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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 인물 보고

고수# 2023. 5. 7. 10:13

 조선 후기 화가 김준근의 그림 ‘산제’(멧돼지).
주요한 단백질 공급원이자
농경사회의 재산목록 1호
돼지꿈은 곧 재물과 복 의미

고구려·조선 등 건국설화서
도읍지 점지·왕권 탄생 알려
상서롭고 영험한 동물로 등장

“돼지같다” 부정적 이미지도
‘재물에 대한 탐욕은 곧 재앙’
서유기 등서 ‘양가성’ 묘사


우리 선조들에게 돼지는 긍정과 부정의 양면성을 갖춘 동물이었다. 현대로 오면서 그 상징성이 긍정 쪽으로 변했다고 민속학자들은 본다. 우선 현대인들은 주변에 돼지우리가 없어 돼지의 지저분함과 식탐을 직접 보지 못했다. 그보다는, 대개 돼지꿈을 꾸면 바로 복권을 사러가듯, 현대인들이 물질을 지향하는 쪽으로 변한 게 돼지의 긍정적 상징성이 커진 원인이라고 한다.

◇돼지꿈은 어떻게 길몽이 됐을까

기해년(己亥年) 황금돼지해는 음력 설날부터 시작된다. “돼지꿈 꾸세요”라는 인사가 자주 오갔다. 돼지는 중국에서 약 6000∼7000년 전부터 가축으로 길러졌다. 한자의 집을 의미하는 ‘가(家)’자는 지붕 아래 돼지가 있는 상형문자다. 고대부터 돼지가 사람들과 집에서 살아왔음을 알 수 있다. 세계적으로 돼지에 대한 관념은 농경사회의 ‘돼지숭배’와 유목사회인 중동지역의 ‘돼지혐오’ 등 두 가지로 나뉜다.

한국과 중국은 대표적인 돼지숭배 지역이었다. 농경민에게 돼지는 신성한 동물이자 중요한 행사의 제물 혹은 음식으로 사용됐다. 예나 지금이나 우리는 굿이나 고사를 지낼 때 돼지가 필수 제물이었고, 돼지머리 앞에서 정성스럽게 절을 하고 돈을 바친다. 이러한 행위는 돼지가 처음에 신성한 숭배대상이었음을 보여준다. 돼지가 신으로 인식되었으나 사람들이 점차 토테미즘(totemism)을 벗어나며 그 신성을 상실해 단순한 제물로 변했다는 것이다. 고대 동양의 유물 자료를 보면 돼지는 곡물신이나 물의 신(水神)으로 숭배됐다. 돼지가 무성하게 자란 곡물단을 끌고 가는 형상의 도기(陶器)가 여럿 발견됐고, 지금도 중국 먀오(苗)족은 돼지를 제물로 ‘벼의 영혼을 부르는 의식’을 거행한다. 고대에 주로 물가에서 살던 돼지의 습성은 물의 신이란 성격을 갖게 했다.

무엇보다 돼지는 가장 중요한 단백질 공급원이면서 재산 목록 1호였다. 이로 인해 한국, 중국 등 동북아시아에서 ‘돼지꿈=재물·복(福)’이라는 집단 무의식이 고대부터 자리잡았다. 돼지가 꿈에 보이면 돈과 행운을 가져다 준다는 믿음이 생겨난 것이다.

◇한반도 건국설화에 빠지지 않는 돼지

한반도의 우리 조상도 돼지를 영험하게 여겼다. 고구려, 고려, 조선의 건국설화에서 모두 돼지는 도읍지를 점지하거나 왕권의 탄생을 알리는 ‘영험한 길수(吉獸)’로 등장했다. ‘삼국사기’의 고구려본기 유리왕 편에 고구려의 수도를 정할 때 돼지가 점지한다. 하늘에 제물로 바치기 위해 기르던 돼지인 교시(郊豕)가 달아나 왕이 신하에게 뒤쫓게 했는데, 국내성 위례암에 이르러서야 돼지를 잡았다. 신하가 왕에게 고하기를 “그곳의 산수를 보니 왕께서 만약 도읍을 옮기신다면 민리(民利)가 무궁할 뿐만 아니라 병란도 면할 것”이라 하였다. 이듬해 국내성으로 수도를 옮겼다.

