰었다.

“송군이 비록 세 길로 쳐들어온다 하지만 우리 위승은 산이 겹겹이 둘러싸고 있으며, 양식도 2년을 버티기에 족합니다. 그리고 어림군 등 정병이 20여 만이고, 동쪽의 무향현과 서쪽의 심원현에 각각 정병 5만이 있습니다.
뒤편에 있는 태원현·기현·임현·대곡현 등도 성이 견고하고 식량이 풍족하여 싸워 지킬 만합니다. 옛말에 이르기를, ‘닭대가리가 될지언정 소꼬리는 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전호가 주저하며 대답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총관 섭청이 왔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전호가 즉시 불러들이자, 섭청이 들어와서 절하고 말했다.

“군주와 군마가 누차 적을 베고 사로잡아 아군의 위세를 크게 떨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 병마가 소덕부로 진격해서 포위하려고 했는데, 우리 국구가 감기에 걸려 병마를 지휘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대왕께서는 좋은 장수와 정병을 보내 주셔서, 군주와 군마가 소덕부를 회복하도록 돕게 해주십시오.”
그때 가짜 도독 범권이 아뢰었다.

“신이 듣건대, 군주와 군마는 매우 날래고 용맹하여 송군이 감히 똑바로 바라보지 못한다고 합니다. 대왕께서 친히 정벌에 나서시면서 또 웅병과 맹장으로 돕게 하시면 반드시 나라를 중흥하는 큰 공을 세울 수 있을 것입니다. 신은 태자를 도와 나라를 보살피겠습니다.”
전호는 범권의 청을 승낙하였다.

원래 범권의 딸은 경국지색(傾國之色)이었는데, 범권은 딸을 전호에게 바쳐 십분 총애를 받았다.
따라서 범권의 말을 전호는 따르지 않는 바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오늘 범권은 섭청으로부터 많은 뇌물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송군의 세력이 큰 것을 보고 기회를 봐서 나라를 팔아먹을 속셈이었던 것이다.

전호는 변상에게 장수 10명과 정병 3만을 주어 노준의와 화영의 병마를 대적하게 하고, 가짜 태위 방학도로 하여금 장수 10명과 정병 3만을 거느리고 유사현으로 가서 관승의 병마를 대적하도록 했다.

그리고 전호 자신은 가짜 상서 이천석·정지서, 추밀 설시·임흔, 도독 호영·당현 및 전수(殿帥), 어림호가교두(御林護駕教頭), 단련사, 지휘사, 장군, 교위 등과 정병 10만을 선발하여 가기로 하였다.

날을 택하여 군기(軍旗)에 제사지내고 군사를 일으키고, 소와 말을 잡아 삼군을 위로하였다.
그리고 다시 명을 내려, 아우 전표(田豹)와 전표(田彪)에게 도독 범권과 문무관원들과 함께 태자 전정을 보필하여 나라를 보살피라고 하였다.

섭청은 그런 소식을 듣고, 은밀히 심복을 양원성으로 보내 장청과 경영에게 알렸다.
장청은 해진과 해보에게 밧줄을 타고 몰래 성을 나가 송선봉에게 알리게 하였다.

한편, 변상은 병부를 받고 군마를 선발하는 데 사흘이 걸렸다.
번옥명·어득원·부상·고개·구침·관염·풍익·여진·길문병·안사륭 등의 편장과 아장 그리고 군마 3만을 거느리고 위승주 동문을 나갔다.

변상은 군대를 둘로 나누었는데, 전대인 번옥명·어득원·풍익·고개가 병마 5천을 거느리고 심원현의 면산이란 곳에 당도하였다.
산기슭의 큰 숲을 지나고 있는데, 갑자기 징소리가 크게 울리면서 숲속에서 한 떼의 군마가 나타났다.

송공명이 장청의 소식을 듣고, 은밀히 화영·동평·임충·사진·두흥·목홍으로 하여금 기병 5천을 이끌고 사람은 가벼운 갑옷을 입고 말은 방울을 떼고서 밤을 새워 이곳으로 달려가게 하였던 것이다.

송군 쪽에서 한 장수가 앞으로 나서는데, 양손에 두 자루의 강쟁(鋼鎗)을 들고 있었다.
이 장수는 바로 송군에서 언제나 첫째로 앞장서는 쌍쟁장 동평이었다.
동평이 큰소리로 외쳤다.

