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호지

★ 수호지(水湖誌) - 143

고수# 2024. 12. 31. 21:22

★ 수호지(水湖誌) - 143

수호지 제61회-1

오용이 말했다

“제가 북경에 가서 세 치 혀를 놀려 노준의를 산으로 불러오는 것은 마치 주머니 속의 물건을 취하는 것처럼 쉬운 일입니다. 하지만 거칠고 대담한 자와 함께 가야 합니다.”
말이 미처 끝나기 전에 흑선풍 이규가 큰소리로 외쳤다.

“군사형님! 아우가 같이 가겠습니다!”
송강이 소리쳤다.

“넌 가만히 있어! 방화, 살인, 민가 약탈, 관아 습격 등에는 네가 적합하지만, 이렇게 정탐하는 일에는 너 같은 성질은 맞지 않아! 넌 가면 안 돼!”
이규가 말했다.

“형님들은 내가 못 생겼다고 싫어하는 거잖아! 그래서 날 못 가게 하는 거지.”
송강이 말했다.

“널 싫어하는 게 아니야. 북경에는 관원들이 엄청 많은데, 혹시라도 널 알아보는 사람이 있으면, 넌 끝장이야.”
이규가 소리쳤다.

“상관없소! 그래도 난 갈 거야!”
오용이 말했다.

“아우가 세 가지 조건을 따른다면, 데리고 가지. 만약 따르지 않겠다면 산채에 앉아 있고.”
이규가 말했다.

“세 가지가 아니라, 30가지라도 따르겠소!”
오용이 말했다.

“첫째, 자네는 술버릇이 지랄 같으니 오늘부터 술을 끊을 것. 돌아오면 다시 마시게. 둘째, 도중에 도사의 심부름꾼인 도동(道童)으로 분장하고 나를 수행해야 하는데, 내가 시키는 것은 절대 어기지 말 것.
셋째가 제일 어려운 건데, 내일부터 나를 따라다니면서 절대로 말을 하지 말 것. 즉 벙어리가 돼야 해. 이 세 가지 조건을 따른다면, 자네를 데리고 가겠네.”
이규가 말했다.

“술 마시지 않고 도동으로 분장하는 것은 할 수 있는데, 이 주둥아리를 닥치고 말을 하지 말라는 것은 날 숨 막히게 해서 죽일 작정이오!”
오용이 말했다.

“자네가 입을 열면 꼭 사건을 일으키니까 그렇지.”
이규가 말했다.

“좋아! 그러면 내가 입에 동전 한 닢을 물고 다니지 뭐!”
송강이 말했다.

“아우! 네가 가겠다고 끝내 고집부린 거니까, 만약 잘못 되더라도 날 원망하지 마라.”

이규가 말했다.

“괜찮아요! 괜찮아! 난 이 쌍도끼만 가져가면 잠깐 사이에 그 새대가리 같은 놈들 천 명도 박살낼 수 있어!”
여러 두령들이 모두 웃었다.

누가 이규를 말릴 수 있겠는가! 그날 충의당에서 송별연을 열어 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밤이 되어 각자 휴식을 취했다.
다음 날 아침 오용은 행장을 수습하고 이규는 도동으로 분장하여 보따리를 지고 산을 내려갔다.

송강과 여러 두령들이 금사탄까지 내려와 전송하면서 오용에게 조심하라고 부탁하고 이규에게는 실수하지 말라고 당부하였다.
오용과 이규는 북경을 향해 가는 4~5일 동안 매일 저녁 객점에 투숙하여 쉬고 아침에 일어나 밥을 지어 먹고 걸어갔다.

도중에 오용은 이규 때문에 괴로운 일을 겪기도 했다.
며칠을 걸어 북경성 밖 객점에 투숙하여 쉬었는데, 그날 저녁 이규가 부엌에서 밥을 짓다가 점원을 주먹으로 때려 피를 토하게 했다.
점원이 방으로 달려와 오용에게 하소연했다.

“손님의 벙어리 도동이 너무 사납습니다. 소인이 불을 좀 늦게 피웠다고 피를 토하도록 때렸습니다.”
오용은 황망히 사과하고 돈 10여 관을 주어 달랬다.

이규가 미웠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룻밤을 자고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 밥을 지어 먹고 나서, 오용이 이규에게 당부했다.

“네놈이 죽기 살기로 따라오겠다고 해서 데리고 왔는데, 내가 너 때문에 죽겠다! 오늘 성에 들어갈 건데, 거기는 장난칠 곳이 아니다. 제발 너 때문에 내가 죽지 않도록 해 다오!”
이규가 말했다

“내가 감히 그러겠소?”
“나랑 너랑 암호를 정하자. 만약 내가 머리를 흔들면 너는 절대로 움직여서는 안 된다!”

“알았소! 그리 하지요.”
두 사람은 객점에서 복장을 다시 꾸미고 성으로 들어갔다.

