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삿갓 방랑기 189화

2021. 2. 19. 09:37김삿갓 방랑기


★ 시인 김삿갓 방랑기 189화

[몽중몽 주모, 연월과의 이별]

연월은 한번 관계를 맺고 나자, 김삿갓을 더없이 좋아하였다.
그리고 돈은 한 푼도 필요치 않으니 얼마든지 오래만 있어 달라고 부탁까지 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돈보다도 참된 인정이 그리웠던 것이다.

그러나 김삿갓은 누구에게나 오랫동안 폐를 끼칠 생각은 꿈에도 없었다.
애정과 원한은 서로 엇갈려 돌아가는 것이기 때문에 정에 이끌려 오래 머물다 보면 그 애정이 모르는 사이에 원한으로 변해 버리기 때문이었다.

‘몽중몽’에서 열흘 가까이 편히 쉬고 난 김삿갓은 어느 날 아무런 예고도 없이 행장을 꾸리고 나섰다. 연월은 김삿갓의 마음을 대뜸 알아본 듯 서글픈 얼굴로 물었다.

“저희 집을 떠나려고 하십니까? 불편하신 일이 많으셨던 모양이지요?”
“무슨 소리! 만나고 헤어지는 데는 때가 있는 법이네, 더 이상 머무는 것은 자네를 괴롭힐 뿐이야. 적당한 때에 떠나려는 것일세!”
“언젠가는 이별의 날이 있을 줄 알고 있었으니 굳이 붙잡지는 않겠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터 어디로 가시려고 하옵니까?”
“나는 갈 곳을 정해 놓고 다니는 사람이 아닐세. 일단 나루터에 나가 강을 건너놓고 보기로 하겠네.”
“그러면 저도 나루터까지 전송을 나가겠습니다.”
연월은 옷을 갈아입고 나루터로 따라 나오며,

“옛날이나 지금이나 나루터는 이별이 많은 곳인가 봅니다.”
“나루터란 본시 많은 배들이 오고 가는 곳인지라 이별이 많을 수밖에 없지 않겠나.”
김삿갓은 거기까지 말을 하다가 문득 연월에게 이렇게 물어보았다.

“참, 내가 오늘 떠나려는 나루터의 이름을 뭐라고 했지?”
두 사람은 어느덧 나루터에 도착하였다.
그러나 나룻배는 보이지 않았다.
연월은 모래사장에서 나룻배를 기다리며, 김삿갓의 질문에 대답했다.

“이 지방에서는 이 나루터를 ‘구두레 나루’라고 부릅니다.”
“‘구두레 나루’의 ‘구두레’라는 말은 무슨 뜻인가?”
“구두레 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는 저도 잘 모릅니다. 그러나 백제가 멸망하게 되자, 많은 왕족들이 배를 타고 일본으로 망명을 떠난 곳이 바로 이 ‘구두레 나루’였다는 것을 보면, 이 나루를 옛날부터 ‘구두레’라고 불러왔던 것은 확실합니다.”
김삿갓은 그 말을 듣고 눈을 커다랗게 뜨며 놀랐다.

“뭐야? 백제가 망할 때 수많은 왕족들이 배를 타고 일본으로 건너간 곳이 바로 이 나루터였다고? 여보게, 그게 사실인가?”
“일본 사람들은 지금도 ‘백제’를 ‘구다라’라고 부른다고 들었습니다. 백제 왕족들이 일본으로 건너가기는 하였으나 말이 전혀 통하지 않다 보니 그들이 ‘어디서 온 사람들이냐’고 물어보자, 백제사람들은 ‘구두레에서 왔노라’고 대답했는데, 일본 사람들은 ‘구두레’가 나라 이름인 줄로 알고, 그때부터 ‘구두레’를 일본식 발음으로 ‘구다라’라고 부르게 된 것이 ‘백제’를 뜻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얼마든지 수긍이 가는 이야기여서 김삿갓은 고개를 무겁게 끄덕였다.

“나라가 망하고 보니 나라의 이름조차 엉뚱하게 변해버렸군 그래!”
하고 자못 처량한 심정이 되었다.

그 옛날에 부귀와 영화를 한 몸에 누리던 백제 왕족들이 나라가 하루아침에 망하는 바람에 남부여대(男負女戴)를 하고 해로만리(海路萬里), 일본으로 망명을 떠날 때의 그들의 심정이 과연 어떠했을까 생각하니 김삿갓은 자기 자신의 일처럼 처량한 심정이 다시 밀려왔다.

