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7. 20. 20:49ㆍ삼국지
소주병의 삼국지(三國志) .. (390) 속이는 자와 속는 자 |
신랑의 머리를 들고 돌아온 정문을 웃음으로 반갑게 맞이하던 공명의 표정에서 웃음이 순식간에 걷히고 싸늘한 무표정만 남는다.
공명은 손 끝으로 정문을 가리키며,
"저 놈을 당장 잡아다 머리를 베어라!"
하고, 명을 내린다.
정문은 물론이고, 군막에 있던 군사들이 모두 영문을 모른 채 잠시 멀뚱히 서있다.
"저 놈을 끌어다 목을 베라는데 왜 가만히들 있는가!"
공명이 다시 한번 명령을 한다.
정신을 차린 군사들이 정문을 끌어내려고 하자, 정문이,
"승상! 제게 무슨 잘못이 있다고 그러십니까?"
하고, 외친다.
그 소리를 듣고 공명이 기가 찬다는 듯 헛웃음을 웃는다. 그리고,
"내가 진랑의 얼굴을 알고 있는데 네가 목을 벤 자는 신랑이 아니다. 감히 그런 어설픈 계략으로 나를 속이려 드느냐? 네 목을 베는 나를 탓하지 말고 조잡한 계획으로 널 여기까지 보낸 사마의를 원망하거라."
하고, 날카롭게 지적한다.
정문은 양 옆에서 자신을 끌어내려고 하던 군사들을 물리치고는 공명 앞에 머리를 조아리며 사실을 털어놓는다.
"제가 죽인 것은 사실 진랑의 아우 진명(秦明)이옵니다. 승상 말씀대로 저는 그저 사마 도독의 명대로 했을 뿐입니다. 시키시는 대로 할 것이니 제발 목숨만은 살려주십시오."
목숨을 구걸하는 정문을 은근한 눈빛으로 바라보던 공명이,
"네가 목숨을 보전하길 원하면 내가 시키는대로 사마의에게 편지를 써라. 사마의가 네 편지를 보고 우리 영채로 와서 공격을 시작하면 네 목숨은 살려주겠다."
하고, 정문에게 기회를 준다.
정문은 바로 사마의에게 전달한 편지글을 썼다. 공명은 그 편지를 농사꾼으로 변장시킨 군사에게 주어 사마의에게 전달하도록 하고, 정문은 당분간 옥에 가두어 두게 하였다.
정문이 물러가고, 공명의 곁에 있던 번건(樊建)이 공명에게 묻는다.
"승상께서는 정문이 거짓 투항한 것을 어떻게 아셨습니까? 저는 신랑이라는 장수의 이름을 처음 듣는데, 신랑을 전에 만난 적이 있으셨습니까?"
"내가 언제 진랑을 만나보았겠느냐. 사마의는 결코 사람을 가볍게 쓰지 않는다. 정문의 말대로 사마의가 진상을 전 장군으로 삼을 정도였으면 신랑의 무예가 출중할 터인데 정문의 칼에 그리 쉽게 나가떨어질 리가 없지 않겠느냐. 그래서 정문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공명의 말에 그 자리에 있던 장수들은 모두 감탄해 마지않았다.
공명의 명으로 사마의에게 편지를 전달하러 간 군사가 사마의의 군막 밖에 서있다.
편지는 이미 위병을 통해 사마의에게 전달이 된 후였다.
사마의는 정문이 보낸 편지를 읽었다.
내일 밤 기산에서 횃불이 올라오면 도독께서 쳐들어오소서. 공명은 제 말을 믿고 저를 중군(中軍)에 머물게 하였습니다. 도독께서 쳐들어 오시면 신은 내부에서 도독을 도와 공명을 사로잡겠습니다.
사마의는 편지를 여러 번 읽어 보고는, 편지를 가져온 자를 불러들었다. 그리고,
"너는 누구인데 이 편지를 들고 온 것이냐?"
하고, 묻는다.
사마의의 물음에 농사꾼으로 변장한 촉의 군사가 대답한다.
"저는 원래 중원 사람인데 어쩌다보니 촉나라로 흘러 들어가 땅을 일구며 살고 있습니다. 정문 장군은 저와 어릴 때부터 한 마을에서 자란 동무이옵니다. 이번에 정문 장군이 공을 세워 공명이 정문 장군을 선봉에 세웠는데, 정장군께서 특별히 저를 불러 편지를 사마 도독께 전달해달라고 부탁을 하였습니다."
"음... 그러면 내가 상을 줄테니 이번 일을 일절 입 밖에 내지 말도록 하거라."
사마의는 편지를 전달한 자에게 입단속을 시켜서 돌려보내고, 정문의 편지를 다시 여러 번 읽어 보았다. 반복하여 읽어 보아도 편지글에서 딱히 수상한 점을 찾을 수는 없었다.
