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삿갓 방랑기 179화

2021. 2. 8. 09:29김삿갓 방랑기


★ 시인 김삿갓 방랑기 179화

[莫怪今朝把酒頻 世上空留白髮身(막괴금조파주빈 세상공유백발신)]

김삿갓은 시를 읽어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 시는 조운(朝雲)이라는 기생이 남지정(南止亭)에게 보낸 시가 아니었던가?”
“그러하옵니다. 저는 이 시를 유난히 좋아하여 하루에도 몇 차례 읽어 보며 혼자 즐거워하옵니다.”
“이런 시를 즐기는 것을 보니 자네도 산수를 어지간히 좋아하는군 그래.”
김삿갓은 추월이 떠다 바치는 대얏물을 받고, 세수를 한 후 아랫목에 주저앉으니 추월은 새 옷 한 벌을 가지런히 갖다 놓으며 말하는데,

“저녁을 드시기 전에 옷을 갈아입으시옵소서. 옷이 몸에 맞으실지 모르겠사옵니다.”
김삿갓은 새 옷을 보고 적이 놀랐다.

“아니, 자네 집에 웬 새 옷인가?”
혹시나 정부가 입던 옷을 주는 것이 아닌가 싶어 김삿갓은 본능적으로 거부감이 느껴졌다.
추월은 그런 눈치를 재빨리 알아채고,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나무랐다.

“저는 집에 남자 옷을 준비해 둘 만큼 다정한 남자는 없사옵니다.”
“그럼, 이 옷은 웬 옷인가?”
“범우 스님으로부터 선생 말씀을 듣고 나서 혹시 선생께서 저희 집에 오시게 되면 드리려고 일부러 지어 둔 옷이옵니다.”
김삿갓은 그 말을 듣고 너무도 감격스러워 가슴이 뭉클했다.

“그럼, 이 옷은 나를 위해 일부러 지은 옷이란 말인가?”
추월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인풍루에서 선생을 순간적으로 만나 뵈었을 때, 옷이 너무도 남루해 보였기에...”
추월은 거기까지 말하고, 이마를 약간 찌푸려 보이며,

“눈짐작으로 지어 놓았기 때문에 몸에 맞으실지 모르겠습니다.”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김삿갓이 옷을 입어 보니 화장과 길이가 놀라울 정도로 잘 들어맞았다.
게다가 솜까지 두툼하게 넣어서 전신이 금방 훈훈해졌다.

“이 사람아! 이 옷은 마름질이 정확한 것을 보니 맞춤옷 같네 그려. 그러고 보니 자네는 눈썰미가 대단한 사람인 걸!”
“옷이 잘 맞는다 하시니 기쁘옵니다. 이제는 술을 한 잔 드시면서 강계 명물인 두부장 찌개와 싸장 찌개 맛을 한 번 보아주시옵소서.”
저녁상은 결코 요란스럽지 않았다. 술은 강계 특산인 인삼주였고, 더덕 구운 것과 강계에서만 맛볼 수 있다는 두부장 찌개와 싸장 찌개는 독특한 것이었다.

“아~ 이거 참, 향기가 기막히구려. 이런 향기는 처음 맛보는 향기인데, 도대체 두부장이라는 것은 어떻게 만드는 것인가?”
“두부장은 날두부를 베보자기에 싸서 된장 속에 오래 묻어 두면 두부가 된장 맛과 혼합되어 독특한 맛을 내게 되는데, 이때 두부가 기름 덩이처럼 흐물흐물해집니다. 그것을 두부장이라 하지요.”
“음~~~ 향기가 천하의 일미인 걸! 싸장 찌개 맛도 기막히군 그려.”
“싸장은 기장쌀로 밥을 지어 두부장과 똑같은 방식으로 만드는데, 그것은 그것대로 또 다른 향취가 나옵니다.”
“음~~~ 두부장 찌개와 싸장 찌개가 천하의 일품인데다가 자네 같은 미인까지 앞에 있으니 이제야말로 강계에 왔다는 실감이 절실하네 그려, 하하하...”
김삿갓은 기분이 너무도 좋아 통쾌하게 웃었다.

이렇게 옷을 새로 갈아입고, 맛 나는 음식을 안주 삼아 인삼주를 몇 잔 마시고 나니 술이 거나하게 올라오는데, 김삿갓 자신은 마치 자기 집에 돌아온 듯 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하여 이런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추월을 향해 치사의 말을 건네는데,

“여보게, 추월이! 나는 오늘 밤처럼 호사를 해보기는 난생처음이네. 내가 어쩌다가 자네 같은 미인을 만나 이런 호강을 누리는지 정말 꿈만 같네 그려.”
그러자 추월은 술을 공손히 따라 주며, 가냘픈 미소를 지었다.

“그렇지 않아도 범우 스님으로부터 선생은 무진 고생을 해 오신 분이라고 들었습니다. 오늘은 섣달그믐날이오니 모든 시름을 잊으시고, 술을 마음껏 드시옵소서.”
“아~ 참, 그러고 보니 오늘이 섣달그믐이렷다? 그렇다면 왜 섣달그믐날 밤에는 잠을 자지 않고 새해를 맞는 풍습이 있지 않은가?”
“강계에도 그런 풍습이 있사옵니다.”
“그렇다면 술이나 마셔가며, 우리 시 타령이나 한 번 해보세 그려.”
그리고 김삿갓은 술잔을 비우고, 추월에게 잔을 건네주며 말했다.

“오늘이 제야(除夜)라니 나의 고향 사람인 신응조(申應朝)가 지은 ‘제야’라는 시를 한 번 읊어 보겠네.”

莫怪今朝 把酒頻(막괴금조 파주빈)
明朝七十 歲華新(명조칠십 세화신)
夢中猶作 靑年事(몽중유작 청년사)
世上空留 白髮身(세상공유 백발신)

(해설)
술 많이 마신다고 어줍게 생각 말게,
내일 아침이면 내 나이 일흔 살일세.
좋은 청춘 꿈결같이 헛되이 보내고,
지금은 부질없는 백발만 남았다네.

김삿갓은 술이 거나해 오자 고향 생각이 불현듯 간절하여 고향 선배의 시를 무심결에 읊었던 것이었다.
추월은 가냘픈 애수를 지으며 말했다.

“선생은 칠십이 되시려면 아직도 멀었사온데, 어찌 이같이 나약한 시에 자신을 비교하십니까? 혹시 오늘이 그믐날 밤이라서 고향이 그리워 그런 시를 읊으신 것은 아니옵니까?”
하며, 선반 위에서 거문고를 그윽이 끌어내려 잠시 줄을 고르는가 싶더니,

“매우 외람되오나 제가 자작시 한 수를 거문고에 실어 선생의 시름을 달래 드리겠사옵니다.”
하고, 즉석에서 거문고를 타며, 은율에 맞추어 다음과 같은 시를 한 수 읊어 주는 것이었다.

歲暮寒窓 客不眠(♪~♩ 세모 ~한~창~ 객~불면~)
思兄憶弟 意凄然(♪~♩ 사형 ~억~제~ 의~처연~)
孤燈欲滅 愁難歇(♪~♩ 고등 ~욕~멸~ 수난~헐~)
泣抱朱絃 餞舊年(♪~♩ 읍포 ~주~현~ 전~구~년)

(해설)
이 해가 지나는 밤 나그네 잠 못 들고,
형님 생각 아우 생각 심사가 처량하오.
등잔불 가물가물 시름 참기 어려워,
거문고 껴안고 가는 해를 보내노니....

- 180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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