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한지 170화

2021. 8. 21. 06:48초 한지


★ 19금(禁) 초한지(楚漢誌) - 170화

☞ 진희(陳稀)의 모반

다음날 진희가 군사를 이끌고 대주성 근처에 진을 치고 있는 오랑캐 앞으로 달려가니 만왕이 의기양양한 자세로 맞서 나오며 진희에게 큰소리로 외쳐댔다.

“유방은 묵특에게 겁을 먹고, 공주를 내어 줌으로써 화평을 도모했다고 들었다. 나하고도 화평을 도모하려면 공주를 보내라고 유방에게 일러라.
너 같은 졸장부는 상대하고 싶지 않으니 빨리 돌아가 유방에게 내 말이나 전해라.”
그러자 진희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장검을 꼬나 잡고 덤벼들며 외친다.

“한제는 대한국(大漢國)의 황제 폐하이시다. 그런 어른께서 너 같은 오랑캐 놈에게 어찌 공주를 보내 주실 것이냐? 누울 자리를 보고 발을 뻗고, 주제를 알고 주접을 떨어라!”
하고 악다구니를 해댔다.

이에 만왕이 성난 소처럼 달려들어 두 사람은 맹렬하게 부딪쳤다.
그런데 만왕의 무술은 생각 외로 변변치 않았다.

진희와 10여 합을 겨루면서부터는 눈에 띄게 수세에 몰렸다.
그러자 이번에는 어마어마하게 거창한 도끼를 번개 치듯 휘두르며 달려 나오는 장수 하나가 있었다.

그자가 바로 ‘합연적’이라는 총대장인 모양이었다.
합연적은 쏜살같이 달려 나오며 벼락같은 소리를 질렀다.

“이놈아! 싸우려거든 나하고 싸우자!”
만왕이 쫓겨 들어가고 합연적이 달려 나오자, 진희는 합연적을 상대로 싸우기 시작했다.

합연적은 과연 맹장이었다.
그러나 정작 싸워 보니 소문으로 듣던 것처럼 무술이 대단한 것은 아니었다.

두 사람이 단둘이 싸우기를 무려 30여 합에 이르자, 진희는 짐짓 힘에 부친 모양으로 남쪽으로 도망을 치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합연적은 기세를 올리며 대군을 휘몰아쳐 맹렬하게 추격을 해오기 시작했다.
진희는 일부러 쫓기고 쫓겨 산과 산 사이에 있는 어느 강가에 이르렀다.

물은 그다지 깊지 않지만 폭이 좁은데다 물살이 제법 강한 산골 강물이었다.
진희는 말에 채찍을 가하며 재빨리 강을 건너와 버리자, 진희를 추격하던 합연적은 뒤따르는 군사들을 향해

“물이 깊지 않으니 모두들 빨리 강을 건너라!”
하고 외치기가 무섭게 자기 자신부터 강을 건너오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합연적과 그의 부하들이 강을 절반 이상 건너왔을 때, 별안간 상류에서 산더미같이 커다란 물이 폭포처럼 쏟아져 내려왔다.

이에 강을 건너던 오랑캐 군사들을 한꺼번에 휩쓸어 가는 것이 아닌가?
말할 것도 없이 그것은 진희의 부하들이 상류에서 물을 막아 놓았다가 일시에 터뜨린 것이었다.

강을 건너오던 오랑캐 군사들은 수없이 물결에 휩쓸려 떠내려가며 아우성을 치고 있었다.
그러자 좌우 산골짜기에 매복해 있던 진희의 군사들이 때를 같이하여 일시에 들고 일어섰다.

그리고 오랑캐 군사들에게 활을 빗발치듯 쏘아 갈기는 것이었다.
오랑캐의 총대장인 합연적만은 그런대로 물결과 싸우며 강 건너편으로 기어오르려고 했다.

