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한지 178화

2021. 8. 29. 07:40초 한지


★ 19금(禁) 초한지(楚漢誌) - 178화

☞ 회남왕 영포(英布)의 반란

대한(大漢) 11년 10월 어느 날!
회남왕(淮南王) 영포(英布)는 문무제신(文武諸臣)들과 함께 망강루(望江樓)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분위기가 무르익고, 술이 취할 무렵 양나라에서 ‘난포’라는 초로(初老)가 찾아와

“대왕마마! 양왕 팽월 장군께서 수일 전에 역적으로 몰려 한제의 손에 무참하게 주살되셨사옵니다.”
하고 말하니 영포는 그 말을 듣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뭐요? 팽월 장군이 역적으로 몰려 주살 당했다고? 그게 대체 무슨 소리요?”
난포는 팽월이 죽게 된 연유를 자세히 말해 주고 나서

“대왕은 한신 장군이나 팽월 장군과 함께 한제가 천하를 통일할 때의 삼대 공신(功臣)이옵니다.
그런데 한신 장군과 팽월 장군 모두가 역적의 누명을 쓰고 이미 주살되셨습니다.
그러고 보면 이번에는 대왕이 화를 입으실 차례이오니 각별히 경계를 하셔야 하옵니다.”
하며 경고의 말을 하자, 영포는 그 말을 듣고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한제가 공신들을 주살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오. 한신과 팽월 장군이 무슨 역모를 했다고 무자비하게 죽여 버린단 말인가?유방이 그렇게 나온다면 나는 죽은 친구들의 원한을 풀어주기 위해서라도 결코 가만히 있지 않으리라!”
영포는 크게 노하여 20만 예하 군사에게 긴급 출동령을 내렸다.
그러자 대부 비혁(費赫)이 나서며 아뢴다.

“대왕마마! 군사를 출병함에는 천시(天時)와 지리(地利)의 묘를 얻어야 하옵니다.
기어코 군사를 발동하시려면, 조(趙)나라와 연(燕)나라에도 격문을 보내시어 산동(山東)을 근거로 하여 협동 작전을 펴도록 하시옵소서.
그렇지 아니하고 단독으로 출병하게 되면 반드시 패하게 되시옵니다.”
“아무리 그렇기로 한신과 팽월을 역적으로 몰아 죽였다면, 유방을 그대로 둘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비혁이 다시 머리를 조아리며 아뢴다.

“대왕마마! 유방은 백만 대군을 가지고 있으며, 장량과 진평 같은 모사도 있고, 번쾌와 관영 같은 용장들도 수두룩하옵니다.
우리가 단독으로 싸워서 이길 수 있다는 판단이 들지 아니하오니 조, 연과 연합하여 싸워야만 할 것이옵니다.”
영포는 비혁의 말이 비위에 거슬렸던지 벼락같은 호통을 내지른다.

“이 비겁한 놈아! 너는 무슨 잔소리가 그렇게나 많으냐? 유방은 이미 늙어서 맥을 못 추는 인간이다.
한신과 팽월이 없어진 이 판국에 감히 나를 당해 낼 자가 누가 있다고 그런 못난 소리를 하고 있느냐?
나 혼자서도 능히 유방 따위는 때려눕힐 자신이 있으니 두고 보아라!”
영포는 비혁을 가차 없이 매도하고 나서 20만 군사를 거느리고 기어코 출동하고야 말았다.

영포는 장안에 접근하기 용이한 지역부터 정복할 생각에서 우선 이웃에 있는 초(楚)나라부터 쳐들어가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대장 유가(劉賈)를 죽이고 초왕 유교(劉交)를 사로잡아 버렸다.

그 다음에는 동쪽으로 방향을 돌려 오(吳)나라를 점령해 버리고, 다시 채(蔡)나라로 진격하니 주변의 모든 나라들이 소란해지기 이를 데 없었다.
유방은 그러한 소식을 듣자 긴급 대책 회의를 열었다.

