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한지174화

2021. 8. 25. 08:38초 한지


★ 19금(禁) 초한지(楚漢誌) - 174화

☞ 명장의 최후

소하는 그로부터 며칠 후 아무도 모르게 옥중에 갇혀있는 진희와 얼굴이 비슷한 사형수 한 명을 끌어내게 하여 목을 잘랐다.
그리고 그의 머리를 나무 상자에 넣어서 일반에게 공개하면서

“황제께서 반란의 주모자인 진희를 완전히 정벌하시고, 그의 수급을 도성으로 보내오셨다.
이로써 전쟁은 완전히 끝났기에 내일 아침에는 승상부에서 경축식을 거행할 것이니 만조백관들은 빠짐없이 모두 참석하도록 하시오.”
하는 통고문을 군신들에게 모두에게 돌렸는데, 한신에게도 통고문을 보냈음은 말할 것도 없었다.

한신은 그 통고문을 받아 보고 진희가 그렇게도 어이없게 패망할 줄은 몰랐기에 크게 실망하였다.
그리하여 경축식에는 갈 생각이 없어 집에 눌러앉아 있으려 하자, 소하가 별도의 특사를 시켜 편지를 보내오는 것이 아닌가?

‘오늘 같은 경축 행사에 국가의 원로인 장군이 참석을 아니 하시면 되겠습니까?
폐하께서 돌아오시는 대로 장군께는 특별 포상을 내리시겠다는 기별이 왔으니 몸이 불편하시더라도 오늘의 경축 행사에는 꼭 참석을 해주소서. 소하‘

한신은 소하의 편지를 받아 보고 우선 마음이 놓였다.
편지의 내용으로 보아 비밀이 탄로되지 않은 것이 분명해 보였기 때문이다.

더구나 승상 소하는 평소에도 자기를 무척 아껴 주는 사람이 아니던가?
소하가 이처럼 호의를 보이는데 끝까지 참석을 아니 하면 오히려 의심을 살 것 같아 한신은 내실로 들어와 부인에게 말한다.

“입궐을 해야 하겠으니 새 옷을 내주시오.”
소씨 부인은 그 소리를 듣고 눈을 커다랗게 뜨며 놀란다.

“일전에 황제가 원정을 떠나실 때도 병을 빙자하여 전송조차 안 가셨던 양반이 오늘은 무슨 까닭으로 입궐하시겠다는 것이옵니까?”
소씨 부인은 예감이 좋지 않았던지 남편의 입궐을 적극 반대하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여 황후가 섭정(攝政)의 자리에 올랐을 때도 당신은 병을 빙자하여 찾아뵙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오늘따라 갑자기 입궐을 하시겠다고 하시는 것이옵니까?”
한신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한다.

“승상이 ‘오늘 경축 행사에는 꼭 참석해 달라’고 간곡한 친서를 보내왔으니 승상의 체면을 보아서도 아니 갈 수가 없는 일이 아니오?
더구나 황제는 돌아오는 대로 나에게 특별 포상을 내리겠다는 전지(傳旨)까지 보내왔다고 하니 암만해도 오늘은 입궐해야만 좋을 것 같구려.”
지혜롭기 그지없는 한신이었다.

그런데도 ‘특별 포상’이라는 미끼에 판단력이 크게 흐려졌던 것이다.
그러나 소씨 부인은 예감이 너무도 불길하여 또다시 반대하고 나온다.

“저는 어쩐지 불길한 예감이 들어 오늘은 입궐을 아니 하셨으면 싶사옵니다.
당신이 입궐하셔도 여 황후가 별로 반가워하지 않을 것인데, 무엇 때문에 입궐하시겠다고 하시옵니까?”
한신은 웃으면서 마누라를 달랜다.

“여 황후가 나를 못마땅하게 여기기로서니 그게 무슨 대수요? 여 황후는 일개 아녀자에 지나지 않는 사람이오.
그가 나를 감히 어쩔 수가 있겠소? 황제가 돌아오시면 나는 다시 득세(得勢)를 하게 될 판인데, 이 기회를 놓쳐 버릴 수가 있겠소?”
한신은 어떡하던지 세상을 또다시 휘둘러보고 싶은 욕망이 간절하였다.