그리하여 머리를 들어 강물을 바라보니 무심한 강물은 넓고도 조용히 흘러가고 있는데, 여기저기 떠 있는 낚싯배에서는 구성진 노랫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강물은 거울처럼 맑고 언덕에는 푸른 풀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고, 물 위에는 갈매기조차 훨훨 날고 있는 것이 한 폭의 그림 같았다.
김삿갓은 눈앞의 아름다운 풍경을 그윽이 바라보다가 문득 연월에게 이렇게 말했다.

“여보게! 눈앞에 강상 풍경이 그림처럼 아름다워 문득 홍우원(洪宇遠)의 시가 머리에 떠오르네 그려. 그 시를 한번 읊어 볼 테니, 들어보게나.”
그리고 다음과 같은 시를 읊었다.

平沙如雲 綠江回(평사여운 녹강회)
白鳥飛飛 去復廻(백조비비 거부회)
忽有小船 欹側過(홀유소선 기측과)
輕風一棹 浪花開(경풍일도 낭화개)

[註] 欹(아 의, 기울 기), 기울다는 의미일 때는 攲, 敧(기울 기)와 음운이 같음.
(해설)
모래밭은 눈 인양 푸른 강을 굽이돌고,
흰 갈매기는 훨훨 날아오고 가고 하누나.
문득 작은 조각배 기울며 지나가니
가벼운 바람 노 한번에도 물보라가 이는구나.

그러자 연월은 즉석에서 이렇게 대를 놓았다.
“금강을 노래한 시에는 이런 시도 있습니다.”

江南江北 草처처(강남강북 초처처)
滿目春光 客意迷(만목춘광 객의미)
愁上木蘭 尋古跡(수상목란 심고적)
靑山無言 鳥空啼(청산무언 조공제)

(해설)
강 언덕 좌우에는 방초만 무성하여
봄빛이 눈에 가득 나그네 맘 애달파라.
조각배 빗겨 타고 옛 자취를 찾으려니
청산은 말이 없고 새만 홀로 우짖누나.

비록 귀동냥으로 얻어들었다고는 하지만 연월의 시심(詩心)은 보통이 아니었다.

아무리 기다려도 나룻배는 좀처럼 나타나지 않았다.
때마침 포구에서는 짐을 가득 실은 커다란 범선(帆船) 한 척이 먼 길을 떠나려는지 닻을 올리고 있었다.

“여보시오. 그 배는 어디로 가는 배지요?”
김삿갓이 가까이 다가가서 큰 소리로 물어보니 뱃사공이,

“이 배는 곡식을 실으러 강경포(江景浦)로 가는 중이라오.”
하고 대답하는 것이 아닌가.
김삿갓은 그 말을 듣자, 불현듯 자기도 강경포까지 배를 타고 가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여보시오. 그러면 강경포까지 나도 좀 타고 갈 수 없겠소?”
“그러시구려! 이런 기회에 돈 안 받고 적선이나 한 번 해보기로 하지요.”
김삿갓은 동행해도 좋다는 승낙을 받자, 연월을 돌아보며,

“나는 저 배를 타고 강경포로 갈 생각이니 자네는 어서 들어가 보게. 그동안 자네에게 너무도 신세가 많았네. 부디 잘 지내기를 바라네.”
하고 작별 인사를 하기 무섭게 배에 올랐다.
연월은 뱃전에서 눈물을 씹어 삼키며,

“어디를 가시거나 부디 몸 평안하시옵소서.”
하고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올 때와는 달리 혼자 쓸쓸히 돌아서면서 입속으로 신세한탄조의 노래를 얼빠진 사람처럼 중얼거렸다.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언제나 찾아오는 부두의 이별이~
아쉬워 두 손을 꼭 잡았나~
눈앞에 바다를 핑계로 헤어지나~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보내주는 사람은 말이 없는데~
떠나가는 남자가 무슨 말을 해~
뱃고동 소리도 울리지 마세요~

하루하루 바다만 바라보다~
눈물지으며 힘없이 돌아오네~
남자는 다 모두가 그렇게 다~

아~~ 아~~
이별의 눈물 보이고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남자는 다 그래~


매달리고 싶은 이별의 시간도~
짧은 입맞춤으로 끝나면~
잘 가요 쓰린 마음 아무도 몰라주네~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아주 가는 사람이 약속은 왜 해~
눈멀도록 바다만 지키게 하고~
사랑했었단 말은 하지도 마세요~

못 견디게 내가 좋다고~
달콤하던 말 그대로 믿었나~
남자는 남자는 다~
모두가 그렇게 다~

아~~ 아~~
쓸쓸한 표정 짓고 돌아서서 웃어 버리는
남자는 다 그래~

- 191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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