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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훈아 얼굴에 흉터가 진 이유

고수# 2024. 5. 6. 0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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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가요계의 씹상남자 나훈아

1968년에 데뷔하여 올해 은퇴를 발표한 원로가수이지만

여전히 콘서트에서 날아다니는 모습을 보여주는 알파메일이다

그러나 나훈아의 얼굴을 자세히 보면 뭔가 이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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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왼쪽 뺨에는 길쭉한 흉터가 나 있다.

요즘은 계속된 치료로 인해 별로 안 보이지만

십년쯤 전 사진만 봐도 흉터가 매우 잘 보인다







사실 나훈아는 죽을 뻔 한 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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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1971년

나훈아는 신곡 "찻집의 고독"을 8집에 수록하여 발표한다.

원래 60년대에 작곡가 박정웅에 의해 만들어졌던 이 곡은

다른 가수들이 몇 번 발표했었으나 그다지 큰 인기를 얻지 못하고 묻혀버렸다.

그러나 박정웅은 포기하지 않고 당시 인기 가수였던 나훈아에게 부르게 시켰는데

앨범 출시 후에도 그다지 큰 인기가 없어서 박정웅은 매우 실망하게 된다.

그러나 이 곡이 라디오를 타고 전국에 퍼지면서 애절한 나훈아의 목소리와 감미로운 반주에 매료된 사람들이 앨범을 찾기 시작했고

앨범 제작사였던 오아시스레코드는 예상치 못한 폭발적인 인기에 부랴부랴 앨범을 재생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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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훈아는 신곡 찻집의 고독으로 인하여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게 되었고

그가 나가는 공연장마다 이 노래의 반주가 나올 때면 사람들은 열광하였다.

그러던 중

1972년 6월 4일,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을 하고 있던 나훈아는

앵콜 곡으로 "찻집의 고독"을 부르고 있던 중

어떤 사람이 무대 위로 올라오는 것을 보게 된다.

강한 무대 조명에 앞이 안 보였기에, 팬인 줄 알고 악수하려 손을 뻗던 순간




나훈아는 괴한이 든 깨진 사이다병에 얼굴을 직격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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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신문에 헤드라인으로 대문짝만하게 나온 나훈아의 붕대를 감은 모습은 전국을 충격에 빠트렸다.

당시 피습당한 나훈아는 정신을 차리고 저항하였지만

무대 위에는 아무도 없었고 관객들과 관계자들도 단순한 단막극 정도로 생각했었기에

나훈아는 사이다병을 든 괴한과 8분 동안 난투극을 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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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들은 울분을 터트렸고 당시 관계자는 강찬 질책을 받고 해고되었다.

천만다행으로 신경 손상은 없었지만

뺨 살이 잘려서 덜렁거릴 정도로 크게 다쳐

72바늘이나 꿰맨 나훈아의 얼굴은 더 이상 예전과 같을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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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훈아는 이 사건 이후로 "찻집의 고독"을 매우 싫어했고

생각만 해도 몸서리가 쳐진다며 공연과 방송에서 거의 금지곡으로 취급했다.







그러나 1994년 공연에서는 매우 재치 있는 방식으로 이 노래를 불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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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오늘은 특별히 할라 카기는 할라 카는데예...

제가 생각해보면 옛날에 만약에 저 혼자 노래를 안 하고

한 두셋이서 같이 노래를 했다면은

아마 이런 일이 없었을 거고

아니면은 왜 요즘 얘기 흔히 많이 하죠.

보디가드를 갖다가 양쪽에 세워놓고 노래를 했었으면은

이런 일이 없었을것이다.

그래서 오늘은 하긴 하겠습니다만은

옆에 꼭 세워놔놓고...

내 또 그 생각이 나서 안 될 것 같으니깐

세워놓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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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한 친구 두 명을 보디가드로 세워놓고 노래를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