그리하여 마누라의 반대를 무릅쓰고 기어코 경축행사에 참석하고 말았다.
이윽고 축하식이 끝나자, 여 황후는 내전으로 들어가며 승상에게 명한다.

“내가 두 분과 긴히 상의할 일이 있으니 승상은 회음후(淮陰侯, 한신)와 함께 곧 편전으로 들어와 주시오.”
한신은 그때까지도 별다른 낌새를 채지 못하고, 소하와 함께 편전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그리하여 장락전(長樂殿) 내문(內門)으로 막 들어서는 바로 그 순간, 대문 뒤에 숨어 있던 4, 50명의 장사들이 벼락같이 달려들어 한신에게 결박을 지어버리는 것이 아닌가?
한신은 몸부림을 치며 외쳤다.

“내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네놈들이 나를 포박하느냐?”
그러나 아무리 소리치고 몸부림을 쳐도 때는 이미 늦었고, 소하는 한신을 굽어보며 추상같이 꾸짖었다.

“장군은 무슨 죄를 지었는지 본인 스스로가 잘 알고 계실 것이오.
여봐라! 황후 마마께서 특별 분부가 계실 것이니 죄인을 장락전 단하에 꿇어 앉혀 놓아라!”
승상 소하는 이미 한신이 믿고 있던 소하가 아니었다.

한신은 소하에게 감쪽같이 속은 것을 그제야 깨닫고 눈앞이 캄캄해 왔다.
이윽고 한신은 결박을 당한 채 장락전 단하에 꿇어앉히게 되는 몸이 되었다.

한 때는 천군만마를 질타하며 유방조차도 우습게 여겨 왔던 천하의 명장 한신이었다.
유방은 10만 군사를 거느릴 능력밖에 없지만 자신은 군사를 얼마든지 거느릴 능력이 있었다.

해서 ‘다다 익선’이라는 말까지 써 가면서 호언장담(豪彦壯談)을 했던 불세출의 명장 한신이었다.
그처럼 자신만만했던 한신이었다.

그렇기에 장락전 단하에 결박을 당한 채 꿇어 앉혀 있는 지금 그의 머릿속에는 오만 가지 회한(悔恨)이 먹구름처럼 일어나고 있었다.

‘마누라가 그처럼 만류했건만... 내가 왜 고집을 부려가며 입궐했던가?’
‘괴철이 삼국 분립(三國分立)을 그토록 권고했건만, 나는 왜 그의 말을 듣지 않고, 유방의 그늘로 다시 돌아와 버렸던가!’

그러나 아무리 뉘우쳐도 후회는 막급이었다.
곧이어 여 황후가 대청마루에 나타나더니 한신을 굽어보며 추상같은 호령을 내린다.

“죄인 한신은 듣거라.
주상께서는 그대를 극진히 사랑하시어 무명 장수에 지나지 않았던 그대를 원수로 발탁하시어 군권을 일임하였으며, 그대의 전공(戰功)에 따라 제왕(齊王)에 봉했다가 초왕(楚王)으로 전임시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대가 모반(謨反)을 기도했으므로 황제는 운몽(雲夢)까지 몸소 가셔서 그대를 생포해 오신 일도 있었다.
그때 그대를 마땅히 죽여 버렸어야 옳을 것이로되 관인 후덕하신 황제는 그대를 죽이지 않으셨을 뿐만 아니라, 회음후(淮陰侯)라는 관작까지 내려주셨다.
주상은 그대를 그처럼 사랑하셨건만, 그대는 성은을 배반하고 진희와 결탁하여 또다시 모반을 기도했으니 세상에 이럴 수가 있느냐?”
여 황후의 질타는 준열하기가 그지없었다.

한신으로서는 모두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어떤 죄인을 막론하고 자신의 죄를 처음부터 인정하는 사람은 없는 법이니 한신은 머리를 들며 말한다.

“신은 진희와 결탁하여 모반을 기도한 일이 전혀 없사옵니다. 증거가 있다면 보여 주시옵소서.”
그러자 여 황후는 한신을 노려보며 다시 꾸짖는다.