“회남왕 영포가 반란을 일으켜 초와 오를 점령하고, 시시각각 장안을 향하여 공격해 오고 있으니 이를 어찌했으면 좋겠소?”
중신들이 입을 모아 대답한다.

“영포가 제아무리 반란을 일으켰기로서니 폐하께서 직접 정벌에 나가시면 별로 문제가 없을 것이옵니다.”
그러나 유방은 상대가 영포인지라 마음이 놓이지 않아 있자, 여음후 등공(汝陰侯 騰公)이 나서며 말한다.

“지금 신의 집에는 설공(薛公)이라는 손님이 한 분 와 있사온데, 그는 일찍이 항왕 시절에 영윤(令尹)이라는 벼슬까지 지낸 사람으로 지혜도 많고 지략도 풍부한 사람입니다.
그는 영포가 반란을 일으켰다는 소식을 듣자, 혼잣말로 ‘흥! 풀벌레 같은 친구가 반란을 일으켰다고?’하고 중얼거리는 소리를 했사옵니다.
그러하오니 설공이라는 인물은 영포의 사람 됨됨이를 잘 알고 있음이 분명하온 바, 폐하께서 그 사람을 한번 만나 보심이 어떠하시겠습니까?”
“그렇다면 설공이라는 사람을 곧 이리로 모셔오도록 하오.”
설공은 어전으로 불려 나오자 유방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영포가 만약 상계(上計)를 쓴다면 산동 지방은 영포에게 빼앗길 수밖에 없을 것이옵니다. 그러나 그가 중계(中計)를 쓴다면 승부가 어떻게 될지 예측하기가 어렵습니다.
하오나 그가 만약 하계(下計)를 쓴다면 조금도 염려할 바가 없사오니 그때는 폐하는 마음 놓고 낮잠이나 주무시도록 하시옵소서.”
유방으로서는 설공의 말이 너무도 추상적이어서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귀공의 말씀은 나로서는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구려.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을 해주시오.”
그러자 설공이 다시 자세하게 설명을 한다.

“상계라 함은 영포가 오, 초, 제, 노나라 등을 점령하고 난 뒤 연, 조나라 등과 불가침 조약을 맺는다면, 산동 지방은 영포의 손아귀에 예속될 것이옵니다.
영포의 입장에서는 그것이 상계라고 하겠습니다.”
“음... 그러면 중계라 함은?”
“만약 영포가 오, 초, 한, 위 등을 점령하고, 성고성과의 통로를 튼튼하게 막아 버리면, 그 후의 승부는 어떻게 될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일이온데, 이것이 바로 중계(中計)이옵니다.”
유방은 자신도 모르게 침울한 표정을 짓고,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하계(下計)란 어떤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오?”
“영포가 만약 오나라와 채나라만을 점령하고 월(越)나라를 소중하게 여겨 군사를 장사(長沙)로 돌려 버린다면, 그때에는 폐하께서는 아무 걱정을 아니 하셔도 되옵니다. 그것이 바로 하계(下計)이옵니다.”
“그렇다면 귀공이 생각하시기에 영포가 어떤 계략을 택하리라고 보십니까?”
“제가 예상하기에 영포는 모르면 모르되 반드시 하계(下計)를 쓸 것으로 보여지옵니다.”
“하계를? 그렇다면 그 이유는?”
“영포는 본시 여산의 산적(山賊) 출신으로 심모 원계(深謀遠計)라는 것을 모르는 인간입니다.
그런 인간이 힘만 세고 무용(武勇)이 출중한 덕택에 어쩌다 장군이 되었고, 폐하를 만나는 행운으로 왕위에 올랐으니 이제는 만용(蠻勇)에 치우쳐서 눈에 보이는 것 없이 날뛰는 것이옵니다.
그러니 그런 자가 어찌 그 복잡한 ‘상계나 중계’를 쓸 수 있으오리까?”
유방은 설공의 말에 일편 감탄하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즉석에서 설공에게 천호장(千戶長, 面長)이라는 벼슬을 내렸다.
그리고 몸소 삼군을 거느리고 영포 토벌에 나섰다.