그러나 진희가 재빨리 다가와 황동으로 된 12근, 7척 무쇠석장을 바람개비처럼 휘둘러 뭍으로 기어오르던 합연적의 대갈통을 사정없이 휘갈겨 세찬 강물 속으로 처박아 버리고 말았다.

이로 인해 합연적은 급류에 휩쓸려 순식간에 익사하고 말았다.
만왕이 군사를 몰고 뒤따라오다 그 현장을 목격하고 아연실색하였다.

“아아! 우리가 저놈들의 술책에 감쪽같이 걸려들었구나!”
만왕이 발을 구르며 한탄하는 바로 그때 부하들이 급히 달려오더니

“대왕 마마! 우리가 진지를 비워 둔 사이에 적병들이 우리의 병량(兵糧)과 마초(馬草)를 송두리째 불태워 버렸습니다.”
하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만왕은 그 말을 듣고 까무러칠 듯이 놀랐다.

“뭐야? 우리의 본진(本陳)이 공격을 당했다고? 아뿔싸! 그러면 우리는 이제 어디로 가야 할 것이냐?”
만왕은 어이없게도 한 시각도 되지 않아 3만에 이르는 군사를 잃었다.

그리고 눈물을 머금고 북방의 본국으로 총퇴각을 아니 할 수가 없게 되었다.
이렇게 진희가 대승을 거두고 대주성(代州城)에 입성하자, 성에서는 대대적인 축하연을 베풀었다.

그러나 진희는 이제부터 유방에 대한 태도를 어떻게 취해야 좋을지 그로서는 커다란 문제였다.
진희는 술을 마셔가며 혼자 생각해 보았다.

‘한신 장군의 말에 의하면 유방은 고난(苦難)은 같이할 수 있어도 즐거움은 같이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하지 않던가?
유방은 천하를 통일하는데 대공(大功)을 세운 한신조차 냉대(冷待)해 오는 것을 보면, 나 같은 것은 언제 죽이려 할지 알 수 없는 일이 아닌가?
그렇다면 한신의 말대로 나는 이곳에 그냥 눌러앉아서 대왕(代王) 노릇이나 하기로 하자.
나중에 유방이 대노하여 군사를 이끌고 오게 되면, 그때는 한신 장군과 합동작전을 펴서 유방을 없애고 한신과 함께 우리가 천하를 차지해 버리면 될 게 아닌가?’

진희는 이런 생각이 들자, 휘하 대장들을 한자리에 모아 놓고 자기가 뜻하는 바를 솔직하게 말한 뒤에

“만약 그대들이 나를 도와주기만 하면, 먼 장래에는 그대들을 공에 따라 후백에 봉해줄 것이오.”
하고 말했다.

이에 모든 대장들이 크게 기뻐하며 진희에게 충성을 다할 것을 맹세하였다.
그리하여 진희는 이해 7월에 대주성(代州城)을 근거로 삼고, 대왕(代王)에 즉위하여 이웃에 있는 조성(趙城)까지 병합해 버렸다.

그러나 이같이 엄청난 비밀이 오래 유지될 수는 없었다.
이웃 나라인 서위왕(西魏王)이 이런 사실을 유방에게 급히 알리니 유방은 크게 놀라며, 소하와 진평을 한자리에 불러 상의한다.

“나는 평소에 진희를 무척 아껴왔었소. 그런데 진희가 무엇이 못마땅해 모반을 했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구려.”
승상 소하가 머리를 조아리며 대답한다.

“진희는 워낙 재주가 비상하여 배반할 소질을 충분히 타고난 인물이옵니다. 지금 조정에 있는 장수 중에는 누구도 그를 당해낼 사람이 없사옵니다.
그러므로 회남(淮南)에 있는 영포 장군과 대량(大粱)에 있는 팽월 장군을 불러 그를 토벌하게 하는 길밖에 없겠사옵니다.”
유방은 그 말을 옳게 여겨 멀리 있는 영포와 팽월을 급히 부르는 동시에 전국 각지에 비상 경계령을 내렸다.

