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글
오 월 은 / 피천득
고수#
2023. 5. 4. 16:54
오 월 은 / 피천득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한 살 청신한 얼굴이다.
하얀 손가락에 끼어 있는
비취가락지다.
오월은 앵두와 어린 딸기의
달이요,
오월은 모란의 달이다.
그러나 오월은
무엇보다도 신록의 달이다.
전나무의 바늘잎도 연한
살결같이 보드랍다.
스물한 살 나이였던 오월.
불현듯 밤차를 타고 피서지에
간 일이 있다.
해변가에 엎어져 있는 보트,
덧문이 닫혀있는 별장들...
그러나 시월같이 쓸쓸하지는
않았다.
가까이 보이는 섬들이
생생한 색이었다.
得 了 愛 情 痛 苦
(얻었도다, 애정의 고통을)
失 了 愛 情 痛 苦
(버렸도다, 애정의 고통을)
젊어서 죽은 중국 시인의 이
글귀를
모래 위에 써놓고,
나는 죽지 않고 돌아왔다.
신록을 바라다보며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즐겁다.
내 나이를 세어 무엇하리,
나는 오월 속에 있다.
연한 녹색은 나날이 번져
가고 있다 어느덧 짙어지고
말 것이다.
머문 듯 가는 것이 세월인 것을.
유월이 되면,
원숙한 여인같이 녹음이
우거지리라.
그리고 태양은 정열을 퍼붓기
시작할 것이다.
밝고 맑고 순결한 오월은
지금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