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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히 알아보는 소련 - 아프가니스탄 전쟁 전개 과정
고수#
2023. 11. 9. 20:59

1. 1979년 12월 24일, 소련군 1진이 아프간
침공을 개시. 단 3일만에 약 5만명의 소련군이
아프간에 진격했고, 이들은 수도 카불을 향해 진격한다.

2. 12월 27일, 스페츠나츠 특공대가 카불 대통령궁을
공격하여 하피줄라 아민 대통령을 살해하고,
꼭두각시 대통령으로 바브라크 카밀을 앉힌다 한편
이듬해엔 8만명으로 늘어난 소련군이
아프간 주요 도시들을 장악하고 있었다.

3. 하지만 아프간 전국의 이슬람 학자 '물라' 수천명이
소련에 대한 저항, 즉 '지하드' 를 선포했고, 이는
소련군 내의 무슬림 병사들에게도 영향을 끼쳐 군 내의
사기가 저하되고 반란 움직임도 보이자 결국
1980년 3월을 기해 소련군은 무슬림 병사들을 전부 철수한다.

미국이 지원한 스팅어 미사일을 들고 있는 소련 무자헤딘
4. 그리고 이와 동시에 소련을 몰아내기 위한 게릴라
'무자헤딘' 이 조직되어 소련군과의 전투에 돌입함.
무자헤딘은 3월에 동부 쿠나르주에서 소련군과
처음으로 큰 전투를 벌였고, 6월에는
팍티야주에서 소련군 1개 대대를 섬멸한다.
무자헤딘의 주요 웅거 지역은 현재에도 아프간
저항전선이 활동하고 있는 판지시르주였는데,
여기서 무자헤딘을 이끈 인물이 '판지시르의 사자'
인 아흐마드 샤 마수드이다.
5. 미국을 비롯한 반소국가들은 이 기회를 틈타
소련에 맞서는 무자헤딘을 대규모로 지원해주는
사이클론 작전(Operation Cyclone)을 발동,
무자헤딘에 대규모 무기지원을 해주기 시작한다.
초기에는 파키스탄을 통해 AK 소총, RPG 등을
지원해주는 선에서 그쳤지만 나중에는 지원 규모를
확대해 남미의 무기상에서 직접 동구권 무기를
구입해 건네주거나, 아예 미국제 맨패즈인
스팅어 미사일까지 지원해주었다.

6. 소련은 무자헤딘의 본거지인 판지시르를 계속
공격했으나 결과는 참담하게 끝났다.
1981년엔 2차례에 걸친 대규모 공세를 가했으나
실패로 끝났고, 이듬해에도 Mi-24 하인드 공격헬기
까지 동원하여 약 1만 5천명 규모의 공세를 실시했지만
역시 실패. 이 때 마수드가 이끄는
무자헤딘 병력은 고작 3천여명에 불과했다.
7. 결국 소련은 중과부적임을 느끼고 마수드와 1년 가
량의 정전협정을 체결하고 정비에 들어가려 했으나
무지헤딘 역시 파키스탄의 지원과 사우디를 통해
입국한 이슬람 전사들의 증원으로 전력이 강해졌고,
1984년 4월 1일에 무자헤딘의 재공격으로 전쟁이 재개된다.
8. 소련군 역시 칼을 갈아와서 판지시르에 대한 공세를
걸어 성공 직전에 이르렀지만 무자헤딘도 총단결한지라
아깝게 실패한다. 이 때부터 본격적으로 스팅어 미사일도
지원되어 하인드 헬기들이 속속 격추당했고, 대전차미
사일도 지원되어 소련군 전차들도 게릴라 전술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기 시작한다.

9. 1985년에 집권한 고르바초프는 본격적으로 아프간
출구전략을 제시했지만 여전히 전투는 격렬했음.
1986년에는 소련군이 무자헤딘의 거점인 지하터널을
공격하여 약 1천여명의 무자헤딘을 사살했으며,
무자헤딘 역시 스팅어 미사일로 소련군의 주요 비행장인
잘랄라바드 공항을 기습하여 착륙하려던 수 대의
헬기를 한꺼번에 격추시킨다.
10. 1987년까지 약 270대의 소련군 항공기(헬기 포함)
가 스팅어에 당하고, 병력 손실도 1만 5천여명에 달하자
그제서야 소련군은 전투 중단을 선언하여 본격적으로
아프간에서 발을 빼기 시작한다.
1987년 말에 나지불라 대통령에게 철군을 정식
통보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88년 4월 14일에는
제네바에서 철군 협정이 이뤄졌고, 약 11만명에 달하는
소련군이 9개월에 걸쳐 철수하는 것이 확정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