한신은 그러한 사실을 알게 되자, 영포와 팽월에게 밀서를 급히 보냈는데, 한신이 두 사람에게 보낸 밀서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진희가 대주에서 모반을 했기 때문에 한제는 지금 두 장군을 불러 진희를 토벌하려고 하고 있소.
그러나 진희를 토벌하고 나면 두 장군도 나와 같이 비참한 신세가 되고 말 것이오.
왜냐하면 두 분도 그동안 보셨다시피 한제는 고난은 같이할 수 있어도 즐거움은 같이할 수 없는 성품의 소유자이기 때문이오.
그러므로 두 장군은 회남과 대량에서 제각기 부귀를 누리며, 한제의 부름에는 결코 응하지 말도록 하시오.
만약 내 말대로 하지 않고 섣불리 달려와 진희를 토벌했다가는 두 장군은 틀림없이 나처럼 비참한 신세가 되어 버릴 것이니 거듭 명심하기 바라오.“

영포와 팽월은 한신의 밀서를 받아 보고 크게 놀랐다.

‘한신 장군이 한제에게 얼마나 많은 원한을 품었으면 우리한테 이런 밀서까지 보냈을까?
한제의 이러한 성품을 모르고 우리가 진희를 토벌해 버린다면, 그때에는 우리 자신도 한신 장군과 똑같은 신세가 되고 말 것이 아니겠는가?’

이렇게 생각한 영포와 팽월은 몸이 불편해 출병(出兵)을 못하겠다는 상주문(上奏文)을 유방에게 올려 버리고 말았다.
출병 불가능의 통고문을 받은 유방은 크게 노하며 소하와 진평을 다시 불러 상의하였다.

“영포 장군과 팽월 장군이 모두 신병으로 출병을 못하겠다고 알려 왔으니 진희 문제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겠소?”
진평이 대답한다.

“신이 생각하옵건데, 진희가 모반을 결심하게 된 데는 세 가지의 동기가 있는 것으로 생각되옵니다.
첫째는 한신 장군이 현직에서 해임된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진희는 누구보다도 한신 장군을 두려워했는데, 그가 천하통일에 큰 공을 세웠음에도 불구하고 무용지장(無用之將)이 되어 버렸기 때문에 이제는 자기를 당할 장수가 없다는 자신감에서 모반을 감행한 것으로 생각되옵니다.”
“음! 듣고 보니 수긍이 가는 이야기요. 그러면 두 번째의 동기는 무엇이라고 생각되오?”
“두 번째 동기는 폐하께서 요즘 들어 되도록 전쟁을 피하시려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에 진희는 그것을 알고 모반을 결행했을 것이옵니다.
그리고 세 번째 동기는 조(趙)나라의 군사들은 옛날부터 강병(强兵)이기 때문에 그들을 믿고 모반을 결심했을 것이옵니다.”
“음! 모두가 그럴듯한 이야기요. 그러면 우리는 거기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하겠소?”
진평이 다시 아뢴다.

“신이 생각하옵건데, 진희를 토벌하기 위해서는 폐하께서 직접 원정에 오르시는 길밖에 없을 것 같사옵니다.
모든 정사(政事)를 황후 마마와 소하 승상에게 맡기시옵고, 폐하께서 직접 주발, 왕릉, 번쾌, 관영, 조참, 하후영 등의 대장들을 모조리 거느리시고 친정(親征) 길에 오르신다면, 진희는 기가 질려 절로 손을 들게 될 것이옵니다.”
유방은 진평의 말을 옳게 여겨 몸소 40만 대군을 거느리고 친정에 나서기로 하였다.

그리하여 주발과 왕릉에게 10만 군사를 주어 선발대로 먼저 떠나게 하고, 유방 자신은 내전으로 들어와 여황후에게 그 사실을 알리며 말했다.