“거기 오는 것은 어디 병마냐? 빨리 포박을 받지 않고 다시 어느 때를 기다리느냐?”
번옥명이 욕을 했다.

“물웅덩이의 도적놈들아! 무슨 까닭으로 우리 땅을 침범하느냐?”
동평이 크게 노하여 소리쳤다.

“천병이 당도하였는데, 감히 항거하느냐!”
동평이 쌍쟁을 들고 말을 박차고 나가 번옥명에게 달려들었다.

번옥명도 쟁을 들고 달려 나와 대적하였다.
두 장수가 싸운 지 20여 합 만에, 번옥명은 힘이 달려 동평의 쟁을 막아내지 못하고 목을 찔려 말에서 거꾸로 떨어졌다.

그러자 풍익이 크게 노하여 혼철쟁을 들고 나는 듯이 말을 달려 동평에게 덤벼들었다.
그러자 송군 쪽에서는 소이광 화영이 달려 나가 풍익을 대적하였다.

두 장수가 10여 합을 싸웠을 때, 화영이 말을 돌려 본진으로 달아났다.
풍익이 말을 몰아 추격하자 화영이 쟁을 안장에 걸고 활을 들어 풍익이 가까이 다가오자 몸을 틀면서 화살을 날렸다.

화살은 풍익의 얼굴에 정통으로 꽂혔고, 풍익은 두 다리가 허공으로 뜨면서 말에서 떨어져 머리가 땅으로 곤두박질쳤다.
화영이 말을 돌려 달려가 쟁으로 풍익을 끝장내 버렸다.

그걸 본 동평·임충·사진·목홍·두흥이 병마를 휘몰아 일제히 돌격하였다.
고개는 임충의 쟁에 찔려 죽고, 어득원은 말에서 떨어져 말발굽에 밟혀 죽었다.

북군은 대패하여 5천 군마 가운데 태반이 죽고 나머지는 사방으로 흩어져 달아났다.
화영 등은 적군의 북과 말 등을 빼앗고 추격하였는데, 5리쯤 가다가 변상의 대군을 만났다.

원래 변상은 농부 출신이었는데, 두 팔에 물소 같은 기력을 가졌고 무예가 뛰어나 반군 중의 상장(上將)이었다.
양군이 깃발을 마주보며 대치하자 북소리가 일제히 울렸다.

변상이 진 앞으로 나와 말을 세웠다.
머리에는 황금투구를 쓰고, 몸에는 은빛 어린갑(魚鱗甲)을 입었는데, 키는 9척이었다.

세 갈래 수염이 나 있고, 얼굴은 네모지고 어깨는 넓었으며, 눈썹이 치솟고 눈은 둥글었다.
충파전마(衝波戰馬)를 타고 손에는 개산대부(開山大斧)를 들었다.

좌우에는 부상·관염·구침·여진 등 가짜 통제관 4명이 호위하고, 뒤에는 가짜 통군·제할·병마방어사·단련사 등이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대오를 이룬 군마는 질서정연하게 배열해 있었다.
송군 진에서는 구문룡 사진이 나와 큰소리로 외쳤다.

“거기 나온 놈은 누구냐? 빨리 말에서 내려 포박을 받아라! 도끼를 더럽히지 말고!”
변상이 껄껄껄 웃으며 말했다.

“병이나 항아리에도 두 귀가 있는데, 네놈은 아직 변상이란 이름을 듣지 못했느냐?”
사진이 소리쳤다.

“역적을 돕는 필부가 천병이 이르렀는데도 감히 항거하느냐!”
사진이 말을 박차고 삼첨양인팔환도(三尖兩刃八環刀)를 휘두르며 곧장 변상에게 달려들었다.

변상도 큰 도끼를 휘두르며 대적하였다.
두 말이 얽히고 두 병장기가 맞부딪혔다.

칼과 도끼가 종횡으로 움직이고 말발굽이 어지럽게 엇갈렸다.
싸움이 30여 합에 이르렀는데도 승부가 나지 않았다.

화영은 변상의 무예가 고강한 것을 보고 아끼는 마음이 들어, 활을 쏘지 않고 쟁을 들고 달려 나가 싸움을 도왔다.
변상은 두 장수를 맞아 싸웠는데, 또 30여 합을 싸웠지만 승부가 나지 않았다.

