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호지 85 편

2024. 11. 4. 07:46수호지


★ 수호지(水湖誌) - 85

제9장 강주성의 불길

제36편 심양루의 반시 36-3

다락 안의 한쪽 난간에 의지하여 둘러보니 앉아서 술 마시기 아주 좋은 자리였다.
독수리의 발은 햇빛을 받아 빛나고, 용마루의 그림은 구름 위에 높이 떴다.

푸른 난간은 나직하게 추녀에 달려있고, 발은 높은 벽 위에 걸려 있다.
첩첩 싸인 구름 산에 강물은 옅은 안개를 두르고, 흰 개구리밥 풀잎이 강어귀에 걸려 있고, 때때로 어부는 새소리를 듣는다.

여울에는 고기 낚는 노인네의 낚싯배가 떠 있을 뿐이다.
물가에는 새가 울고 버드나무는 꽃을 머금었다.
그때 술집 주인이 올라와서 묻는다.

“관인께서는 손님을 기다리십니까, 아니면 혼자 나들이 나오셨습니까?”
“혼자 나왔네. 술과 안주를 좀 주게. 생선은 빼 주시게.”
주인이 내려가더니 쟁반을 두 손에 받쳐 들고 올라왔다.

술 한 병에 채소와 과일이며 살찐 양고기 한 접시, 닭요리, 거위와 쇠고기 등 안주가 모두 맛깔스럽고 그릇은 모두가 붉은 빛을 띈 소반이었다.

송강은 참으로 기뻤다.
‘이렇게 안주와 반찬이 깔끔하고 그릇들이 청초하니 강주란 정말 좋은 곳이로구나. 내 비록 죄를 짓고 멀리 귀양 온 몸이지만 이곳의 산과 물을 보니 얼마나 다행인가. 우리 운성현에도 명산 고적이 더러 있지만 경치가 어디 여기만한가.’

그는 혼자 거듭 잔을 들어 난간에 의지하여 마음껏 마시다가 저도 모르게 크게 취해버렸다.
‘내 본래 산동 태생으로 운성서 자라나 강호(江湖)의 호남아들과 어울려 한낱 허명은 얻었으나 나이 삼십이 넘도록 공명을 못 이루고 도리어 이곳으로 귀양 온 신세가 되었으니 고향의 부모와 형제는 언제 다시 만난단 말인가.’

그는 자기 신세를 생각하니 저도 모르게 두 줄기의 눈물이 앞을 가렸다.
누각의 난간에 의지하여 강바람을 맞으며 이 생각 저 생각에 빠지자 가슴에 떠오르는 만 가지 감회가 저절로 한편의 서강월사(西江月詞)를 이룬다.

그는 몸을 일으켜 벽 위를 보았다.
선인들이 읊어 놓은 시들이 많았다.

‘나도 붓을 빌려 한수 적어보자. 혹시 훗날 크게 뜻을 이루고 찾아와 내가 써 놓은 시를 읽는다면 그것도흥취 있는 일이 아니겠는가!’
그는 곧 주인을 불러 붓과 벼루를 가져오게 하여 주흥이 나는 대로 소매를 걷어 붙이고 큰 벽에 시 한수를 써 넣었다.

自幼會攻涇史 = 나 어려서 일찍이 경사를 배웠고,
長成赤有權謀 = 장성하여 또한 권모가 있었노라.
恰如猛虎臥荒丘 = 마치 사나운 범이 거친 언덕에 누워 있듯이
潛伏爪牙忍受 = 발톱과 이빨을 깊이 감추고 울분을 참았더라.
不幸刺文雙頰 불행히 두 뺨에 칼자국을 내고,
那堪配在江州 = 강주로 귀양 왔으나
他年若得報怨讐 = 만일 어느 날 원수를 갚게 된다면
血染陽江口 = 그 피는 심양강 하구를 물들일 것이리.

송강은 시를 쓰고 나서 한 번 읽고 크게 웃고, 서너 잔이나 연거푸 술을 마신 다음 다시 붓을 들어 서강 월사 뒤에 절구 한 수를 또 써 넣었다.

心在山東身在吳 = 마음은 산동에 있고 몸은 오나라에 가 있네.
瓢蓬江海漫嗟口千 = 강물과 바다로 떠돌며 부질없이 한숨만 짓는구나.
他時若遂凌雲志 = 다른 날 만약에 뜻을 이루면 내 한번 크게 웃어 보리.
敢笑黃巢不丈夫 = 황소가 대장부는 아니더라고.

송강은 시 끝에 다시 다섯 자를 크게 썼다.
芸城 宋江作 = 운성 사람 송강이 쓰다.

붓을 던지고 다시 잔을 기울여 마시니 이제 그는 정말 취하여 몸조차 가누지 못했다.
송강은 주인을 불러 술값을 치루고 누각에서 내려와 이리 비틀 저리 비틀 집으로 돌아와 옷을 입은 채 침상 위에 쓰러져 다음 날 새벽까지 세상모르고 잤다.

잠에서 깬 것은 오경이었다.
그러나 그는 어제 심양루에서 벽에 쓴 시를 까맣게 잊고 있었다.

- 86회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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