“그대가 아무리 죄상을 부인해도 소용없는 일이다. 그대는 ‘호상’이라는 심복 부하를 시켜 진희에게 밀서를 보낸 사실이 있지 않느냐?”
한신은 끝까지 부인할 생각에서 말한다.

“누구한테서 그런 말씀을 들으셨는지는 모르오나 신은 진희에게 밀서를 보낸 일이 전혀 없사옵니다.
누가 그런 말을 했는지 그 사람의 이름을 말씀해 주시옵소서.”
“그렇다면 그 사람의 이름을 분명히 밝혀 주리라.
나에게 그 사실을 밀고한 사람은 그대의 심복 부하인 ‘사공저’였다. 이래도 부인하겠느냐?”
한신은 사공저의 밀고로 비밀이 탄로 난 것을 그제야 알았다.

그러나 죄상을 부인할 여지는 아직도 있다고 생각하였다.
왜냐하면, 사공저는 밀서의 내용까지는 알고 있을 턱이 없다고 생각되었기에 여 황후에게 이렇게 항의하였다.

“사공저가 신의 부하임에는 틀림이 없사옵니다. 그러나 그자는 고주망태일 뿐만 아니라 거짓말을 밥 먹듯 하기로 유명한 놈이옵니다.
마마께서는 저의 하속배(下屬輩)가 무책임하게 지껄인 말을 믿으시고, 국가의 동량인 신을 어쩌면 이렇게도 가혹하게 다루시옵니까?”
그러자 여 황후는 크게 노하며 별안간 불호령을 지른다.

“이 역적 놈아! 아가리 닥쳐라. 황제께서 진희를 주살하신 뒤에 네가 진희에게 보낸 밀서도 이미 압수하고 계시다.
그 밀서의 내용에 의하면, 진희가 도성으로 쳐들어오기만 하면, 너는 내부에서 들고일어나 한나라를 일거에 뒤집어엎겠다고 했다는데, 네놈은 그래도 죄상을 부인할 생각이냐?”
이것은 한신에게 자백을 받아내기 위해 소하가 꾸며 낸 거짓 심문이었다.

그러나 한신은 여후의 입에서 그 말을 듣는 순간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떨구었다.
자신의 밀서가 한제의 손에 들어간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었다.

여후는 한신의 모반을 더 이상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판단하였다.
그리하여 측근에게 추상같은 명령을 내린다.

“여봐라! 저놈을 당장 끌어내어 목을 베어라. 그리고 저놈의 삼족(三族)도 한 놈도 남기지 말고 모조리 주살하여라.”
한신은 형장으로 끌려가며 하늘을 우러러 탄식한다.

“아아, 나는 ‘삼국 분립’을 하라는 괴철의 충고를 듣지 않았다가 결국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는 신세가 되었구나. 아아, 괴철의 충언을... 괴철의 충언을...!”

천하의 영웅이었던 한신은 회한의 눈물을 뿌리며 마침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으니 때는 대한(大漢) 11년 9월 11일이었다.

한신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는 그 순간 일월은 광채를 잃은 듯 천지가 갑자기 어두워지고, 산과 들에는 검은 안개가 짙게 드리워지었다.
한신이 주살되었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지자, 백성들과 병졸들이 저마다 눈물을 흘리며,

“한신 장군은 천하를 통일하는 데 영원불멸의 공을 세웠건만, 소하 승상은 그 점을 생각해서라도 여 황후에게 왜 특사를 내리도록 간언하지 않았던가?”
하고 승상 소하를 나무라기까지 했던 것이다.

어쨌거나 전야를 누비며 천군만마를 마음대로 주무르던 천하의 명장 한신이 다른 사람도 아닌 일개의 여자에 불과한 여 황후의 손에 죽었다는 것은 참으로 웃지 못할 희비극이었다.

그리고 한신이 주살되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한제 유방은 안도와 함께 비통으로 얼룩진 눈물을 뿌리며 혼자 이렇게 탄식하였다.

“아아, 아까운 명장이 죽었구나! 한신 같은 명장은 전고에도 없었거니와 차후에도 다시는 나오지 못 하리로다!”

- 제 175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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