북군의 진에서는 변상이 실수할까 염려하여 급히 징을 울려 군사를 거두었다.
화영과 동평도 날이 이미 저물어가고 또 중과부적(衆寡不敵)이어서 추격하지 않고 역시 병력을 거두어 남쪽으로 물러났다.

양군은 10여 리 정도 떨어져서 각각 하채하였다.
그날 밤 남풍이 강하게 불고 짙은 구름이 새까맣게 깔리면서 한밤중이 되자 천둥 번개가 치면서 큰비가 쏟아졌다.

그때 전호는 많은 관원들과 장수들 그리고 대군을 거느리고 위승에서 백여 리 떨어진 곳에 영채를 세워 주둔하고 있었다.
전호는 장막 안에서 군대를 수행하는 내시와 첩들 그리고 범미인을 거느리고 연회를 즐기고 있었는데, 밤중에 큰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날부터 닷새 동안 장맛비가 그치지 않고 내렸다.
위로는 장막에 비가 새고, 아래로는 물이 차올랐다.

군사들은 불을 피워 밥을 짓기도 어려웠고, 활은 늘어지고 화살의 깃털은 빠져 나갔다.
각 영채의 군마들은 모두 영채를 지키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한편, 삭초·서녕·단정규·위정국·탕륭·당빈·경공 등의 장수들은 관승·호연작·문중용·최야 등의 육군과 수군두령 이준 등의 수군을 맞이하여 의논하였다.

단정규와 위정국은 남아서 노성을 지키고, 관승을 비롯한 나머지 장수들은 수륙으로 병진하여 유사현을 공격하여 깨뜨렸다.

그리고 다시 삭초와 탕륭이 그곳에 남아 성을 지키고, 관승을 비롯한 나머지 장수들은 승세를 타고 진격하였다.
파죽지세(破竹之勢)로 밀고 들어가 대곡현을 함락하였다.

성을 지키던 장수는 죽고 나머지 아장들과 군병들은 항복한 자가 무수하였다.
관승은 군사들과 백성을 안무하고, 장병들에게 상을 내리고 위로하였다.

그리고 사람을 송선봉에게 보내 승첩을 보고하였다.
다음 날 관승 등도 동시에 큰비를 만나 전진하지 못하고 성중에 머물렀다.
홀연 보고가 들어왔다.

“노선봉이 선찬·학사문·여방·곽성을 남겨 병마를 거느리고 분양부를 지키게 하고, 개휴현과 평요현을 깨뜨렸습니다.
또 다시 한도와 팽기를 남겨 개휴현을 지키게 하고, 공명과 공량을 남겨 평요현을 지키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노선봉은 여러 장수들과 군마를 거느리고 태원현으로 가서 성을 포위하였는데 큰비에 가로막혀 공격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때 마침 성중에 있던 수군두령 이준이 보고를 듣고 황망히 관승을 찾아와 말했다.

“노선봉이 지금 연일 내리는 큰비를 만나 물이 크게 불어 삼군이 주둔하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만약 이때 적군이 목숨을 걸고 성을 나와 공격하면 어찌하겠습니까?
저에게 계책이 하나 있어 노선봉께 가서 상의하고자 합니다.”

관승이 허락하자, 혼강룡 이준은 즉시 성을 나가 동위·동맹에게 수군의 배를 관장하게 하였다.

그런 다음 자신은 장횡·장순·삼완과 함께 수군 2천을 거느리고 삿갓을 쓰고 도롱이를 입고서 비바람을 뚫고 지름길로 노준의의 영채로 달려갔다.

이준은 영채로 들어가 몸을 덥힐 새도 없이 노준의를 만나 은밀히 계책을 얘기했다.
노준의는 크게 기뻐하며 즉시 군사들에게 명을 내려 비를 무릅쓰고 나무를 베어 뗏목을 만들게 하였다.

이준 등은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어디론가 떠나갔다.

한편, 태원성을 지키는 장수 장웅은 가짜 전수(殿帥)의 관직을 받았고, 항충과 서악은 가짜 도통제의 관직을 받았는데, 이 셋은 반군 중에서도 가장 악질들이었다.

그 수하 군졸들도 하나하나가 모두 흉악하고 포학하였다.
성중 백성들은 그 포학을 견디지 못하고 가산을 버리고 사방으로 도망쳐서, 열에 일고여덟은 떠나고 없었다.

하지만 장웅 등은 지금 대군에 포위당하고서도 성이 견고한 것만 믿고 항복하지 않고 있었다.
장웅은 항충·서악과 의논하였다.