“진희라는 자가 우리나라를 침입해 온 북방 오랑캐를 물리치고서 대주에 눌러앉아 칭왕(稱王)을 하며 반란을 일으켰기에 부득이 나 자신이 그자를 토벌하러 원정을 다녀와야 하겠소.”
여 황후는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란다.

“한신 같은 유능한 장수를 내버려두고 어찌하여 폐하께서 직접 원정을 나가신다는 말씀이시옵니까?”
여 황후는 유방과 한신의 미묘한 관계를 잘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여 황후는 유방의 친정을 만류하고 나왔다.
유방은 어쩔 수 없이 한신에 대한 의구심(疑懼心)을 여 황후에게 솔직히 말해 줄 수밖에 없었다.

“황후는 자세한 사정을 잘 모르셔서 그런 말씀을 하시지만, 한신이란 자는 결코 믿을 사람이 못 되오.
진희를 토벌하려고 한신을 보냈다가는 한신은 진희와 결탁하여 칼끝을 나에게 돌려댈지도 모르오.
내가 한신에게서 일체의 병권(兵權)을 박탈해 버린 것도 그 때문이었소.
한신은 계략이 워낙 탁월하기 때문에 기회만 있으면 어떤 변란을 일으킬지 모르는 위험한 인물이라는 사실을 꼭 알고 있어야 하오.”
“한신 장군은 그렇게나 믿지 못할 장수였습니까?”
유방은 거듭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한신은 나의 그늘에서만 살아가기에는 너무도 야심찬 인물이오. 거듭 말하거니와 그에게서 모든 병권을 빼앗아 버린 것은 그런 위험성이 있었기 때문이었소.
내가 이번에 원정을 나가고 없으면 한신은 이번 기회를 이용해 어떤 일을 일으킬지도 모르오.
그러니 내가 부재 중에는 모든 국권(國權)을 황후 자신이 직접 장악해 주시오.
그래서 무슨 불상사가 생기게 되거든 소하 승상, 진평 대부 등과 직접 상의하여 처리하도록 하시오.”
여 황후는 본시부터 권력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던 터인지라 유방의 말을 듣고 크게 기뻐하였다.

“폐하께서 일시나마 ‘국권을 대행하라’는 분부를 내려주시면, 신첩은 소하, 진평 등과 상의하여 만전을 기하도록 하겠나이다.”
유방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다시 말한다.

“한신의 문제를 생각하면 일시나마 도성(都城)을 비우기가 불안해 견딜 수가 없구려.
그러나 제아무리 한신이라 한들 손과 발을 모두 잘라 버렸으니까 별일은 없겠지만 만에 하나라도 한신이 의심스러운 태도로 나오거든 그날로 체포하여 죄상을 엄중하게 다스리도록 하시오.”
그리고 소하와 진평을 그 자리에 불러 간곡히 부탁한다.

“내가 없는 동안에는 황후에게 모든 국권을 대행하게 하였소.
소하 승상과 진평 대부는 국가의 개국 원훈(開國元勳)이시니 황후를 성심껏 받들어 국정에 빈틈이 없도록 살펴주기를 간곡히 부탁하오.”
소하와 진평은 머리를 조아리며 품한다.

“신들은 황후 마마를 충성스럽게 받들어 모실 것이오니 폐하께서는 만백성들의 소망대로 하루속히 승전의 개가를 올리도록 하시옵소서. 신들은 그날을 학수고대하겠사옵니다.”
이리하여 유방은 만조백관들의 환송을 받으며 원정의 길에 올랐고, 여 황후는 그날부터 국가의 대권을 한 손에 장악하게 되었다.

국가의 대권! 그것은 천하의 만사를 맘대로 할 수 있는 절대적인 권력이었다.
그러기에 여 황후는 권력을 장악한 그 날부터 권력에 대한 형용하기 어려운 흥미와 환희를 느끼게 되었다.

- 제 171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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