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호지

수호지13 편

고수# 2024. 7. 18. 19:45


★ 수호지(水湖誌) - 13

제2장 62 근짜리 지팡이를 가진 스님

제7편 불타는 와관사

그날 노지심은 절벽 아래로 굴러 산길을 오십 리나 걸었다.
가도 가도 첩첩산중이어서 집이라고는 구경할 수도 없었다.

아침도 못 먹은 노지심은 배가 고파 견딜 수가 없었다.
그때 마침 소나무 숲속에 절이 나타났다.

그는 즉시 산문에 들어섰다.
절간 문전을 아무리 둘러보아도 도무지 인기척이 없었다.

괴이하게 여겨 절간 뒤로 돌아가니 주방 옆 한 칸 방에 뼈와 가죽만 남은 늙은 중 너덧 명이 얼이 빠져 앉아 있었다.

“나는 오대산에서 온 중인데, 밥 좀 한 끼 신세집시다.”
“우리도 사흘째 굶고 있소.”
“이렇게 큰 절에 쌀 한 톨이 없다니 말이나 되오?”
그러나 늙은 중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사정이 있었다.

와관사(瓦官寺)라는 이 절은 본래 유복한 절이었으나 얼마 전에 최도성(崔道成)이라는 가짜 중과 구소을(丘小乙)이라는 가짜 도인이 주지와 모든 중들을 몰아내 버렸다.

그 후부터 와관사는 갑자기 퇴락해져 지금은 늙은 중들만 남아서 굶주리고 있었다.
노지심은 그 말을 듣고 크게 노했다.

“그놈들은 지금 어디 있소?”
바로 그때 한 도인이 콧노래를 부르며 채롱에 술병과 고기를 담아 어깨에 메고 방장 뒤로 돌아가는 것이 보였다.

그자가 바로 구소을이었다.
노지심은 선장을 들고 뒤를 밟았다.

뒤뜰 탁자에는 살이 피둥피둥 찐 중놈이 젊은 계집을 끼고 앉아 구소을이라는 놈이 가져온 술과 안주로 막 술자리를 벌이려는 참이었다.

“이 고얀 놈들!”
노지심이 벽력같이 소리를 지르고 나섰다.

그러나 최도성과 구소을은 귀신이 다 된 놈들이었다.
두 놈은 도리어 늙은 중들에게 죄를 뒤집어 씌웠다.

“이 절의 중놈들은 술과 계집질로 그 많던 전답을 모두 팔아먹고, 명성이 높은 이 절을 이 꼴로 만들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소승은 저 도인과 함께 여기 들어와서 이제 산문을 다시 세우려던 중이었습니다.
이 여자로 말씀드리면 지아비가 오랫동안 병들어 제게 쌀을 꾸러 왔기에 지금 술을 좀 얻어다 접대하려는 것이지 다른 뜻은 없습니다.”
본래 속이 남달리 곧은 노지심은 그 말을 듣고 늙은 중놈들에게 속았다는 생각이 들어 다시 늙은 중들이 있는 곳으로 갔다.

“원, 딱하기도 하십니다. 놈들이 맨손으로 사형을 당해 낼 수가 없으니 그 따위 수작을 늘어놓은 것을 왜 모르십니까?
저희들이 이렇게 며칠씩 굶고 있는데, 그놈들은 술과 고기로 노닥거리는 것만 봐도 잘 아는 일 아닙니까?”
그 말을 들은 노지심은 더욱 화가 나서 다시 선장을 고쳐 잡고 뒤뜰로 달려갔다.

그러나 두 놈들은 그 사이에 싸울 태세를 갖추고 있다가 앞뒤에서 칼을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두 사람은 적수가 아니었지만 노지심은 아침부터 굶은 데다 오십 리 산길을 걸어 온 터라 그들을 당해내기가 힘들었다.

마침내 노지심은 그대로 등을 돌려 달아났다.
그가 숲에서 가쁜 숨을 돌리다가 생각하니 바랑을 절에 두고 나온 것을 알았다.

그렇다고 다시 찾으러 갈 수도 없는 일이었다.
돈은 땡전 한 푼도 없었다.
그때 나무 그늘에서 한 사내가 노지심을 잠깐 살피는듯하더니 숨는 기색이 보였다.

‘기왕 이렇게 된 바에야 저놈을 털어 술값이나 좀 마련해야겠다.’
노지심은 그렇게 마음을 먹고 그 자리에서 외쳤다.

“이 도둑놈아, 숨지 말고 나오너라.”
그러자 사내는 숲속에서 크게 웃으며 칼을 들고 나왔다.

“이놈, 중놈아! 네 목소리가 귀에 익은데, 너는 누구냐?”
“나는 노충경락 상공에 있던 노달이지만 지금은 출가하여 노지심이라는 스님이시다.”
그 말에 사내는 칼을 버리고 넙죽 절했다.

“형님, 저 사진입니다.”
노지심은 깜짝 놀랐다.
자세히 보니 역시 사진이었다.

사진 역시 이충처럼 정처 없이 각처로 떠돌다가 돈이 떨어져 숲속에 몸을 숨기고, 지나가는 행인을 노리고 있었던 것이다.

- 14회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