“지금 큰비가 내리고 있어, 송군은 침략할 곳도 없다. 물이 차서 땔나무나 말 먹일 풀도 부족하여 군사들은 머물러 있고 싶은 마음도 없을 것이다.
이때 급히 나가서 공격하면 필시 전승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때는 4월 상순이었다.

장웅이 병력을 나누어 네 성문을 열고 나가 송군을 공격하려고 하는데, 홀연 사면에서 징소리가 울렸다.
장웅이 황망히 성루에 올라가 바라보니 송군이 비를 무릅쓰고 나막신을 신고서 높은 언덕을 올라가고 있었다.

장웅이 놀라며 의심하고 있는데, 또 지백거(智伯渠) 쪽과 동·서쪽 세 곳에서 함성이 천지를 진동하면서 마치 천군만마(千軍萬馬)가 미친 듯이 달려오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삽시간에 큰 물결과 노한 파도가 밀어닥치는데, 마치 가을 8월의 홍수가 밀려드는 듯하고 하늘에서 황하의 강물이 쏟아지는 듯하였다.

- 226회에 계속 -

 

★ 수호지(水湖誌) - 226

수호지 제100회-1

혼강룡 이준은 큰비가 쏟아진 후 수세가 넘쳐나는 것을 이용하여 장횡·장순·삼완과 함께 수군을 거느리고 가서 약정한 시각에 지백거(智伯渠)와 진수(晉水)의 물을 태원성으로 끌어넣었다.

순식간에 수세가 불어나 홍수가 되어 성안으로 쏟아져 들어갔다.
군졸들은 뗏목을 타고 쳐들어가고, 장수들은 배를 타고 나는 듯이 돌격하였다.

성중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귀신도 울부짖고 하늘도 캄캄해져 태양도 빛을 잃었다.

산이 흔들리고 무너져 내렸으며, 거센 파도소리가 격노하였다. 성벽은 허물어지고, 가옥들은 무너졌다.
깃발들은 파도에 휩쓸려가고, 병장기들도 떠내려갔다.

시체들이 물고기나 자라처럼 물결에 떠내려가고, 핏물이 파도처럼 용솟음쳤다.
순식간에 나무들은 뿌리째 뽑히고, 가옥의 기둥과 서까래들이 물에 떠내려갔다.

성중은 가마솥에 물이 끓어오르듯 하였다.
군사들과 백성들은 물이 돌진해 오는 것을 보고 모두 담장을 기어오르고 지붕으로 올라갔다.

나무에 올라가고 들보를 부여안았으며, 노약자와 뚱뚱한 자들은 다락으로 올라가고 탁자 위로 올라갔다.
눈 깜짝할 사이에 탁자와 의자는 물에 떠내려가고 집들이 기울어지고 무너졌다.

사람들은 모두 물속의 물고기나 자라 같은 신세가 되었다.
성 밖에서 이준·장횡·장순·삼완이 배를 타고 성으로 접근해 갔다.

물높이가 성벽 높이와 비슷해서 군사들은 성으로 올라가 성을 지키던 군졸들을 베어 넘겼다.
또 군사들이 뗏목을 타고 와서 성벽에 충돌하여 성벽이 기울어지고 무너져 내렸다.

장웅은 성루에서 소리를 지르며 군사들을 독려했지만 장횡과 장순이 성으로 올라가 박도를 들고 함성을 지르면서 성루로 달려가 연이어 10여 명의 군졸들을 베어 버렸다.

군졸들은 어지럽게 도망치기 시작했다.
장웅은 미처 피하지 못하고 장횡의 박도에 맞아 쓰러졌는데, 장순이 달려가 한칼에 목을 잘라 버렸다.

물이 빠져나가고 보니 성중의 군사와 백성들 가운데 물에 빠져죽고 무너진 집에 깔려 죽은 자가 무수하였다.
집의 대들보와 기둥, 문짝과 창틀, 가구 등이 시체와 함께 떠밀려와 성 남쪽을 가득 메웠다.

성중에는 단지 피서궁(避暑宮)만 무사하였는데, 피서궁은 북제(北齊)의 신무제(神武帝)가 건립한 것이었는데 기초가 높고 견고하였다.

