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수#
2024. 11. 1. 10:49
김홍일장군기념사업회는 제44주기 김홍일 장군 추모식이 8일
오전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백범김구기념관에서 거행됐다고 밝혔다.
이날 추모식에는 남궁선 서울지방보훈청장,
이종찬 광복회장, 정형균 육군사관학교장 등 정부 및 보훈
그리고 군 관련 인사와 일반시민 약 1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다.
일서(逸曙) 김홍일 장군(1898.09.23.~1980.08.08)은 평안북도
용천군 출생으로 정주 오산학교를 수석 졸업한 뒤 1918년 9월 황해도 경신학교
교사로 재직 중 일제의 탄압을 피해 상해로 망명 후 독립운동을 펼쳤다.
1926년 10월 중국 국민혁명군에 입대하여 북벌전쟁, 중일전쟁 등에
참전했고 특히 1931년 상하이 병공창의 병기창 주임 근무 시 대한민국임시정부
김구 주석을 도와 한인애국단 이봉창 의사의 동경 일왕 폭탄 투척 의거
(1932.01.08)와 윤봉길 의사의 상하이 의거(1932.04.29) 등에 폭탄을
제공하며 침체기를 겪던 독립운동에 활기를 불어넣는데 크게 기여했다.
1945년 김구 주석의 권유로 한국광복군 사령부 참모장에 부임하여
한·미 연합 국내 상륙작전을 준비했고 광복 후 대한민국 국군 창설에 참여했으며
창군 최초 장군으로 임관 후 육군사관학교장, 육군참모학교장 등을 역임했다.
이후 한국전쟁 발발 시 시흥지구 전투사령관으로서 6일간의 한강방어선
전투를 통해 북한군의 남하를 저지하며 미군이 참전할 수 있는 시간 확보에
막대한 공을 세웠고, 육군 제1군단장으로는 낙동강 방어선을 사수하여 국군의
반격작전을 개시하는 기틀을 마련하는 등 대한민국 수호에 앞장서 큰 전공을 세웠다.
1951년 중장 예편 후 주중화민국 대사, 외무부장관, 재향군인회장, 국회의원,
광복회장 등을 역임하며 대한민국 근현대사에서 수많은 업적을 남긴
김홍일 장군은 1980년 8월 8일, 향년 83세의 일기로 서거했다.
정부는 김홍일 장군의 공로를 인정하여 1951년 태극무공훈장,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했고 1998년 8월 이달의
독립운동가, 2015년 1월 이달의 전쟁영웅으로 선정했다.
출처 - 동아일보 황소영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