그리하여 사마의는 전군에 출동령을 내리기로 하였다.
사마의에게 편지를 전달했던 군사가 무사히 돌아와 공명에게 사마의가 오늘 밤 촉의 영채를 급습할 것이라고 보고하였다.
공명은 곧 전투 준비에 돌입하였다. 왕평과 장의를 불러다 계획을 지시하고, 마중과 마대, 위연도 차례로 불러 분부를 내렸다. 그리고 공명 자신은 군사 수십 명을 거느리고 산 위에 올라서 전군을 지휘하기로 하였다.
그 무렵 사마의도 급습을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맏아들 사마사가 제 아비에게,
"아버님, 편지 하나 믿고 아버님께서 직접 일선에 나가시는 건 위험합니다. 무슨 일이라도 있으면 어쩝니까? 다른 장수를 보내고 아버님은 후방에서 지휘를 하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
하고, 걱정의 말을 한다.
사마의는 아들의 말을 가만히 듣더니,
"그래. 네 말이 맞다. 위험한 짓을 벌일 필요는 없지."
하고, 말하고는 진랑에게 1만 군사를 주어 선봉에 서게 하고, 본인은 신랑의 뒤를 따라나섰다.
이날 밤 초저녁에는 바람이 없고 달빛은 밝아 적의 귀와 눈을 피해 비밀 행군을 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은밀한 발자국 소리를 덮어줄 바람 소리와 사람의 그림자를 감싸 줄 어둠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경(二更)쯤이 되자 갑자기 검은 구름이 하늘을 덮고 음산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였다.
'하늘이 나를 돕는구나!'
사마의는 혼자 생각하며 기뻐했다.
그리고 신랑을 재촉하여 촉구의 영채로 짓 쳐들어 가게 하였다.
진랑은 사마의의 명에 따라 선두에서 촉매로 뛰어들어갔다.
그러나 웬일인지 영채는 텅 비어 있었다.
계략에 빠졌음을 눈치챈 신랑이 얼른 군사들을 뒤로 물리려고 하였으나, 갑자기 사방에서
횃불이 일어나는 가운데 왼쪽에서는 왕평과 장의가, 오른쪽에서는 마대와 마충이 군사를
휘몰아 나와 신랑의 군대를 덮쳤다. 신랑은 죽기로 싸워서 촉군과 대적해보려 했지만
포위망이 겹겹이 싸여 있는 데다가 공격이 하도 심하여 어찌할 도리가 없이 목이
달아나고 말았다.
어둠 속에서 후방에 있는 사마의의 군대는 앞쪽의 사정을 알 수가 없었다.
다만 촉군의 영채에서 불길과 함성이 치솟아 나오기에 사마의는 아군을 도우라고 후방
군사를 급하게 출동시켰다.
불길이 이는 쪽으로 내닫는데 갑자기 북소리가 요란하게 울리며 오른쪽에서는 강유가,
왼쪽에서는 위연이 군사들을 이끌고 나와 위군을 닥치는 대로 공격하는 것이 아닌가?
위병들은 열에 여덟, 아홉은 죽거나 다치고 살아남은 자들은 목숨을 구하려고 사방으로
흩어지기에 바빴다.
사마의 또한 겨우 목숨을 건져서 도망 나왔다.
사마의는 도망치는 내내,
'속았다! 내 계교를 공명이 역이용했구나!'
하고, 생각하며 분함에 몸을 떨었다.
사마의의 군대가 자신들의 진영으로 돌아가기 시작하자 이상하게도 지금까지 앞을
분간할 수 없게 뒤덮던 검은 구름이 걷히고 하늘이 다시 맑아져서 달빛이 훤해졌다.
그것을 본 위군 패잔병들은,
'공명이 요술을 부려서 구름을 일으켰다.', '공명은 둔갑술(遁甲術)에 팔진 비법(八陣秘法)
까지 능숙하니 사마 도독은 당해낼 수 없을 거야.' 하고, 수군거렸다.
공명은 전투의 모든 상황을 산 위에서 지켜보다가 사마의의 군대가 물러가자 징을 울려서
모든 군사를 거둬들였다.
승리를 거둔 공명은 영채로 돌아와 정문을 참형에 처했다.
그리고 장수들을 불러 모아놓고 다시 위수 남쪽을 칠 일을 의논했다.
하지만 문제는 위군이었다. 아무리 촉군이 매일 위군의 영채에 가서 싸움을 걸어도 위군은 굳게 지키기만 할 뿐, 나올 생각을 않는 것이었다.
사마의는 속이려다 되려 자기가 속은 탓에 전보다 더 신중에 신중을 기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공격을 단념하고 오로지 방어에만 주력을 기울이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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