부근의 군사들과 백성들이 일제히 그 위로 올라가느라 서로 밀치면서 밟혀 죽은 자가 2천여 명이었다.
높은 언덕과 성벽 위에 올라가 살아남은 사람은 겨우 천여 명이었다.

성 밖의 백성들은 노준의가 은밀히 이장을 불러 주민들에게 알려주게 하여 징소리가 울리자 즉시 모두 높은 언덕 위로 올라갔다.

거기다 성 밖은 사방으로 넓게 틔어 있어서 수세가 빨리 물러갔기 때문에 성 밖의 백성들은 물에 빠져죽은 사람이 없었다.

혼강룡 이준은 수군을 이끌고 가서 서문을 점거하고, 선화아 장횡과 낭리백조 장순은 북문을 빼앗았다.
입지태세 완소이와 단명이랑 완소오는 동문을 점령하고, 활염라 완소칠은 남문을 빼앗았다.

네 성문에 모두 송군의 깃발에 세워졌다.
저녁이 되어 물이 완전히 빠져나가자 평지가 드러났다.

이준 등은 성문을 활짝 열고 노선봉의 군마를 성중으로 들어오게 하였다.
성중에는 닭 울음소리나 개 짖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고, 시체만 산처럼 쌓여 있었다.

비록 장웅 등의 악행이 넘쳐나기도 했지만 이준의 계책도 참혹하였다.
겨우 살아남은 천여 명이 사방의 진흙탕 속에서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며 목숨을 애걸하였다.
노준의가 점검해 보니 그들 중 군졸은 단지 10여 명이었고, 나머지는 모두 백성들이었다.

적장 항충과 서악은 원수부 뒤편에 있는 큰 노송나무 위에 기어 올라갔다가 물이 빠지자 내려왔는데, 송군에게 사로잡혀 노선봉 앞에 끌려 왔다.

노준의는 둘을 참수하여 효시하고, 현청의 창고에 있는 재물을 꺼내 성 안팎에서 수해를 입은 백성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사람을 보내 송선봉에게 승첩을 알리는 한편, 군사들에게 명하여 시체를 매장하고 무너진 성벽과 가옥들을 수리하여 백성들을 불러 다시 살게 하였다.

한편, 태원이 아직 깨뜨려지지 않았을 때, 전호는 비 때문에 10만 대군을 거느리고 동제산 남쪽에 주둔하고 있었는데 탐마가 달려와 보고하였다.

“우리 국구가 병으로 죽어 군주와 군마가 군사를 후퇴하여 양원으로 돌아와 국구의 장례를 치르고 있습니다.”
전호는 크게 놀라 사람을 양원성으로 보내 경영은 성을 지키고 전우는 영채로 와서 명을 들으라고 하였다.

그리고 전에 양원으로 보낸 사람들은 어째서 하나도 돌아와 보고하지 않는지 알아보게 하였다.
다음 날 비가 그쳤다.
아침에 유성마가 달려와 보고하였다.

“송강이 보낸 손안과 마령이 병력을 이끌고 싸우러 왔습니다.”
전호는 보고를 듣고 크게 노하여 말했다.

“손안과 마령은 모두 내게서 높은 관직과 후한 봉록을 받은 놈들인데, 이제 내게 반기를 들었으니 결코 용서할 수 없다. 과인이 친히 가서 그놈들을 심문하고자 하니 경들은 노력하시오.
그 두 놈을 사로잡는 자에게는 천금(千金)의 상을 내리고 만호후(萬戶侯)에 봉하겠노라,”
전호는 친히 병력을 몰고 나아가 송군과 대치하였다.

북군이 송군의 깃발을 보니 병울지 손립과 철적선 마린이었다.
북군의 진 앞에는 창칼과 도끼 등의 병장기들이 나열되어 있고, 깃발들이 나부끼고 있었다.

비룡이 새겨진 누런 양산 아래 옥고삐와 황금안장을 씌운 은빛 백마를 탄 초두대왕(草頭大王) 전호가 진 앞에 나와 친히 싸움을 감독하였다.

남군 진영의 뒤에는 송강이 오용·손신·고대수·왕영·호삼랑·손립·주동·연순과 병마를 거느리고 당도하여, 송강이 친히 싸움을 감독하였다.

전호는 송강이 나왔다는 말을 듣고 막 장수를 내보내 송강을 사로잡으려고 했는데, 탐마가 달려와 보고했다.