‘고려사’에선 돼지로 인한 발복(發福)으로 건국을 하고 왕도를 계시받는다. 태조 왕건의 조부가 용왕을 구제해 준 보답으로 용왕의 맏딸에게 장가를 들고 돼지 한 마리를 얻었다. 돼지를 앞세우고 돌아왔는데 돼지가 우리에 들어가지 않았다. 그래서 돼지에게 ‘만일 이곳이 살 곳이 못 된다면 네가 가는 데로 따라가겠다’고 하였더니 이튿날 아침에 돼지는 개성 송악산 남쪽 기슭에 가서 누웠다. 그곳에 터를 잡아 집을 짓고 살며 아들을 낳았으니 그가 곧 태조 왕건의 부친이고 이어 왕건이 태어나 건국을 하고 도읍으로 정했으니, 용왕이 준 돼지는 임금이 나올 터를 가르쳐 준 셈이다. 돼지가 안내한 집터는 지금의 만월대 연경궁봉원전(延慶宮奉元殿) 자리로 전한다.

조선왕조실록의 태조 편에도 이성계가 왕이 되기 전 꿈에서 “목자(木子)가 돼지를 타고 내려와서 다시 삼한(三韓)의 강토를 바로잡을 것이다”라는 계시를 받았다고 나온다. ‘木子’는 이(李) 씨를 가리키니 이성계가 왕이 된다는 계시인데, ‘돼지를 타고 내려온다’고 한 것을 보면 역시 돼지를 상서로운 동물로 여겼던 것이다.

◇돼지꿈과 ‘돼지 같은 탐욕’의 이중성

성경과 코란에서 돼지가 불결하고 부정한 동물이니 먹지도 만지지도 못하도록 선언한 극도의 ‘돼지혐오’는 유목민의 생존을 위한 생태학적 전략이었다고 인류학에서는 분석한다. 기후조건이 척박한 중동지역에서 돼지는 주로 곡물을 먹는다는 특징 때문에 오히려 인간의 생존을 위협하는 경쟁자였다. 돼지고기는 맛이 좋은 고열량의 단백질이었기에 그에 대한 사람들의 유혹을 억눌러야 했다.

아시아 농경사회에서도 돼지는 재물을 가져다준다는 믿음과 함께 탐욕과 게으름, 지저분함의 상징이기도 했다. “돼지꿈 꾸세요”는 덕담이지만, “돼지 같다”고 하면 욕이다. “돼지 인물 보고 잡아먹나” 하는 옛말은 혐오스럽지만 실속은 챙긴다는 이러한 돼지의 양가적인 상징성을 잘 말해준다. 인간의 문명이 발달할수록 돼지의 신성이 사라지고, 동양에서도 잡식성인 돼지가 식량을 둘러싸고 일정하게 인간과 경쟁관계였기 때문이다. 동남아에는 정기적으로 돼지를 대량 살육하는 축제들이 있는데, 이는 돼지의 수를 조절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반도의 경우 불교가 융성했던 고려시대에 육식이 도외시되면서 돼지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널리 퍼졌다는 민속학 연구도 있다.

문학적 상징성의 측면에서 재복과 탐욕이라는 돼지의 양가성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전 세계적으로 문학에서 형상화된 가장 유명한 ‘슈퍼스타’ 돼지는 중국의 고대소설 ‘서유기’의 저팔계(猪八戒)다. 신성과 인간적 탐욕을 동시에 갖춘 ‘괴물’ 돼지다. 고전소설에서 괴물은 인간 내면의 감당하거나 인정할 수 없는 충동이나 이질성을 외부로 투사한 것으로 문학연구자들은 해석한다. 서유기의 줄거리는 곧 마음속 괴물을 제어하고 본연으로 돌아간다는 내용이다. 돼지의 양가성에서 재물에 대한 탐욕이 곧 재앙이 될 수 있다는 교훈을 선조들은 앞서 본 것이 아닐까.

엄주엽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