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삿갓방랑기 188화
2021. 2. 18. 13:50ㆍ김삿갓 방랑기
★ 시인 김삿갓 방랑기 188화
[몽중몽 주모 연월이 - 下]
김삿갓은 술을 마셔가며 연월에게 우스갯소리를 하였다.
“시를 잘 짓는 여자는 공교롭게도 자네처럼 이름에 ‘월’자가 들어간다네.”
“그건 또 무슨 말씀이세요?”
“시를 잘 짓는 기생 중에 개성 기생 명월(明月)이가 있었고, 평양 기생 계월(桂月)이가 있다네, 게다가 얼마 전에는 강계에서 시를 잘 짓는 추월(秋月)이라는 기생을 만난 일이 있었는데, 지금 자네도 ‘연월’이란 이름으로 시를 잘 짓고 있으니 이름 자에 달 월(月) 자가 들어 있는 기생은 시를 잘 짓는다고 봐야 할 게 아닌가?”
“아이, 선생님도! 명월과 계월은 소문난 시인이었지요. 저 같은 게 어찌 감히 그들 속에 낄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강계에서는 ‘추월’이라는 기생을 직접 만나셨던 모양이죠?”
“응, 그 여인도 시재가 보통이 아니었네.”
김삿갓은 그렇게 대답하며 잠시 지난날의 추억에 잠겼다. 추월은 김삿갓의 인생에서 결코 잊을 수 없는 여인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만약 어머니의 꿈을 꾸지 않았다면 김삿갓은 지금도 추월의 집에 머물러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 눈앞에서 술을 따라 주고 있는 연월도 결코 흔히 볼 수 있는 여인은 아니었다.
어느덧 밤이 깊어 어디선가 새벽 종소리가 은은히 들려오고 있었다.
연월은 종소리를 듣자 김삿갓에게 은밀한 시선을 보내며,
“강계에서는 언제 떠나셨습니까?”
하고 물었다. 김삿갓은 대답 대신에,
“離家正初 今三月(이가정초 금삼월)” : 정초에 집을 떠났는데, 어느새 삼월이 되었네.
하고 시 한 수를 읊어 대답해 주었다.
연월은 그 소리를 듣더니 즉석에서 이렇게 화답을 한다.
“對客初更 復三更(대객초경 복삼경)” : 손님을 초저녁에 만났는데 어느새 삼경이오.
김삿갓은 연월의 화답에 마음이 몹시 동요되었다. 그리하여,
“良宵佳興 比誰於(양소가흥 비수어)” : 이 밤의 흥겨움을 무엇에 견주겠는가?
하고 유혹의 시를 한마디 던졌더니 연월은 대뜸 이렇게 화답하는 것이 아닌가.
“紫午山頭 月正明(자오산두 월정명)” : 자오산에 떠 있는 달이 무척 밝으옵니다.
그 화답에는 김삿갓의 유혹을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이겠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었음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리하여 김삿갓은 마지막 술잔을 들며,
“이제 술은 그만하고 잠이나 잘까?”
하고 말하자, 연월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금침을 준비하겠으니 잠시만 기다려 주시옵소서.”
하고 속삭이는 것이었다.
두 사람의 이런 수작은 그야말로 이심전심으로 서로의 바람이 격의 없이 상통된 탓이다.
김삿갓은 돈도 권세도 없는 따분한 신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명경지수와 같은 마음으로 살아오는 까닭에 어디를 가나 여자들은 대환영이었다. 마음속에 추호의 사심(邪心)이 없음을 알고, 여자들은 안심을 하고 접근해 왔던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그런 사람을 염복가(艶福家)라고 부른다.
김삿갓은 이렇게 염복이 많은 덕분에 오랫동안 방랑 생활을 계속해 오면서도 많은 여자들로부터 적지 않은 도움을 받아 왔었다.
특히, 시를 좋아하고 음률을 숭상하는 노류장화의 여성들은 김삿갓을 각별히 좋아하였다.
뭇 사내들의 멸시와 탐욕에 시달려야 하는 그들에게는 김삿갓처럼 허심탄회한 남성이 한없이 매력적이었던 것이다.
강계의 명기 추월이도 그래서 김삿갓을 좋아하였고, 부여 ‘몽중몽’의 주모 연월이가 김삿갓을 좋아한 것도 그 때문이었던 것이다.
김삿갓은 연월이 안내하는 대로 그녀의 안방으로 짐짓 취한 척 비틀거리며 따라 들어갔다.
그리곤 몸을 못 가누는 척하며, 연월이 깔아놓은 금침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이불 속에서는 농염한 여인의 향기가 풍겨 나왔다.
등잔불을 끈 연월이 바스락 소리를 내며 옷을 벗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자 김삿갓도 어둠 속에서 급하게 옷을 벗었다.
이윽고 김삿갓의 이불 속으로 연월이 살그머니 들어왔다.
두 사람은 말없이 서로를 껴안았다. 그리고 잠시 아무렇지도 않게 그대로 있었다.
누군가 먼저 어떻게 해주기를 기다리는 모양새였다.
그것은 이미 서로 인생을 살아올 만큼 살아왔기에 함께하는 사람의 취향에 따라 능동적인 자세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김삿갓은 이런 경우에 남자인 자신이 리드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먼저 손을 뻗어 풍만한 연월의 젖가슴을 더듬었다. 그리고 그녀의 입술을 훔쳤다.
두 사람이 같이 술을 마셔서인지 김삿갓은 가뜩이나 취한 술이 한 잔을 더 마시는 것 같았다.
‘쪽쪽’ 소리가 나도록 연월의 입속을 훔치던 그는 이번에는 자신의 혀를 연월에게 내주었다.
그랬더니 그녀도 그가 한 것처럼 그의 입속을 달콤하게 훔쳐갔다.
그는 그녀의 옥문을 더듬었다. 그러자 그녀는 짐짓 꿈틀거리며 손을 뻗어 김삿갓의 물건을 향해 왔다.
이렇게 전희를 끝낸 두 사람은 한데 엉켜 아낌없이 서로를 나누었다.
방 안은 어제 이곳 ‘몽중몽’으로 올 때 거의 그쳤던 봄비가 다시 내리는지 고즈넉하고, 등잔조차 꺼진 방안은 두 사람의 열기에 식을 줄 모르고 마냥 타오르고 있었다.
(어제 내린 비)
어제는 비가 내렸네.
키 작은 나뭇잎 새로
맑은 이슬 떨어지는데
비가 내렸네.
우산 쓰면 내리는 비는
몸 하나야 가리겠지만
사랑의 빗물은 가릴 수 없네.
사랑의 비가 내리네.
두 눈을 꼭 감아도
사랑의 비가 내리네.
비를 막아도
쉬지 않고 비가 내리네.
눈물 같은 사랑의 비가
피곤한 내 몸을 적셔다오.
조그만 길가 꽃잎이
우산 없이 비를 맞더니
지난밤 깊은 꿈속에
활짝 피었네.
밤새워 창을 두드린
간절한 나의 소리여!
사랑의 비야 적셔다오.
사랑의 비야 적셔다오.
적셔다오.
- 189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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