“관승 등은 유사현과 대곡현의 두 성을 연이어 깨뜨렸고, 서쪽 방면에서는 노준의의 군마가 평요현과 개휴현을 깨뜨리고 태원성에 물을 끌어들여 성중의 장병들은 하나도 살아남지 못했습니다.
우승상 변상은 면산에 영채를 세우고, 화영 등과 대치하고 있었는데, 노준의가 태원으로부터 병력을 이끌고 와서 후면을 공격하였습니다.
변승상은 양면으로 협공을 당하여 대패하고 노준의에게 사로잡혔습니다. 노준의는 관승과 병력을 합쳐 심원현을 철통같이 포위하고 있습니다.”
전호는 보고를 듣고 크게 놀라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황망히 군사를 거두어 위승성으로 물러나 지키라는 명을 내렸다.

그리하여 이천석 등은 진에 남아 송군을 막고, 설시·임흔·호영·당창은 전호를 보호하면서 먼저 떠났다.
그때 동제산 북쪽에서 포성이 울리더니 송군이 튀어나왔다.

송강이 은밀히 노지심·유당·포욱·항충·이곤으로 하여금 용맹한 보병을 이끌고 동제산 북쪽으로 빠져나가 두 길로 나누어 공격하게 한 것이었다.

전호는 급히 어림군마를 내보내 싸우게 하였다.
그때 갑자기 마령과 손안이 병력을 이끌고 동쪽 산기슭에서 쏟아져 내려왔다.

마령은 풍화륜을 밟고 나는 듯이 달리면서 금전을 던져 북군을 난타했고, 손안은 쌍검을 휘둘러 마구 베어 나갔다.
두 장수가 북군의 진으로 돌입하여 마치 무인지경(無人之境)에 들어온 듯 기세를 올리자 북군은 두 토막이 나고 말았다.

북군은 비록 10만이 넘었지만 오용이 계획한 세 갈래 병마가 종횡으로 휘저으면서 마구 공격하자 대패하고 말았다.
별똥별이 떨어지듯 구름이 흩어지듯 사방으로 흩어져 달아나기에 급급하였다.

가짜 상서 이천석 등은 전호를 보호하면서 동쪽으로 달아났는데, 표창·방패·비도 등을 든 보병을 이끌고 전면에서 혈로를 뚫으면서 쳐들어오고 있는 노지심 등을 만났다.

이천석·정지서·설시·임흔 등의 군마는 흩어져서 서쪽으로 달아났다.

전호 수하에는 비록 가장 용맹한 자들로 구성된 어림군마가 있었지만 그들도 지금까지 오합지졸 관군과 싸웠을 뿐 양산박처럼 흉맹한 군대와 싸워본 적이 없었다.

그러니 오늘 어떻게 당할 수 있겠는가!
당시 전호의 좌우에는 단지 도독 호영과 당창, 총관 섭청 및 금오교위(金吾較尉)만 남아 있었다.

그들은 패잔병 5천을 이끌고 전호를 보호하면서 달아나고 있었다.
위급한 순간에 홀연 또 한 떼의 군마가 동쪽에서 돌진해 왔다.
전호는 그걸 보고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며 말했다.

“하늘이 나를 버렸구나!”
북군이 달려오고 있는 군마를 자세히 보았더니 앞장선 사람은 준수하고 젊은 장수였다.

머리에는 파란 두건을 쓰고, 몸에는 푸른 전포를 입고 있었다.
손에는 이화쟁(梨花鎗)을 쥐고 눈처럼 하얀 말을 타고 있었는데, 깃발에는 분명하게 ‘중흥 평남선봉 군마 전우’라고 쓰여 있었다.

전호를 바짝 따르고 있던 섭청이 깃발을 보고 전호에게 아뢰었다.
전호는 군마에게 빨리 와서 어가를 구하라는 명을 내렸다.
전우가 전호 앞으로 와서 말에서 내려 무릎을 꿇고 아뢰었다.

“신이 대왕께 아룁니다. 갑옷을 입고 있어 땅에 엎드릴 수 없으니, 신의 죄가 만 번 죽어 마땅합니다.”
전호가 말했다.

“그대는 죄가 없다”
전우가 다시 아뢰었다.

“일이 위급하니 대왕께서는 양원성으로 가셔서 잠시 적의 예봉을 피하십시오. 신이 군주와 함께 송군을 물리친 다음 대왕을 위승의 궁궐로 모시겠습니다. 그때 좋은 계책을 의논하셔서 기업을 회복하십시오.”
전호는 크게 기뻐하면서 명을 내려 즉시 양원을 향해 출발했다.

