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호지(水湖誌) - 89
제9장 강주성의 불길
제37편 모함의 명수 37-4
“무슨 말이오? 송공명은 내가 형님으로 모시는 분이오. 이번에 우리 형님께서 취중에 반시를 읊으신 죄로 옥에 갇혔는데, 내 힘으로는 방법이 없어 이번에 동경에 가서 어떻게 힘 좀 써보려고 하는 판이오. 내가 형님을 해치려 한다니 그게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소.”
“그렇다면 당신이 갖고 가는 편지를 읽어 보시오.”
대종은 채구의 편지를 읽어 보고 크게 놀랐다.
“아니! 이런 편지라니, 이건 나도 몰랐던 일이오.”
“아무튼 산채로 가서 여러 두령과 의논해서 대책을 세워 봅시다.”
주귀는 곧 대종을 양산박으로 데리고 갔다.
대종은 양산박의 두령들에게 그간의 경과를 자세히 설명했다.
그러자 오용이 계교를 말했다.
“지금 채구가 태사의 답장을 기다리고 있으니 우리가 범인 송강을 동경으로 올려 보내라는 가짜 답장을 써서 보냅시다. 그래서 송강 형님이 이곳을 지나갈 때 우리가 구하는 것이 상책이 아닐까 합니다.”
“채경의 필적을 위조하기가 쉬운 일은 아니잖소.”
조개가 묻자 오용이 대답한다.
“지금 천하에 가장 널리 쓰이는 글씨체는 소동파(蘇東坡), 황로직(黃魯直), 미원장(米元章), 채경(蔡京), 이렇게 네 가지뿐입니다.
그래서 소황미채(蘇黃米蔡)를 송조사절(宋朝四絶)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제가 알기로는 제주 태생 소양(蕭讓)이라는 자가 있는데, 네 가지 글씨체를 자유자재로 잘 씁니다. 그 사람에게 답장을 쓰게 하면 감쪽같이 속일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럼 채경의 도장은 어떻게 찍겠소?”
“지금 제주성 내에 살고 있는 김대견(金大堅)이 비석문의 대가여서 사람들은 그를 옥비장(玉臂匠)이라고 합니다. 그 사람을 데려오면 됩니다.”
이튿날 아침 대종은 축지법을 일으켜 제주성으로 떠났다.
그는 그날로 소양과 김대견을 만나 그들을 꼬여 양산박으로 데리고 왔다.
소양과 김대견은 산채로 가서 소양은 채경의 글씨체로 답장을 쓰고, 김대견은 전에 채경의 글씨와 필명과 자호(字號)를 여러 번 새겨 본 일이 있어서 잠깐 동안에 일을 끝낼 수 있었다.
채경의 가짜 답장이 완성되자 대종은 두령들과 작별하고, 갑마 네 개를 꺼내 양쪽 넓적다리에 각각 두 개씩 붙이고 나는 듯이 강주를 향해 떠났다.
동경성에는 가지도 않고 가짜 답장만 갖고 강주로 돌아간 것이다.
대종이 떠난 후 두령들이 취의청에 모여 술판을 벌이고 있는데 갑자기 오용이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아아! 큰일났구나! 모처럼 송공명을 구하려고 채경의 답장을 꾸몄건만 공명은 고사하고 대종까지 죽이게 되었으니 이 일을 어쩌면 좋단 말이오!”
“뭐가 잘못 되었소?”
“너무 서둘러서 큰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그때 소양이 나서서 말했다.
“형님, 무슨 실수 말입니까? 감쪽같이 채 태사와 똑같은 글씨체로 어구 하나 잘못 쓴 것이 없는데 무슨 말이오?”
김대견도 한마디 한다.
“내가 판 도장 글자도 진짜와 구별이 안 갈 만큼 똑같은데 뭐가 잘못 되었단 말씀입니까?”
오용은 한숨을 짓고 말했다.
“도장에 새겨 찍은 한림채경(翰林蔡京) 넉 자가 잘못되었소.”
그러자 김대견이 다시 말했다.
“제가 늘 채 태사의 편지나 문장을 보아왔습니다만 똑같은 글씨체였습니다.”
“잘 들어보시오. 강주부윤 채구는 바로 채 태사 채경의 아들이 아닙니까? 그런데 아버지가 자기 자식한테 보내는 편지에 누가 필명을 씁니까? 이보다 더 큰 실수가 어디 있소. 대종은 그걸 모르고 답장을 부윤에게 전할 텐데, 채구가 아버지 편지를 받는 순간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겠습니까?”
이미 대종은 축지법을 써서 강주로 떠났으니 이제는 두 사람을 구해낼 방법이 없게 되었다.
그렇다고 대책도 없이 가만있을 수가 없었다.
“그럼 어떻게 했으면 좋겠소?”
조개가 묻자 오용은 그의 귀에다 대고 몇 마디 속삭였다.
조개는 고개를 끄덕이고 여러 두령에게 은밀히 명령을 내려 하산하기 시작했다.
- 90회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