오용은 눈썹까지 가리는 검은 두건을 쓰고, 옷깃이 검은 흰 도복을 입었으며, 손에는 도사들이 들고 다니는 자루 달린 방울 영저(鈴杵)를 들었다.

이규는 더벅머리에 상투 두 개를 틀고 짧은 도포를 입었으며, 구부러진 막대기를 어깨에 멨는데 ‘운수점 보는데 1냥’이라고 쓴 종이 표지를 매달았다.

두 사람은 방문을 잠그고 객점을 나와 북경성 남문을 향해 걸어갔다.
이때는 천하 각처에 도적들이 일어난 때라 관아마다 군마들이 지키고 있었다.

특히 이 북경은 하북 제일의 성이고 또 양중서가 대군을 거느리고 있는 곳이기 때문에 더욱 질서가 엄정하였다.

오용과 이규가 느긋하게 걸어가서 성문 아래에 당도해 보니 성문을 지키는 4,50명의 군사들이 앉아 있는 관원 한 사람을 둘러싸고 서 있었다.
오용이 앞으로 나서 인사를 하자, 군사가 물었다.

“선비는 어디서 오시는 겁니까?”
오용이 대답했다.

“소생은 장용이라 하고, 이 도동은 이가입니다. 강호에서 점을 쳐서 먹고 사는데, 이번에 큰 도시에서 운수점을 봐 드리려고 왔습니다.”
오용은 가짜 문서를 꺼내 보여주었다.
군사들이 말했다.

“이 도동은 눈초리가 사나운 것이 꼭 도적놈이 사람을 노려보는 것 같네!”
이규가 그 말을 듣고 성질이 폭발하려는 찰나 오용이 황망히 머리를 흔들자 이규는 고개는 숙이고 말았다.
오용이 성문을 지키는 군사에게 다가가 사과하며 말했다.

“소생이 다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이 도동은 귀머거리에 벙어리인데 기운만 셉니다. 저희 집안 아이인데 어찌할 수가 없어 데리고 다닙니다. 사람의 도리를 잘 모르는 놈이니 용서해 주십시오.”
오용은 군사에게 사과하고 성문을 통과했다.

이규는 다리를 높이 치켜들고 걸으면서 오용의 뒤를 따라 시내를 향해 갔다.
오용은 손에 든 영저를 흔들면서 입으로 구호를 읊었다.

감라(甘羅)는 어린 나이에 재상이 되었지만 강태공(姜太公)은 늙어서 출세했네.
팽조(彭祖)는 장수했으나 안회(顏回)는 요절했네.
범단(范丹)은 빈궁하였으나 석숭(石崇)은 부유했네.
사람의 팔자는 나면서부터 정해져 있는 것이라네.

오용이 또 말했다.

“이것이 시(時)이고 운(運)이고 명(命)이니, 생사귀천(生死貴賤)을 알고 앞날을 알고 싶으면 은자 한 냥을 내시오!”
말을 마치자 영저를 흔들었다.
북경성 안의 아이들 약 5,60명이 뒤를 따라오며 웃어댔다.

노원외의 전당포 문 앞에 당도하여 노래하고 웃으면서 지나갔다가 다시 돌아오는데, 아이들이 시끄럽게 떠들어댔다.
마침 노원외가 전당포에서 업무를 보고 있다가 거리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자 일꾼을 불러 물었다.

“거리가 왜 이렇게 시끄러우냐?”
“원외님! 정말 웃기는 일입니다! 길거리에 타지에서 온 점쟁이가 하나 있는데, 운수를 봐 주는데 은자 한 냥이랍니다. 누가 그런 비싼 돈을 내고 점을 보겠습니까?
그리고 도동이 하나 따라다니는데, 생김새가 우악스럽고 걸음걸이도 이상해서 아이들이 따라다니며 웃고 있습니다.”
“그렇게 큰 소리 치는 걸 보니, 필시 박학다식한가 보다. 가서 그 사람을 불러오너라.”
일꾼이 나가서 소리쳤다.

“선생! 원외님께서 보자 하십니다!”
오용이 말했다.

“누가 나를 부릅니까?”
“노원외님께서 부르십니다.”
오용은 도동과 함께 전당포 안으로 들어가 이규는 의자에 앉아 기다리게 하고 노원외에게 다가가 인사했다.
노준의도 몸을 숙여 답례하고 물었다.

“선생은 고향이 어디시고, 존함은 어떻게 되십니까?”
오용이 대답했다.

“소생의 이름은 장용(張用)이고, 호는 천담(天口 ; 吳를 나눈 글자)이라 합니다. 고향은 산동인데 주역의 괘로써 운수를 점치고 사람의 생사귀천을 알 수 있습니다. 은자 한 냥만 내시면 운수를 점쳐 드리겠습니다.”
노준의는 오용을 후당의 작은 방으로 안내하여 주객이 자리를 나누어 앉았다.