전우는 뒤에서 추격해 오는 송군을 막았다.
전호 등이 양원성 아래에 당도하자 배후에서 추격해 오는 송군의 함성이 천지를 진동했다.

양원성을 지키는 장병들이 그걸 보고 황망히 성문을 열고 조교를 내렸다.

호영은 앞에서 병력을 이끌고 있었는데, 뒤에서 송군이 추격해 오는 함성을 들은 군사들이 대왕을 돌아볼 겨를도 없이 한꺼번에 성 안으로 들어가려고 난리를 쳤다.

호영이 겨우 성문 안으로 들어서자 갑자기 딱따기 소리가 울리면서 양쪽에서 복병이 일제히 튀어나왔다.
그들은 호영과 군사 3천여 명을 모두 함정으로 몰아넣고 장창으로 마구 찔렀다.

가련하게도 3천여 명은 한 명도 살아남지 못했다.
성중에서 큰소리가 났다.

“전호를 사로잡아라!”
전호는 성중에 변고가 일어난 것을 보고 비로소 계략임을 깨닫고 급히 말을 돌려 북쪽을 향해 달아났다.

장청과 섭청이 말을 박차고 추격하였다.
하지만 전호의 말이 너무 빨라 장청과 섭청은 전호를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이미 화살이 날아갈 거리를 벗어나고 있었는데, 그때 전호가 탄 말 앞에서 홀연 한 줄기 회오리바람이 일어났다.
그리고 그 바람 속에서 한 여인이 나타나 소리쳤다.

“간적 전호야! 우리 구씨 부부는 모두 너에게 살해되었다. 오늘 너는 어디로 도망치려는 것이냐?”
그 여인의 주변에서 또 한 줄기 음산한 바람이 일어나더니 전호를 향해 덮쳐왔다.

그 순간여인은 사라져 버렸고, 전호는 말이 울부짖으며 날뛰는 바람에 땅에 떨어졌다.
그때 추격해 온 장청과 섭청이 말에서 뛰어내려 전호를 사로잡아 버렸다.

그때 적장 당창이 군사들을 이끌고 전호를 구하기 위해 쟁을 들고 말을 몰아 달려왔다.
장청은 당창이 달려오는 것을 보고 재빨리 말에 올라 돌을 날렸다.

당창은 얼굴에 정통으로 돌을 맞고 말에서 굴러 떨어졌다.
장청이 큰소리로 외쳤다.

“나는 전우가 아니라, 조정에서 보낸 송선봉의 부하 몰우전 장청이다!”
그때 이규과 무송이 5백 보병을 이끌고 성중에서 달려 나왔다.

두 사람이 큰소리를 지르면서 돌격하자 북군의 전수장군과 금오교위 등 2천여 명은 별똥별이 떨어지듯 구름이 흩어지듯 사방으로 도망치기 바빴다.

장청은 당창을 쟁으로 찔러 죽이고, 전호를 포박하여 성중으로 끌고 들어가 성문을 닫았다.
송선봉이 북군을 완전히 물리친 뒤에 송선봉에게 끌고 갈 생각이었다.

노지심이 그곳까지 추격해 왔다가 전호가 이미 사로잡혀 성중으로 끌려들어간 것을 보고 방향을 다시 서쪽으로 돌려 동제산 쪽으로 달려갔다.

이때는 이미 저녁이 되었다.
송강 등 세 갈래의 군마는 하루 종일 싸웠는데, 죽인 북군 군사가 2만여 명이었다.

북군은 주군을 잃어 사면팔방으로 흩어져 도망쳤다.
범미인과 전호의 애첩들도 모두 난군 속에서 피살되었다.

이천석·정지서·설시·임흔은 3만여 명을 거느리고 동제산 위에 머물러 있었다.
송강은 병력을 거느리고 가서 사면에서 포위하였다.

그때 노지심이 달려와서 전호가 이미 장청에게 사로잡혔음을 보고하였다.
송강은 손으로 이마를 치고서 황망히 군사를 양원성으로 보내 명을 전하였다.

무송 등은 성문을 굳게 닫고서 전호를 잘 지키고, 장청은 병력을 이끌고 속히 위승으로 가서 경영 등을 접응하라고 하였다.

- 227회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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