그리하여 ‘근서’라는 곳에 진을 치고 적정을 알아보니 영포는 오나라와 채나라를 점령하고, 지금은 50리쯤 떨어진 옹산(壅山)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 아닌가?

설공이 예측한 대로 영포는 ‘하계’를 쓰고 있음이 분명해지자 유방은 크게 기뻐하였다.
이에 왕릉을 선봉장으로 삼고, 관영과 주발을 뒤에 따르게 하여 영포군 앞으로 진격하였다.

영포가 그 사실을 알고 마주 달려 나온다.
왕릉은 영포 앞으로 가까이 다가가 큰소리로 외쳤다.

“영포는 듣거라! 그대는 본시 여산의 산적이 아니었더냐?
그런 그대를 한제께서는 왕위을 제수하시어 부귀와 영화를 마음껏 누리도록 하여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은혜를 배반하고 이렇듯 반란을 일으켜 나의 칼을 더럽히려고 하느냐?”
그러자 영포가 크게 화를 내며 욕설을 퍼붓는다.

“이놈아! 너야말로 본시 패현에서 술이나 퍼먹고 싸움이나 일삼던 불한당 놈이 아니었더냐? 나는 내 힘으로 오늘날 지위를 쌓아 올린 대왕이로다.
유방은 간악하기 짝이 없어 한신과 팽월 같은 공신을 억울한 누명을 씌워 모조리 잡아 죽였으니 이번에는 내 차례가 아니겠느냐?
너도 유방의 손에 죽고 싶지 않거든 나와 힘을 합해 유방을 때려 부수자. 그 길만이 너도 살고 나도 살아날 길이란 것을 알아야 한다!”
왕릉은 영포를 설득하기는 애초에 글러 먹었음을 알아채고, 마침내 장검을 휘두르며 영포를 향하였다.

그러자 영포도 철퇴(鐵槌)를 바람개비처럼 휘두르며 달려 나왔다.
두 사람 간에는 불꽃 튀는 싸움이 전개되었다.

두 장수의 싸움은 그야말로 용호상박(龍虎相搏)이었다.
장검과 철퇴가 불꽃을 튀기며 일진일퇴하기를 무려 30여 합. 마침내 왕릉이 힘에 부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자 이번에는 주발과 관영이 달려 나와 좌우에서 협공으로 가세하였다.
이에 영포의 진영에서도 난포가 많은 군사들을 몰고 나와 영포를 돕는 것이었다.

양군 간에 일대 격전이 벌어졌다.
그러는 동안에 중군으로 달려온 유방이 영포의 기운이 점차 쇠진해 가고 있었다.

유방은 그런 상황을 보자, 많은 군사를 몸소 몰고 나와 파상 공격을 퍼부어대었다.
영포는 그제야 불리한 것을 깨닫고, 난포와 함께 말머리를 돌려 쫓기기 시작하였다.

“저놈들을 한 놈도 남김없이 모조리 몰살시켜라!”
유방은 벼락같은 소리를 지르며 영포와 난포의 뒤를 맹렬히 추격하자, 난포는 쫓겨 달아나면서도 팽월이 유방의 손에 죽은 것을 원통하게 생각하며 이를 갈았다.

“팽월 장군이 누명을 쓰고 유방의 손에 억울하게 돌아가셨으니 나는 이 기회에 유방에게 주인의 원수를 갚아 드려야 할 게 아닌가?”
이렇게 생각한 난포는 쫓기다 말고 커다란 나무 그늘에 숨어 활시위를 매겨 들고 유방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윽고 황금 전포를 입은 유방이 눈앞에 나타나자, 난포는 유방을 향해 사정없이 화살을 쏘아 갈겼다.
그 순간 유방은 오른편 어깨에 화살을 맞고 말에서 떨어졌다.

- 제 179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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