차를 한 잔 마신 다음, 노준의는 일꾼을 불러 은자 한 냥을 가져오게 하였다.
노준의가 복채를 내면서 말했다.

“내 운수가 어떤지 좀 봐 주십시오.”
“생년월일시를 말씀해 주시지요.”
“군자는 재앙은 물어도 복은 묻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권세나 재물은 말씀하실 필요가 없고, 다만 앞으로의 진퇴가 어떠한지만 알고 싶습니다.
금년에 32세이고, 갑자년 을축월 병인일 정묘시에 태어났습니다.”
오용은 산가지를 꺼내 탁자 위에 늘어놓았다.
그 가운데 하나를 뽑아 들었다가 탁자 위에 내리치며 큰 소리로 외쳤다.

“괴이하도다!”
노준의는 깜짝 놀라 물었다.

“길흉이 어떠합니까?”
“원외께서 기분 나빠 하지 않으시면, 사실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길을 잃은 사람에게 길을 가리켜 준다고 생각하시고 말씀해 주십시오.”
“원외님의 운명은 지금 백일 이내에 반드시 피를 보는 재앙이 있을 겁니다. 재산이 있어도 막지 못하고, 칼날 아래에서 죽음을 맞이할 겁니다.”
노준의가 웃으며 말했다.

“선생이 틀렸습니다. 나는 북경에서 태어나 부호의 집안에서 자랐습니다. 조상들 가운데 법을 어긴 남자도 없고 친족들 중에 재가한 여자도 없습니다.
나는 모든 일에 신중하고, 이치에 맞지 않은 일은 하지 않았으며, 정당한 재물이 아니면 취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피를 보는 재앙이 있단 말입니까?”
오용은 안색이 변하면서 급히 받았던 은자를 돌려주고, 일어나 나가면서 탄식하며 말했다.

“세상 사람들은 원래 아첨하는 말만 듣고 싶어 하는구나! 그만두자! 그만둬! 평탄한 길을 분명히 가리켜 주는데도 충언을 악담으로 받아들이는구나. 소생은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노준의가 말했다.

“선생! 노여움을 가라앉히시오! 방금 한 말은 농담이었습니다. 가르침을 듣고 싶습니다.”
“소생은 사실대로 말씀드릴 터이니, 결코 기분 나쁘게 듣지 마십시오!”

“듣기만 할 테니, 숨기지 마십시오.”
“원외님은 귀하게 태어났고, 지금까지 줄곧 운이 좋았습니다. 하지만 금년에는 운세가 좋지 않아, 재앙을 만나 백일 이내에 몸과 머리가 다른 곳에 따로 놓일 겁니다. 이는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운명이라 피할 수가 없습니다.”
“피할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까?”
오용이 다시 산가지를 늘어놓고서 하나를 뽑아 보더니 노준의를 돌아보며 말했다.

“동남쪽으로 천리 밖으로 가면 비로소 이 재난을 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비록 놀라고 두려운 일이 있더라도 몸을 상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만약 이 재난을 면할 수만 있다면, 후하게 보답하겠습니다.”
“원외님의 운명에 맞는 괘를 노래로 불러 드릴 테니 벽에 써 두십시오. 차후에 들어맞게 되면 비로소 소생에게 영험이 있음을 아시게 될 겁니다.”
노준의는 필묵을 가져오게 하여 흰 벽에 오용이 부르는 대로 썼다.

蘆花叢裏一扁舟 : 갈대꽃 무성한 가운데 일엽편주
俊傑俄從此地遊 : 준걸이 문득 이곳에 와서 노니네.
義士若能知此理 : 의사가 이 이치를 알 수 있다면
反躬逃難可無憂 : 돌이켜 보고 재난을 피하여 근심이 없을 것이라.

※ 앞 글자 네 개를 연결하면, ‘盧俊義反’, 즉 ‘노준의가 반역한다.’는 말이 된다.

노준의가 쓰기를 마치자 오용은 산가지를 수습하여 인사하고 떠나려 했다.
노준의가 만류하며 말했다.

“잠시 앉았다가 오후에 가시지요.”
오용이 대답했다.

“원외님의 후의는 감사하지만 소생의 생업에 지장이 있으니 다른 날 다시 뵙겠습니다.”
오용이 만류를 뿌리치고 일어나자 노준의는 문 밖까지 나와 전송했다.

이규도 구부러진 막대기를 어깨에 메고 문 밖으로 나갔다.
오용은 노준의를 작별하고, 이규를 데리고 성 밖으로 나왔다.

객점으로 돌아가 숙박비를 지불하고 행장을 수습하였다.
이규는 점괘 패를 짊어졌다.
객점을 떠나면서 오용이 이규에게 말했다.

“큰일을 치렀다! 우리는 밤을 새워 산채로 돌아가 올가미를 만들고 함정을 설치하여 노준의를 영접해야지. 조만간에 그가 올 것이다!”

- 144회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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